16일 현대자동차 노조 홈페이지에 ‘청소차’라고 밝힌 조합원이 띄운 글이다.
이헌구 전 현대차 노조 위원장이 노사 협상 과정에 회사 측에서 2억 원을 받은 사실이 드러나자 노동계는 물론 지역 사회가 ‘핵폭탄급’ 충격에 휩싸였다.
특권화된 노조 간부의 치부가 계속 드러나면서 이제 현대차 노조 간부들은 마지막 버팀목인 일반 조합원에게까지 불신을 받게 돼 벼랑 끝에 몰리고 있다.
○ 현 집행부로 이어질 검찰의 칼날
특히 이 씨가 노조 위원장일 때 현재 연말 성과급 투쟁을 이끌고 있는 박유기 현 노조 위원장이 사무국장이었다. 사무국장은 위원장, 수석부위원장과 함께 현대차 노조의 3인방으로 불리는 핵심 측근. 이 점에서 검찰 수사의 칼날이 현 집행부로 이어질 가능성이 높다.
절박한 위기의식을 느낀 박 위원장도 반격에 나섰다.
박 위원장은 검찰의 영장 청구 직후 ‘이헌구 전 위원장 영장청구에 대한 입장’이라는 제목의 성명서를 발표하고 “17년간 노조 활동을 하면서 회사에서 단 한 푼의 돈도 받은 사실이 없다”고 밝혔다. 박 위원장은 또 “노조가 파업을 벌이고 있는 시점에 검찰이 이 사건을 터뜨린 것은 노조에 도덕적 정치적 타격을 입히려는 음모”라고 역공을 펼쳤다.
그러나 박 위원장의 이런 주장에 공감하는 목소리가 많지 않은 게 현지 분위기다. 이번 사건은 위원장의 개인 비리 차원을 넘어 국내 노동운동을 주도하고 있는 현대차 노조의 도덕성에 치명적인 타격을 줬기 때문.
현대차 노조의 비리는 이번뿐이 아니다.
전 노조 대의원 정모(42) 씨는 2003년 11월 취업희망자 K 씨에게서 3000만 원을 받고 취업을 알선해 주는 등 12명에게서 4억1500만 원을 받아 2005년 6월 검찰에 구속됐다. 당시 정 씨 이외에도 전현직 노조 간부 8명이 입사 희망자 38명에게서 7억8000여만 원을 받은 혐의로 검찰에 구속 또는 불구속됐다.
또 지난해 12월에는 현 노조 간부 이모(44) 씨가 노조 창립기념품 업체 선정 과정에서 납품업체에 각종 편의를 준 혐의(업무상 배임, 사문서 위조 등)로 경찰에 구속됐다. 현직 노조 간부가 비리 혐의로 구속되자 박 위원장이 이끄는 현 집행부는 도덕성에 큰 타격을 입어 임기를 10개월여 남겨놓고 조기퇴진하기로 결정했다. 차기 집행부 선거는 다음 달 치러질 예정.
○ 노조 간부 비리 왜 계속되나
현대차 노조 간부들의 비리가 끊이지 않는 원인은 1차적으로 귀족화된 노조에 있다. 2000명에 이르는 노조 활동가들이 4만3000여 명에 이르는 노조원을 장악하면서 막강한 권력과 특혜를 휘두르게 됐고, 이런 구조가 필연적으로 부패를 가져온 것.
하지만 회사의 ‘눈치보기식’ 노무관리도 한몫을 했다는 지적이 많다.
“파업 조기 해결”을 요구하며 사장이 노조 위원장에게 2억 원을 전달한 것이 그동안의 노무관리가 어땠는지를 보여 주는 대표적인 사례. 한순간의 위기를 넘기기 위해 노조에 거액을 건네는 원칙 없는 관행이 굳어지면서 기형적인 노사관계가 이어져 왔다.
현대차가 돈으로 노조를 관리한 의혹은 지난해 4월 검찰의 현대·기아자동차그룹 정몽구 회장에 대한 수사과정에서도 드러났다.
당시 대검은 정 회장이 2001년부터 조성한 1000억 원의 비자금 가운데 500억 원 이상을 현대차그룹 노조를 관리하기 위한 노무관리비로 사용했다는 관련자 진술을 받아냈다. ‘강성 노조’를 관리하기 위해서는 거액의 비자금을 조성해 노조 간부들에게 직접 돈을 전달하거나 술과 식사 접대 등을 할 수밖에 없다는 것.
회사 노무관리 관계자는 “노조의 파업 찬반투표에서 찬성률을 낮추거나 협상 과정에서 회사에 민감한 부분을 많이 꺼내지 않도록 평소에 노조 간부들을 ‘특별관리’하지 않을 수 없다”고 말했다.
○ 허탈해하는 조합원과 시민들
이 전 위원장에 대한 영장 청구 사실이 알려진 16일 시민들과 조합원들의 비난이 잇따랐다.
1공장 조합원 김모(42) 씨는 “이 전 위원장 재임 당시는 선명성을 내세워 파업을 가장 많이 했던 시기”라며 “결국 조합원을 볼모로 자신의 주머니만 챙긴 셈이 아니냐”고 흥분했다.
현대차 울산공장 앞에서 식당을 운영하는 김모(38) 씨는 “가장 깨끗해야 할 노조 위원장이 회사에서 거액을 받았다니 말이 안 나온다”며 허탈해했다.
울산=정재락 기자 raks@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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