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커버스토리]“내 머리는 기획실, 손은 공장”

  • 입력 2007년 1월 20일 03시 01분


《직장인들이 사무실에서 일하고 있는 그 시간에 자신만의 지식과 지혜로 수완 좋게 사업을 꾸려가는 사람들이 있다. 이른바 ‘1인 기업’이다. 이들은 특정 기업의 하청 업무를 맡는 방식이 아니라는 점에서 1인 화물사업자나 학습지 교사 등을 포함하는 ‘프리 에이전트’와 구별된다. 단순히 오프라인 상점을 온라인으로 옮긴 1인 쇼핑몰과도 다르다.

1인 기업은 자신만의 틈새시장을 찾거나 만들어 내는 특성을 지녔다.

이들은 넓은 의미의 고객인 사회 구성원들의 욕구가 세분화되는 흐름을 파고들어 자신의 일을 찾아내고 키워 간다.》

‘1인 기업’ 시대, 생각이 곧 돈이다

#장면 1 “1년에 평균 1억 원 이상은 벌지요. 하지만 돈보다 좋은 것은 평일에 제가 좋아하는 공간인 미술관과 도서관에 갈 수 있다는 사실입니다.”

그가 가는 길은 다른 길이다. 하늘에서 헬기를 타고 내려다본다면 아마 이런 장면일 것이다. 비슷비슷한 정장을 차려 입은 직장인들이 도심의 회색빛 빌딩으로 들어갈 때 그는 편안한 옷차림으로 그곳에서 멀지 않은 서울 종로구 북촌길의 정독도서관을 찾는다.

김용섭(35) 씨는 휴식과 일을 겸해 일주일에 2∼3일은 도서관에 들른다. 자신의 업무에 필요한 통찰력과 아이디어를 얻기 위해서다. 미술관을 자주 찾는 것도 같은 이유다. 자신이 갖고 있는 지식을 창조적으로 재결합하는 데 이보다 더 좋은 환경은 없다.

전 직장에서 디지털미디어 전략 업무를 맡았던 그는 7년째 이렇게 생활하고 있다. 김 씨가 하는 일은 디지털미디어 전략 컨설팅. 법인의 전략을 짜 주는 개인이다.

#장면 2 김 씨가 정독도서관에 있을 즈음, 수원에 사는 안용성(30) 씨는 자신의 집 책상 앞에서 생각에 잠겼다. 방금 전 자신이 관리하는 온라인 커뮤니티 사이트 ‘자기경영 플러스’에서 좋은 교육 아이템을 발견했다.

‘이 주제로 교육 프로그램을 만들면 몇 사람이나 참여할까’ 하는 생각이 퍼뜩 들었다. 동시에 그의 머릿속에는 강의 장소로 적합한 회의실 위치가 내비게이션 지도처럼 쫙 펼쳐졌다. 적당하지 않은 후보지를 지워가며 최적의 장소를 찾아낸다. 핵심 콘텐츠를 보유한 강사들의 리스트는 이미 사진첩처럼 잘 정리돼 있다.

프로그램이 확정되면 온라인 커뮤니티에 공지를 띄운다. 1개월에 10회 정도 열리는 그의 세미나에는 많게는 100명, 적게는 30명이 참여한다. 행사 당일 부족한 일손은 대학생의 도움을 받는다. 안 씨의 직업은 자칭 ‘교육 프로그램 기획자’다.

그는 대학 3학년 때부터 자기 계발에 관심이 많아 관련 시장의 흐름을 파악했고 교육 프로그램 기획이라는 일을 만들었다. 소득은 웬만한 기업에 다니는 친구들과 비슷하거나 조금 많은 수준.

○ 하고 싶은 일을 사회적 수요에 맞춰

권윤구(34) 씨는 자신을 ‘북 코치’라고 소개한다. 스스로 만든 직업이다. 새로 나온 책을 먼저 읽은 뒤 인상 깊은 구절과 책의 메시지를 e메일을 통해 대중에게 전파하는 것이 그의 업무다.

2005년 북 코치로 나서기 전 1년가량은 직장생활을 했다.

“책을 읽으면서 느끼는 만족도가 아주 높았다. 책 읽은 소감을 주변 사람들에게 e메일로 보내던 것이 아예 직업이 됐다.”

사회적으로 유통되는 정보의 양이 급증하면서 책을 선택하는 데 들이는 시간을 줄이고 싶은 사람들이 주 수요층이다.

e메일 서비스는 무료다. 그 대신 다독(多讀)의 경험을 살려 출판사의 출판기획 위원으로 활동하며 소득을 올린다. 자신의 ‘책 리뷰’를 온라인 사이트에 연결해 주는 조건으로도 돈을 번다. 매체가 다양해지면서 케이블 TV에 출연하는 것도 일과에 포함됐다.

미국 포천지 편집인을 지낸 윌리엄 화이트가 만든 단어인 ‘조직 인간’. 산업화 이후 정형처럼 굳어진 그런 사회생활을 거부하는 사람이 1인 기업이다. 거대 조직에 봉사하느라 자신의 정체성과 목표를 잊거나 덮어두지 않고 이를 적극적으로 구현하겠다는 사람들이다.

권기훈(45) 씨는 오피스텔과 와인 바를 오가며 소믈리에(레스토랑에서 와인을 골라주는 사람)를 교육하는 와인 전문가다. 오스트리아에서 의대를 다니다 와인에 빠져 1998년부터 현지 와인스쿨에서 지식을 쌓았다.

‘감당할 수 있을 만큼만 일을 벌린다’는 원칙에 따라 오피스텔에서 한 번에 3, 4명만 가르친다. 와인 실습은 자신이 컨설팅해 준 제자의 점포에서 번갈아 여는 방식으로 비용을 줄였다.

와인 열풍과 더불어 소믈리에 수요가 늘어 현재 월 800만∼900만 원의 소득을 올린다. 마산대 겸임교수로도 활동 중이다.



“혼자 심리학책 출판해 베스트셀러 터뜨렸죠”

○ 잘하는 분야에서 독자영역 구축해야

2005년 중반 ‘스키너의 심리상자 열기’라는 심리학책이 출간됐다. 이 책은 1년 반이 지난 지금도 교보문고의 인문서적 베스트셀러 10위 안에 들어 있다. 통상 베스트셀러 자리를 3개월도 지키기 힘들다는 점에 비춰보면 작지 않은 성공이다.

‘스키너의 심리상자 열기’는 조영희(38) 씨가 혼자서 만든 책이다. ‘에코의 서재’라는 1인 출판기업을 세우고 6개월간 준비했다. 그는 위즈덤하우스 등 대형 출판사에서 10여 년간 일하며 틈새를 찾았다.

“역사나 철학에 비해 심리학 분야에선 고급 독자를 겨냥한 책이 거의 없었다. 심리학과 경제·경영서 중에 학문적 이론이 결합된 고급 시장을 개척하는 것이 목표다.”

출판업계는 디자인과 편집, 교정 등의 작업이 정교하게 분화돼 있어 기획과 마케팅 능력을 갖춘 1인 기업의 활동이 쉬운 편이다. 조 씨는 자신이 직접 번역한 책도 내놓았다.

물론 독립이 쉽지는 않다. 1인 기업이 되려면 ‘조직 인간’일 때 받는 정기적인 급여와 사회에서 인정해 주는 고정적인 지위를 포기해야 한다.

디지털미디어 전략 컨설턴트로 활동하는 김용섭 씨는 “전문 지식과 인맥을 쌓아 가면서 자신의 일을 서서히 키워 가야 한다”고 조언했다.

닭이 껍데기가 여문 계란을 낳기까지는 시간이 필요하다는 얘기다. 김 씨는 회사를 그만두기 직전 회사와의 별도 계약을 통해 1주일에 2, 3일만 출근해 일하는 형태의 근무를 하기도 했다. 외부에서 진행하던 자신의 일이 많아져 전업을 해야 했지만 회사에서 그의 손이 필요한 기간에 시간을 갖고 독립 능력을 키웠다.

○ 1인 기업의 생리

“행사를 알리느라 돈을 들이는 일은 없습니다. 온라인 커뮤니티 게시판에 공지를 올리면 제휴를 맺은 커뮤니티에도 알려지거든요. 통상 5만 건의 조회를 기록할 정도이니 적은 숫자는 아니지요.”(안용성 씨·교육 프로그램 기획가)

비용의 최소화는 1인 기업의 숙명이다. 인터넷은 이런 필요에 가장 충실한 도구다. 개인이 블로그나 미니홈피로 미디어를 가질 수 있게 됨에 따라 마케팅 비용을 최소화할 수 있었다. 김민희(27) 씨는 인터넷에 ‘연애할 때 유용한 요리’라는 독특한 아이템을 올려 자신을 알렸다. 덕분에 요리와 관련된 기업의 객원 연구원으로 영입돼 고정적인 수입을 올리고 있다.

1인 기업의 주요 생산품목은 결국 지식이다. 컨설팅이나 교육강사 분야에서 활동하는 사람이 많은 것도 같은 맥락이다. 이들에게 인터넷은 가장 손쉬운 ‘원재료’ 확보 수단이기도 하다. 외국의 강연장을 찾지 않고도 최소의 비용으로 새로운 지식을 얻을 수 있다.

여러 곳에서 확보한 지식을 창의적으로 연결하는 것은 1인 기업의 몫이다. 이들에게 유독 책읽기나 인터넷 검색 시간이 많은 것은 이런 이유에서다.

저술과 강연은 이들의 핵심 마케팅 수단이자 소득원이다. 인세와 강연료를 챙기면서 미래의 잠재고객을 확보하는 효과도 거둘 수 있다.

1인 기업은 넓은 사무공간이 필요하지 않기 때문에 굳이 사무실을 임차하지 않고 재택근무를 하는 ‘기업주’들이 많다.

비용의 최소화는 시장에서 자신을 차별화하는 무기가 된다. 디지털미디어 전략을 컨설팅할 때 경쟁상대인 법인보다 가격을 낮춰 제시할 수 있다. 책을 출판할 때도 대형 출판사들이 최소 3만 부에 손익분기점을 맞춘다면 1인 출판기업은 1만 부로도 가능하다.

적은 비용 지출은 곧 높은 영업이익률을 뜻한다. 대부분의 1인 기업은 ‘매출’과 ‘순이익’ 간의 차이가 크지 않다. 금전적인 투자비용이 적은 만큼 사업환경 변화에 따른 위험도 그만큼 줄어든다.

○ 1인 기업의 인프라

사회 인프라의 발달은 1인 기업에 유리한 환경을 조성하고 있다. 북 코치로 활동 중인 권윤구 씨는 방송 일정 외에는 집 밖에 나가지 않고도 거의 모든 업무를 처리할 수 있다. 택배시스템의 발달 덕택이다.

서울 강남과 신촌 등에 있는 ‘토즈’라는 가게는 1인 기업의 사회적 인프라를 상징하는 곳이다. 이곳은 2인실부터 90인실까지 다양한 독립공간을 갖춰놓고 있다. 스타벅스에서 조용한 대화를 나누기 힘들었던 1인 기업들은 이곳을 예약해 자신의 사무실처럼 사용한다. 2시간 동안 쓰면서 1인당 차 한 잔 값 정도만 지불하면 된다. 인테리어는 대기업의 사무실 공간과 비교해도 손색이 없다.

지식 생산이 주 업무인 1인 기업을 위해 콘텐츠를 유통시켜 주는 장(場)도 섰다. 인터넷 사이트 비법닷컴(www.vipup.com)에서는 ‘동대문 상권 분석’ 같은 독창적인 콘텐츠를 개인들로부터 확보해 유료로 유통시키고 있다.

비법닷컴 나원주 사장은 “초기 단계이긴 하지만 콘텐츠 자체로도 소득을 올리는 개인이 늘고 있다”며 “이곳은 특정분야에서 자신의 존재를 알리는 홍보 수단도 된다”고 말했다.

미디어가 다변화한 것도 1인 기업에는 고무적인 변화다. 1인 기업은 케이블TV와 위성 디지털 멀티미디어 방송(DMB) 등에 콘텐츠를 공급하는 역할을 한다. 연애 요리 전문가 김민희 씨와 북 코치 권윤구 씨는 방송 프로그램에 고정적으로 출연하고 있다.

‘글로벌 1인 기업 성공전략’ 강연가로 활동하며 자신도 1인 기업인 김형환(40) 씨는 “처음 개척한 분야에서 최고가 되는 것이 중요한 성공조건”이라며 “현재 자신이 하고 있는 일에 가치를 부여해 진정한 전문가가 돼야 한다”고 강조했다.

글=허진석 기자 jameshuh@donga.com

디자인=김성훈 기자 ksh97@donga.com



‘나홀로 회사’ 차리려면

‘자신의 능력을 믿는다.’

1인 기업에 관심이 있는 사람들은 공통적으로 자기 계발 욕구가 강하다. 자신이 사장이자 유일한 직원이 되는 기업을 꿈꾸기 때문이다.

창업을 하기 전 자신이 가진 핵심기술을 단련하는 것은 기본이다. 구본형변화경영연구소 구본형 소장은 직장 생활도 ‘회사와 나(1인 기업)의 계약 관계’로 받아들이라고 권한다. 회사를 고객으로 인식하면 고객을 만족시킬 최선의 방법을 찾게 되고, 자신의 기술도 더욱 탄탄하게 만들 수 있다는 얘기다.

1인 기업의 생존은 자신의 핵심 능력을 극대화할 수 있느냐에 달렸다. 출판 분야의 경우 기획능력이 있다면 1인 기업 설립은 그다지 부담스럽지 않은 환경이다. 물건을 제대로 공급하는 능력을 갖췄다면 온라인 장터(마켓플레이스)에 쇼핑몰을 차리는 것도 어렵지 않다. 물론 경쟁은 그만큼 치열하다.

외부 서비스 환경을 적극 활용해 핵심 기능에 집중해야 한다. 교육 프로그램 기획가인 안용성 씨는 프로그램 기획과 마케팅에만 관여하고 구체적인 행사진행 등은 대학생들에게 맡긴다. 자신이 할 수도 있지만 시간을 좀 더 효율적으로 쓰기 위해서다. 외부 서비스 환경은 앞으로 더욱 정교해지고 다양해질 것이다.

사업 계획을 세울 때는 잠재적인 실패 요인에 유의해야 한다. 성공은 위험을 무릅쓰고 과감히 시행했기 때문이 아니라 실패에 따른 피해를 최소화하는 조치들을 준비했기 때문이다. 성공한 1인 기업 창업자들은 예측에 근거한 시장 조사나 예상 매출액은 언제라도 틀릴 수 있다는 점을 잘 알고 있다.

신기술이 나오면 내 편으로 만든다. 북 코치 권윤구 씨는 처음에는 웹메일 서비스를 이용해 e메일을 보내다가 e메일 대행 서비스 업체를 3곳이나 바꿔가며 신기술을 받아들였다. 지금도 e메일 관리를 수월하게 하는 방법을 찾고 있다.

1인 기업 창업자들은 “조직에 속해 있으면 가끔 일을 하지 않아도 표가 나지 않지만 1인 기업에서는 바로 실적으로 나타난다”며 창업자의 의지와 역량을 최고의 덕목으로 제시했다. 권기훈 씨는 “전문 지식을 쌓는 것이 가장 중요하다”고 말했다. 그것이 없으면 살아남는 것 자체가 불가능하다는 뜻이라고 덧붙였다.

허진석 기자 jameshuh@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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