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명실상부한 ‘한국의 간판기업’으로 성장
삼성그룹의 총매출은 지난해 141조 원으로 이 회장이 취임한 1987년(13조5000억 원)에 비해 10배 이상으로 커졌다. 그룹 계열사들의 주식 시가총액은 작년 말 현재 140조 원으로, 1987년(1조 원)의 140배나 된다. 이 회장 취임 후 신세계, 제일제당(현 CJ), 한솔그룹 등이 계열분리된 점을 감안하면 실제 차이는 더 크다. 그동안 삼성은 명실상부한 한국의 간판기업이 됐고 한국이 자랑할 수 있는 세계적 글로벌기업으로 성장했다.
이 회장의 리더십 아래 삼성은 1990년대에 본격적인 도약기를 맞이한다.
1993년에는 세계 메모리반도체 시장 1위 업체가 됐다. 다음 해 계열사인 삼성물산이 국내 기업 중 처음으로 100억 달러 수출탑을 받았다. 1998년엔 초박막트랜지스터 액정표시장치(TFT-LCD) 분야에서 세계시장 점유율 1위 업체로 발돋움했다.
○ ‘신경영’에서 ‘창조경영’까지
그는 삼성그룹 사장들을 불러 책상 위에 놓인 삼성 제품들을 망치로 내려치면서 “모든 제품을 다시 만들라”며 호통을 쳤다.
같은 해 6월 독일 프랑크푸르트에서 열린 삼성그룹 사장단 회의에서는 “마누라와 자식만 빼고 다 바꾸라”며 ‘신(新)경영’을 선언했다.
이 회장의 ‘신경영’ 선언은 양적 성장을 중시하는 관행에서 품질과 기능을 중시하는 질적 성장 위주로 삼성을 탈바꿈시키는 결정적 계기가 됐다.
지난해 9월에는 미국 뉴욕에서 열린 전자사장단 회의에서 “남의 것만 카피해서는 안 되며 모든 것은 원점에서 보고 새로운 것을 찾으라”고 지시했고 올해 신년사에서는 ‘창조경영’을 화두로 던졌다.
이 회장을 보좌하는 삼성 경영진은 이 회장을 ‘지식과 경험을 바탕으로 미래를 내다볼 수 있는 직관(直觀)을 갖춘 경영자’라고 평한다.
주변의 반대를 무릅쓰고 미래를 내다보고 반도체에 투자한 것이나 1990년대 초반 일본 반도체 업체들이 불황으로 주춤할 때 공격적인 설비투자를 한 것, 1993년 당시 휴대전화 맨 아래쪽에 있는 통화버튼을 숫자버튼 위로 올리라고 지시한 것이 대표적 사례로 꼽힌다.
이 회장의 리더십은 해외에서도 인정받고 있다. 2005년 영국의 유력 경제일간지 파이낸셜타임스는 이 회장을 세계에서 가장 영향력 있는 기업가 25인 중 한 명으로 선정하기도 했다.
○ “앞으로 20년이 더 걱정”
이 회장은 25일 전국경제인연합회 회장단 회의에 참석한 뒤 취임 20주년 소감을 묻자 “앞으로 20년이 더 걱정”이라고 말했다.
그는 올해 신년사에서도 “영원한 1등은 존재하지 않으며, 삼성 역시 예외는 아니어서 우리만의 경쟁력을 갖추지 않으면 정상의 발치에서 주저앉을 것”이라며 위기감을 내비쳤다.
현재 삼성은 과거와는 질적으로 다른 심각한 위기 상황에 처해 있다는 게 이 회장의 진단이다.
실제로 삼성은 2004년 사상 최대 실적을 올린 이후 줄곧 성장세가 정체되고 있다. 그룹의 전체 매출은 최근 3년간 계속 내리막길을 걷고 있다.
대표 계열사인 삼성전자의 경우 반도체가 그나마 수익을 내고 있을 뿐 휴대전화는 노키아 모토로라와의 격차를 좀처럼 좁히지 못하고 있다. 반도체 사업도 경쟁업체들의 추격이 거세다. 반도체에 이어 새로 관심을 쏟고 있는 액정표시장치(LCD) 사업은 3년 연속 1조 원가량 투자했지만 수익을 내지 못하고 있다.
이 회장의 아들 이재용 삼성전자 전무에 대한 경영권 승계 작업을 얼마나 원활하게 마무리하느냐도 간단치 않은 과제로 꼽힌다.
삼성그룹 안팎에서는 “삼성이 과거 반도체 사업에 과감하게 투자해 성공을 거뒀듯이 새로운 성장 동력을 찾아 과감한 투자에 나서야 한다”며 “이 숙제는 이 회장 이후 삼성을 물려받을 후계자의 몫이기도 하다”는 얘기가 나오고 있다.
신치영 기자 higgledy@donga.com
부형권 기자 bookum90@donga.com
황진영 기자 buddy@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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