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이 날리기’ 별것 아니구먼…

  • 입력 2007년 1월 29일 02시 58분


전영한 기자
전영한 기자
“맨 뒷줄에서도 칠판 글씨 잘 보이세요?”

“나는 여기서도 안 보이는데….”(맨 앞줄 할아버지)

25일 오후 서울 동대문구 청량리동 동대문노인종합복지관 3층 강의실.

30여 명의 60, 70대 할아버지 할머니들이 ‘강사’인 김예림(22·상명대 경제학과 4학년) 씨로부터 휴대전화 사용법을 배우고 있었다. 칠판 옆에는 가로 1.5m, 세로 2.5m의 교육용 대형 휴대전화 그림이 걸려 있었다.

디지털 세대인 10대나 20대에게 휴대전화로 문자 보내기는 ‘식은 죽 먹기’나 다름없다. 하지만 실버 세대에게는 2시간의 진지한 학습이 필요했다.

“어르신들. 여기 ‘취소’ 버튼은 보시던 책을 뒤로 한 장 넘기는 것과 같아요. 반대로 ‘확인’ 버튼은 다음 쪽으로 넘어가게 하는 역할을 해요. 휴대전화는 어지간한 효자보다도 착해요. 시키면 시킨 대로 하거든요.”(김예림 씨)

“아하.”

이동통신회사 KTF가 2005년 1월부터 시작한 이 ‘실버 사랑 휴대전화 교육’은 당초에는 3개월만 시범적으로 실시할 계획이었다. 그러나 정보화의 소외 계층인 중장년 세대의 폭발적 호응 때문에 중단하지 못하고 지금까지 이어지고 있다. 전국을 돌며 총 50여 회의 강의가 진행됐고 수강생만 3000명을 넘어섰다. 이들의 평균 연령은 약 70세.

이날도 배움의 열기가 뜨거웠다. 20∼30분 강의하고 5분 휴식을 하는 방식으로 진행됐는데 자리를 뜨는 ‘학생’은 1명도 없었다. 쉬는 시간에도 주위의 대학생 강사를 붙잡고 복습에 여념이 없었다.

“휴대전화의 문자는 글 쓰는 순서대로 만들어져요. 그러니까 버튼 누르시기 전에 허공에 쓰고 싶은 글자를 먼저 써보세요.”

강사의 이런 지시가 떨어지자 할아버지 할머니들은 저마다 손으로 크게 글자를 써보고 머리 숙여 버튼 누르기를 반복했다.

이들 노인은 대부분 값비싼 휴대전화를 가지고 있었다. 자녀에게서 선물로 받은 경우가 많다. 그러나 정작 그 사용법을 진지하게 가르쳐 주는 가족은 드물다고 한다. 2시간 교육이 끝난 뒤 ‘실버사랑 휴대폰 교육 만세 내가 1등입니다’라는 18자(字) 문장을 누가 먼저 강사에게 보내는지 경기를 했다. 2분 30초 걸린 한 할머니가 우승해 맛있는 빵을 선물로 받았다.

그럼 꼴찌는 시간이 얼마나 걸렸을까. 교육이 끝난 뒤에도 강의실에 남아 보조강사와 함께 공부를 계속하던 한 할아버지가 1시간 만에 문자를 보내왔다.

부형권 기자 bookum90@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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