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부가 내놓는 부동산 대책도 항생제에 비유할 수 있을 것 같다.
새해가 밝자마자 정부는 분양가 상한제와 분양원가 공개를 주요 내용으로 한 ‘1·11 대책’을 내놓았다.
지난해 ‘11·15 대책’으로 분양가 인하와 공급 확대에 대한 기대감을 시장에 심어주는 데는 일단 성공했지만 고(高)분양가와 주택공급 부족을 우려하는 불안심리를 확실히 불식시킬 필요가 있다는 이유에서였다.
‘1·11 대책’이 발표된 지 20일이 흘렀다. 시장 상황을 종합해 보면 최소한 아직까지는 약효가 있는 것으로 보인다.
매수세가 자취를 감추면서 거래는 거의 끊겼고 오르기만 하던 서울의 재건축 아파트 값도 5개월 만에 내림세로 돌아섰다. 시장의 주도권이 파는 사람에서 사는 사람으로 확실하게 넘어간 것이다.
그러나 대책의 효과가 얼마나 지속될 것인지는 좀 더 두고 봐야 한다는 게 전문가들의 공통된 견해다. 집값은 수요와 공급에 의해 결정되는데 아직도 주택시장의 공급은 턱없이 부족하다는 이유다.
정부는 투기세력을 뿌리 뽑겠다는 명분 아래 공급 확대보다는 수요 억제에 치중하고 있다. 정부는 2003년 분양권 전매 금지 등을 담은 ‘5·23 대책’부터 지난해 ‘11·15 대책’까지 부동산 종합대책만 8번을 발표했다. 재건축 규제와 세제(稅制) 강화, 대출규제 강화 등이 이들 대책의 큰 줄기였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아파트 값은 내리기는커녕 더 올랐다. 지난해 말 현재 서울의 아파트 값은 2003년 초에 비해 44% 폭등했다.
이럴수록 정부는 점점 독한 항생제 처방에 매달렸다. 그 결과 양질(良質)의 주택을 ‘싸게, 빨리, 많이’ 공급한다는 정책목표가 실현될 가능성은 점점 멀어져 갔다.
정부는 다음 달 초 ‘획기적인’ 대책을 또 내놓겠다고 했다.
이번에는 꼭 집값이 안정되기를 바란다. 만약 그렇지 않으면 얼마나 독한 처방을 내놓아야 할지 생각만 해도 끔찍하다. 약물 남용은 결국 몸을 망가뜨린다.
이태훈 경제부 기자 jefflee@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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