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계최강 미니기업을 가다]<12>특수 컨베이어벨트 ‘HYC’

  • 입력 2007년 1월 30일 03시 00분


대만 난터우 난쿵공업단지에 위치한 HYC는 종업원 150명의 작은 회사다. 하지만 대기업이 못 만드는 특수 컨베이어 벨트를 만들어 세계 최고의 점유율을 자랑한다. 이 회사 린지진 사장(왼쪽)이 공항에서 짐을 옮길 때 사용되는 미끄럼 방지 수하물 벨트 앞에서 공장 자동화에 대해 설명하고 있다. 난터우=김상훈 기자
대만 난터우 난쿵공업단지에 위치한 HYC는 종업원 150명의 작은 회사다. 하지만 대기업이 못 만드는 특수 컨베이어 벨트를 만들어 세계 최고의 점유율을 자랑한다. 이 회사 린지진 사장(왼쪽)이 공항에서 짐을 옮길 때 사용되는 미끄럼 방지 수하물 벨트 앞에서 공장 자동화에 대해 설명하고 있다. 난터우=김상훈 기자
HYC 경영진은 근무환경이 좋아야 능률도 오른다는 생각에 공장을 공원처럼 설계했다. 대만 지도를 본뜬 모양의 연못에는 난터우 지방을 상징하는 작은 섬이 있다. 그 뒤편으로 제3공장 신규 건설 공사가 한창이다. 난터우=김상훈 기자
HYC 경영진은 근무환경이 좋아야 능률도 오른다는 생각에 공장을 공원처럼 설계했다. 대만 지도를 본뜬 모양의 연못에는 난터우 지방을 상징하는 작은 섬이 있다. 그 뒤편으로 제3공장 신규 건설 공사가 한창이다. 난터우=김상훈 기자
《대만 수도 타이베이(臺北)에서 서남쪽으로 150km가량 떨어진 난터우(南投). 2만 평 규모의 공장에 들어서니 2층 건물 높이의 커다란 기계 수십 대가 눈에 들어왔다. 기계는 멈춰 있는 것처럼 보였다. 하지만 이 기계는 1분에 1m씩 컨베이어 벨트를 천천히 뽑아내고 있었다. 직원이 150명으로 특수 컨베이어 벨트 부문에서 세계 최고의 경쟁력을 갖춘 HYC의 생산 현장이다. HYC는 젖소용 물침대, 농산물 전용 무독성 컨베이어 벨트 등을 생산하는 특수 컨베이어 벨트 전문 제조업체다. 이 회사가 생산하는 특수 컨베이어 벨트는 틈새시장을 공략해 해당 분야에서 대부분 시장점유율 1위를 차지한다.》

○ 대기업이 할 수 없는 일을 하라

HYC의 2006년 세계 컨베이어 벨트 시장점유율은 약 2.5%. 세계시장의 45%는 영국의 던롭, 미국의 굿이어, 독일의 콘티넨털 등 ‘빅3’ 화학회사가 점유하고 있다. 하지만 특수 컨베이어 벨트 시장에서는 달랐다. 대표적인 상품이 젖소용 물침대. HYC는 홑겹의 컨베이어 벨트를 두 겹으로 뽑아 커다란 물주머니 모양의 튜브로 만들었다. 이 위에서 젖소를 재우면 숙면을 취한 젖소가 우유를 25% 더 생산한다.

세계에서 이 제품을 만드는 회사는 던롭과 HYC 두 곳뿐이다. HYC는 전체 규모에서 던롭보다 훨씬 뒤지지만 젖소용 물침대만큼은 던롭을 누르고 세계시장에서 점유율 1위를 차지하고 있다.

이외에도 이 회사는 농산물 운반에 사용되는 농산물 전용 무독성 컨베이어 벨트, 공항에서 짐을 옮길 때 사용되는 미끄럼 방지 수하물 벨트, 광물 운반 전용 컨베이어 벨트 등 시장 규모가 작아 대기업이 뛰어들기 힘든 영역에서 성공을 거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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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를 위해 HYC는 ‘한 벨트에 한 생산 라인’이란 원칙을 세웠다. 경쟁사들은 비용을 절감하려고 하나의 생산 라인에서 여러 종류의 벨트를 만들었다. 하지만 이래서는 컨베이어 벨트로 주머니를 만든다거나 무독성 원료를 사용해 벨트를 만드는 게 불가능했다.

HYC의 린지진(林季進) 사장은 “규모를 중시했던 던롭이나 굿이어는 특수 컨베이어 벨트에는 관심이 없었다. 다품종 소량생산은 수지가 맞지 않는다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우리는 이 틈새를 노렸다”라고 말했다.

HYC가 처음부터 세계적인 경쟁력을 갖춘 기업은 아니었다. 1968년 설립돼 처음에는 그저 싼 임금을 이용해 일반 컨베이어 벨트를 만들었다. 가격 경쟁을 통해 고객사를 확보하는 평범한 중소기업이었다. 이익률도 낮았다.

하지만 1999년 대만 대지진을 기점으로 모든 것이 달라졌다. 난터우는 대만 대지진의 진앙이었다. 도시를 강타한 지진은 지역 400여 개 중소제조업체 가운데 200개 이상의 건물과 설비를 파괴했다. HYC 공장도 이때 무너졌다. 지진의 피해를 본 대부분의 업체는 공장 문을 닫고 부도를 내거나 더 싼 임금, 더 싼 땅을 찾아 중국으로 건너갔다. 하지만 HYC는 2002년 다시 이곳에 문을 열었다.

지진 때문에 땅값이 싸지자 공장 터를 넓혔다. 지역에 실업자가 크게 늘어났기 때문에 우수한 인력도 쉽게 더 뽑을 수 있었다. 생산품목도 경쟁업체와 차별화된 특수 컨베이어 벨트로 한정했다. 그때부터 모든 것이 달라졌다. 위기가 기회가 된 셈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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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2>특수 컨베이어벨트 ‘HYC’

○ 사람이 없는 공장

지진이 일어나기 전해인 1998년 HYC의 연간 매출액은 약 5억 대만달러(약 142억 원)였다. 하지만 공장을 복구한 뒤 매출은 3배 이상 늘어나 2006년 17억 대만달러(약 485억 원)가 됐다. 같은 기간에 직원은 100여 명에서 150여 명으로 늘었다.

자연히 이익률도 높아졌다. 이 회사는 지난해 대만 증시에 상장되면서 최근 3년간 영업이익률을 공시했다. 매년 평균 15%에 이르렀다. 제조업체의 영업이익률은 일반적으로 10%를 넘기 힘들다.

린 사장은 “비결을 알려 주겠다”며 직접 승용차를 몰고 기자를 공장으로 데려갔다. 공장 방문 시간은 오후 3시. 한창 일할 시간이었는데도 사람이 별로 보이지 않았다. 원료를 기계에 넣는 선반에 두 명, 완성된 컨베이어 벨트를 트럭에 싣는 곳에 두 명, 그리고 공장을 어슬렁거리듯 돌아다니며 기계를 살피는 직원이 두세 명. 이들이 전부였다.

린 사장은 “공장 두 곳에서 일하는 생산직 근로자는 40명인데 그나마 1일 3교대로 24시간 일하므로 공장에서 동시에 일하는 인원은 12, 13명”이라고 설명했다. 대부분의 작업이 자동으로 이뤄지기 때문에 사람이 많이 필요하지 않다는 것이다.

이 공장에서 1년 동안 생산하는 벨트를 이으면 길이가 약 1500km나 된다. 서울과 타이베이 사이의 거리와 맞먹는다.

그 대신 110명의 사무직 직원 가운데 절반이 연구개발(R&D)을 담당하는 엔지니어다. 이들은 직접 공장 설비를 설계하고 새 제품을 고안한다. 이들의 대표적인 성과가 ‘원스톱 생산방식’이다. 원료가 창고에 배달되면 생산라인으로 자동 운반되고 재고는 자동으로 정리된다. 완성품은 수송 차량에까지 자동으로 옮겨진다.

이 회사는 공장을 두 곳 갖고 있는데 비슷한 규모의 공장을 세 곳 더 짓고 있다. 하지만 직원은 2배 정도만 늘릴 계획이다. 자동화율이 점점 높아져 사람이 덜 필요하기 때문이다. 린 사장은 “많은 사람이 필요한 게 아니라 좋은 사람이 필요하다”고 말했다.

취재를 마치고 돌아오는 길에 린 사장의 집무실 오른쪽 벽에 걸려 있는 ‘향천분투(向天奮鬪)’라는 글귀의 족자가 눈에 들어왔다. ‘뜻이 하늘에 닿을 때까지 열심히 노력하라’는 의미였다.

▼공원같은 공장… 통유리 사장실… 대화가 숨쉰다▼

YC 공장은 공원처럼 설계돼 있다. 근무 환경이 좋아야 작업 능률도 올라간다는 경영진의 판단이 반영된 것이다.

본사 건물은 시커먼 컨베이어 벨트를 생산하는 회사답지 않게 온통 흰색으로 지어졌다. 건물 벽도, 정문도, 직원 식당도, 심지어 사무실의 책상까지도 모두 흰색이다. ‘굴뚝산업’을 하고 있지만 생각만큼은 하이테크 기업처럼 갖고 일하자는 의도라고 했다.

앞뜰엔 나무와 꽃, 연못 등으로 장식된 정원이 조성돼 있다. 공장 터는 키가 10m 이상 되는 활엽수 수십 그루로 둘러싸여 있다. 공장 곳곳에는 두 팔을 벌려도 닿지 않는 크기의 큰 바위가 놓여 있었다. 각각의 나무는 모두 의미를 갖고 계획적으로 심어졌다.

정문 왼편의 나무는 400년 된 아름드리 활엽수. 이 나무 주위에는 작은 나무가 수없이 자라나 큰 나무를 타고 오르며 함께 잎을 피우고 있었다. 기생(寄生) 나무들이 가운데 큰 나무를 휘감으며 나무를 더욱 튼튼하게 만든 덕에 400년을 살아왔다는 것이다.

이 회사 린지진 사장은 “함께 400년을 살아온 이 나무처럼 경영진과 직원들이 힘을 합쳐 400년을 이어 갈 수 있는 회사를 만들자는 뜻”이라고 말했다. 이렇게 공장 환경을 가꾸는 데 수십억 원이 들었다.

이 키 큰 나무들의 가격은 그루당 약 15만 대만달러(약 428만 원). 개당 30만 대만달러인 큰 바위도 10개 이상 구입했다. 하루 종일 시커먼 공장에서 시달리거나 서류와 씨름하는 직원들이 잠시 창밖을 내다보고 정원을 거닐면서 편한 휴식을 취하라는 의도에서다.

사장 집무실도 눈에 띄었다. 본관 건물에 들어서서 약간만 고개를 들면 사장이 뭘 하고 있는지 금방 알 수 있다. 2층짜리 본관 입구 위층에 배치된 사장실은 전면이 유리로 만들어져 있다. 회사를 찾은 고객들이나 건물에 들어서는 직원들은 사장실 내부를 훤히 들여다볼 수 있다. 린 사장은 “직원들은 정원을 보면서 휴식을 취해야 능률이 올라가고 사장은 감시를 당해야 능률이 올라간다”고 말했다.

난터우=김상훈 기자 sanhkim@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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