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교시절엔 대학입시 준비로 방학 때도 마음 놓고 놀아보지 못한 인균(19) 씨.
올해는 그토록 원하던 대학에 합격한 만큼 겨울방학을 멋지게 보내리라 다짐하며 스노보드를 배우기로 결심했다. 곡예를 하듯 흰눈의 비탈길을 내려오는 모습은 상상만으로도 뿌듯했다.
인균 씨는 ‘스노보드를 배우려면 비용이 만만치 않을 것’이라는 주변의 조언에 대비하기로 했다.
우선 이번 겨울 마음껏 스키장엔 다닐 수 있도록 시즌권을 구입하기로 했다. 용돈으로는 부족하다 싶어 부모님께 대학 합격 선물로 사달라고 졸랐다. 누나에게는 장갑 고글 등 소품을 부탁했고, 한푼 두푼 모은 용돈을 털어 인터넷 장터에서 중고 스노보드도 마련했다.
준비 끝.
손꼽아 기다리던 개장일에 맞춰 인균 씨는 친구들과 스키장으로 향했다.
넘어지고 구르면서 며칠을 버티자 제법 쉬운 코스에서 기교와 여유를 부리며 스노보드를 탈 정도의 실력이 됐다.
그런데 이게 웬일? 갑자기 새로운 변수가 생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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누나에게서 그토록 원하던 아르바이트 자리가 생겼다는 연락이 왔다. 아르바이트는 매일 하는 일이어서 스노보드는 주말밖에 탈 수 없었다.
고민하는 인균 씨에게 누나는 “네가 원하던 아르바이트 자리를 겨우 찾은 거니까 절대로 놓치지 마! 스노보드는 천천히 배워도 되잖아”라고 조언했다.
하지만 그렇게 쉽게 결정할 일은 아니었다.
장갑이나 고글은 그렇다 치더라도 40만 원짜리 시즌권을 날려 버리는 것은 너무 아깝다는 생각이 들었다. 아르바이트로 얼마나 벌 수 있는지 모르겠지만, 40만 원을 감안해야 할 것 같았다.
어머니는 의외의 조언을 해 주셨다.
“시즌권 때문에 고민하는 거니? 엄마 생각엔 시즌권을 사는 데 쓴 돈은 일단 잊어버리고 판단하는 게 합리적인 것 같은데?”
아니, 평소에는 돈 1만 원에도 벌벌 떠시던 어머니가 40만 원을 잊어버리라고 말씀하시다니.
“정말 시즌권 구입비용을 생각하지 말아야 하나? 내가 아르바이트를 하길 바라서 하시는 말씀은 아닐까.”
::이해::
더 큰 이득 위해 손해 감수하는 게 경제죠
‘엎질러진 물’이라는 옛말이 있다.
지난 일에 연연하지 말고 앞날을 생각하라는 이 속담에는 우리 조상의 지혜뿐 아니라 경제의 원리도 숨어 있다.
우선 합리적 의사결정의 기본은 기회비용을 인식하는 데서 시작된다.
예를 들어 5년 전에 3억 원에 산 집을 지금 4억 원에 팔았다고 가정하자. 이 사람이 집을 산 것이 좋은 결정이었는지는 기회비용을 따져봐야 알 수 있다.
‘5년 동안 1억 원을 벌었으니 잘한 일이야’라고 판단하는 것은 기회비용을 모르는 사람의 생각일 뿐이다.
만일 5년 전에 3억 원을 투자해 1억5000만 원을 벌 수 있었던 기회가 있었다면 이 1억5000만 원이 집 구입의 기회비용이다.
결국 5년 전에 집을 산 탓에 5000만 원을 더 벌 수 있는 기회를 놓친 만큼 잘못된 의사결정을 한 것이다. 이처럼 기회비용을 고려하면 합리적 선택의 결과가 달라진다.
이와는 정반대로 절대 고려하면 안 되는 ‘비용’이 있다. 바로 ‘매몰비용’이다. 깊은 바다 속으로 침몰해 버린 배처럼 물 속에 매몰되어 회수할 수 없는 성질의 비용이라는 뜻이다.
이런 비용은 어떤 일을 결정해야 할 때 고려할 필요가 없다. 그 대신 앞으로 얻을 수 있는 이득과 추가로 들어가야 할 비용만을 비교하면 된다.
인균 씨도 합리적 의사결정을 위해서는 양도 불가능한 시즌권을 구입하는 데 쓴 돈 40만 원은 매몰비용이므로 잊어야 한다.
그 대신 앞으로 남은 방학 기간 아르바이트를 하면서 돈을 버는 게 스노보드를 타는 효용보다 크다고 생각하면 아르바이트를 선택하면 그만인 것이다.
경제학에서는 아르바이트가 더 좋다고 생각하면서도, 시즌권에 쓴 돈이 아까워서 스노보드 타는 것을 선택하면 비합리적이라고 본다. ‘지난 일은 지난 일’일 뿐이기 때문이다.
어제 시험을 망쳤다며 걱정만 하면서 내일 시험 준비에 소홀한 학생도 매몰비용 때문에 합리적 의사결정을 하지 못하는 대표적 사례다. 남은 시간에 시험공부를 열심히 해 내일 시험 성적을 올려야 평균 점수가 높아진다. 이게 현명한 선택이다.
경제 원리를 알면 시험 성적을 올리는 데에도 도움이 된다.한 진 수 경인교대 사회교육과 교수·경제학 박사
정리=이나연 기자 larosa@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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