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잘 모르겠는데요. 자료를 찾아봐야겠습니다.(책자를 뒤적이다가) 아! 1957년에 한 번 한 적이 있네요. 그 후 한번도 없습니다.”(혼다자동차 노조 간부)
전 세계 28개국 138개 공장에서 약 14만 명을 고용하고 있는 혼다자동차의 가장 큰 공장인 일본 사이타마(埼玉) 현 공장. 종업원 5만 명에 노조 전임자만 60여 명이다.
그러나 지난해 12월 말 일본 노조의 60%가 가입해 있는 일본노동조합총연합(일명 聯合·렌고)의 사이타마 현 지부 사무실을 찾았을 때 기자는 사무실 어디에서도 플래카드나 빨간 머리띠를 보지 못했다. 노조 간부들은 모두 양복을 입고 있어 사무직원인지 노조 간부인지 구별되지 않았다.
전국혼다노동조합연합회 부회장이면서 렌고 사이타마지방협의회 의장인 나가사와 기미히코 씨는 “우리는 혼다자동차의 국내외 경쟁력을 높이기 위해 조합원 차원에서 어떻게 하면 비용을 더 줄일 수 있을지를 항상 생각한다”며 “이익이 얼마 났으니 그중에서 몇 %를 조합원에게 돌려달라는 식으로 요구하지는 않는다”고 말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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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2년된 직원 임금, 현대차와 비슷
혼다는 지난해 회사 역사상 최대의 실적을 올렸다. 지난해 4월부터 올 3월까지의 예상 매출액은 11조 엔(약 88조 원)에 영업이익만 8200억 엔(약 6조5600억 원)이다.
그런데 혼다 노사가 협상을 통해 정한 올해 기본급 인상분은 월 600엔(약 4800원)이다. 사실상 동결이나 다름없다. 실적에 따라 변하는 보너스도 지난해와 큰 차이가 없다. 올해 보너스는 6.6개월치. 보통 5개월치를 받기 때문에 사상 최대의 실적을 올린 성과급으로는 1.6개월치 보너스가 전부인 셈이다.
55년째 무파업 기록을 이어 가고, 노조가 자진해 5년째 기본급 동결을 선언한 도요타자동차의 사정도 혼다와 크게 다르지 않다.
나가사와 혼다노조연합회 부회장은 “전체 생산비용이 올라가 우리 제품의 판매에 부담이 될 정도로 임금을 올려 달라는 것은 이해하기 힘들다”고 말했다.
미국, 유럽, 한국의 내로라하는 자동차 기업들과 피 말리는 경쟁을 벌이고 있는 상황에서 상대 기업의 임금이나 생산비 수준을 고려하지 않을 수 없다는 설명이었다.
그러면서 그는 수첩을 꺼내 혼다 노조원의 임금 명세서를 공개했다.
올해 41세, 입사 22년째인 생산직 근로자의 지난해 평균임금은 615만 엔(약 4900만 원). 상여금 등을 모두 합친 금액이다. 월 30시간 잔업을 한다고 가정하고 이를 수당으로 계산해 합치니 연 780만 엔(약 6200만 원) 정도였다.
이 액수를 전해들은 현대자동차 관계자는 “퇴직금, 연금액, 기타 복지비 등 복잡한 부분이 있어 절대 비교를 하기는 어렵지만 현대·기아자동차의 20년차 직원에 비해 그렇게 많지 않은 수준”이라고 설명했다.
수익을 임금으로 돌려받는 대신 혼다는 연구개발과 설비 증설에 투자했다. 최근 5년 새 혼다가 새로 지은 해외 공장은 3개. 경쟁기업인 미국의 GM 포드 다임러크라이슬러 등이 잇달아 임금이 싼 해외로 기업을 이전한 것과 달리 혼다의 해외 공장에서는 1800여 명의 본사 직원이 일하고 있다. 이 가운데 1500여 명은 조합원이다. 근로자의 임금을 아껴 투자한 설비가 결국에는 근로자의 고용안정에 기여한 셈이다.
○사장도 노조원도 모두가 사원
혼다의 기업문화는 독특하다. 사장부터 신입사원까지 모두 같은 사원이라는 인식을 갖고 있다. 널찍한 사무실에 들어서면 사장과 임원의 집무실이 따로 없다. 직원들도 사장을 부를 때 “사장님”이라고 하지 않고 그냥 “후쿠이 씨”(현 후쿠이 다케오·福井威夫 사장)라고 부른다.
‘기술의 혼다’라는 별명처럼 혼다 소이치로 창업자가 일선에서 물러난 뒤 선임됐던 5명의 사장은 모두 기술자다. 창업자와는 아무런 혈연관계 없이 신입사원으로 입사한 일반 직원 출신이다.
그래서 직원들의 ‘내 회사’에 대한 애착은 남다르다. ‘파업은 자해(自害)행위’라는 인식이 강한 것도 이런 기업 문화가 배경에 깔려 있다.
후쿠이 사장은 기회 있을 때마다 “혼다의 경영진은 노조의 얘기를 ‘하늘의 목소리’로 듣는다”고 말한다. 노사가 공동운명체라고 생각하는 노조가 회사의 경영상태를 고려하면서 의사결정을 내리기 때문에 노조의 뜻을 존중한다는 것.
노조도 경영진의 배려와 투명한 정보 경영에 충분히 만족하고 있었다.
나가사와 노조 부회장은 “회사가 제공하는 정보를 전폭적으로 신뢰한다”고 말했다.
“신뢰관계가 없으면 노사 간의 협조가 있을 수 없습니다. 회사는 간부들이 조합원들에게 설명하기 벅찰 만큼 많은 정보를 제공하죠.”
○화합의 토대는 신뢰
그렇다고 혼다 노조가 회사의 방침에 무조건 ‘예스’ 하는 것은 아니다.
오히려 인사에 관한 규칙을 보면 한국의 기준에 비춰 볼 때 ‘심각한 경영권 침해’로 비칠 만한 조항도 적지 않다.
인원정리 기준, 퇴직금 등은 반드시 노조와 ‘협의’해서 결정해야 한다. 협의는 사실상 ‘동의’라는 점을 노사 모두가 인정한다. 노사 협의 하에 1990년 희망퇴직제도를 도입했지만 근로자의 의사에 반해 억지로 회사를 나간 사람은 단 한 명도 없다는 게 노조 측 설명이다.
나가사와 노조 부회장은 “회사가 잘못되면 노조에도 책임이 있다. 경영진이 잘못된 방향으로 나간다고 생각될 때는 고치라고 요구한다”면서 “노조는 회사의 감시견 역할을 한다”고 말했다.
회사는 노조의 목소리를 경청하고, 노조는 회사를 걱정하는 상호신뢰가 불황 10년을 넘기는 혼다 경쟁력의 또 다른 원천이다.
▼“힘내라, 단카이”▼
일본에서는 제2차 세계대전 종전 후 태어난 베이비붐 세대를 ‘단카이 세대’로 부른다. 단카이 세대의 기점은 1947년생으로 올해 정년(60세)을 맞았다. 단카이 세대의 본격적인 정년이 시작된 것. 개인에게는 노후생활, 기업에는 숙련노동자의 집단 퇴장, 국가에는 연금 지급액의 급증이 고민거리다.
단카이 세대를 다룬 이날 포럼에서 논의 내용보다 더 눈길을 끈 것은 포럼을 개최한 단체였다. 사이타마 현 지역노사취직지원기구 주최, 후생노동성 사이타마 현 노동국과 사이타마 현 공동후원이다.
노사취직지원기구는 사이타마 현의 노사 대표 격인 지역 노동조합연합(렌고)과 경영자협회가 청년취업, 퇴직자 재고용 등을 협의하기 위해 만든 모임이다.
포럼 토론자로 참석한 경영자협회의 노가미 다케토시(野上武利) 전무는 “단카이 세대의 기술인력이 한꺼번에 다 빠져나가면 기업은 현상유지가 불가능한 실정이기 때문에 건강이 허락하는 한 기술력을 발휘해 달라고 요구하고 있다”며 “이들에게 어떤 대우를 해 줘야 할지 고민하고 있다”고 말했다.
이에 대해 렌고의 다케하나 야스오(竹花康雄) 사무국장은 “이제는 쉬고 싶다는 근로자도 많아 이들이 결정을 내리는 데 도움을 주기 위해 이런 포럼을 마련하게 됐다”고 설명했다.
노사가 함께 일자리를 만들려는 이런 노력에 지방자치단체인 사이타마 현 정부도 적극적으로 지원에 나선다.
최근 줄곧 해외 공장만 지어 오던 혼다가 30년 만에 일본 국내에 공장을 짓기로 하고 그 입지를 사이타마 현으로 정한 데는 이런 노사정(勞使政) 협조 관계가 큰 몫을 했다.
건설비용으로 700억 엔(약 5600억 원)이 투입되는 사이타마 현의 새 혼다공장은 2010년에 완공돼 자동차와 엔진을 각각 20만 개씩 생산하고 약 2200명의 종업원을 고용할 예정이다
▽특별취재팀▽
△사이타마·도쿄(일본)=김광현 경제부 차장 kkh@donga.com
△뮌헨·볼프스부르크·하노버(독일), 파리(프랑스)=이은우 사회부 기자 libra@donga.com
△디트로이트·버펄로(미국)=임우선 사회부 기자 imsun@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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