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5년 9월 첫 선을 보인 뒤 영국 왕족과 스포츠 스타 등의 ‘애마(愛馬)’로 유명세를 타면서 1만 대 이상 팔려나갔다. 지난해엔 자동차 잡지 톱기어와 영국 UKTV 등이 선정한 ‘올해의 차’로 이름을 날렸다.
하지만 한국에서는 찬밥 신세다. 총 판매 대수는 고작 4대. XK가 한국에서 고전하는 이유는 뭘까.
시승해본 결과 자칫 평범하게 보이는 디자인과 1억5000만 원을 호가하는 높은 가격이 첫째 원인으로 꼽힌다.
밋밋한 듯한 디자인은 꼼꼼히 살펴보면 거장의 솜씨가 유감없이 드러난다. 첫 인상은 강하지 않지만 보면 볼수록 은은한 아름다움이 묻어 나온다. XK는 007 자동차로 유명한 애스턴마틴 DB7을 만든 세계적인 디자이너 이안 칼럼의 재규어 첫 작품이다.
라디에이터그릴과 창문 선은 전설적인 명차인 재규어 E타입의 조형미를 살려냈고 유려한 보닛과 짧고 팽팽한 엉덩이 라인은 매혹적이다. 수공예 가죽과 호두나무로 꾸미고 터치스크린을 사용해 버튼을 최소화한 인테리어도 영국 왕족의 귀족스러움이 느껴진다.
‘후우∼행∼’ 세련된 외모와 딴판인 폭발적인 시동 소리에 머리카락이 주뼛 섰다. 가속페달에 발을 얹으니 차는 가볍고 부드럽게 출발했다. 노면 충격에도 요동이 적었다. 딱딱한 승차감의 독일차와는 확연히 달랐다.
가속 성능은 탁월했다. 차체를 알루미늄으로 만들어 동급 차보다 무게는 150kg가량 가벼운 반면 심장인 엔진은 4200cc로 42.8kgm의 강력한 토크를 뿜어낸다.
쭉 뻗은 도로를 가볍게 질주하는 이 ‘명품’ 스포츠카는 아쉽게도 꽉 막힌 한국 도로에선 완숙미를 뽐내기 어렵다. 게다가 스포츠카 선택 기준이 튀는 디자인과 아기자기한 운전 재미에 초점을 맞춘 소비자들에겐 XK는 너무 점잖다.
재규어 측은 판매대수에는 큰 신경을 쓰지 않고 있다. 고소득 마니아층의 ‘고급 틈새시장’이 주요한 공략 대상이기 때문이다.
이종식 기자 bell@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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