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횡설수설/허승호]명품 핸드백

  • 입력 2007년 3월 1일 03시 00분


영화 ‘백 투 더 퓨처’에서는 1950년대의 소녀가 미래에서 온 소년의 이름을 ‘캘빈’이라고 추측하는 장면이 나온다. 그가 입고 있는 바지에 붙은 ‘캘빈 클라인’이라는 상표 때문이다. 과거엔 상표를 옷 안에 감춰 달았지만 요즘은 디자이너 이름이 셔츠 넥타이 블라우스 바지의 바깥쪽에 보란 듯이 강조돼 있다. ‘랄프 로렌’ 상표의 옷을 입은 사람은 자신이 부자라는 사실을 과시하는 듯하다. ‘현시적 소비’다.

▷현시적 소비는 경제학자 소스타인 베블런의 저서 ‘유한계급론’에서 처음 나온 말이지만 동서고금을 통해 널리 관찰된다. 자동차 문을 여는 것은 결코 힘든 일이 아니지만 고귀한 분들은 자기 손으로 열지 않는다. 애완견을 위한 귀부인들의 개 파티, 카지노에서 수십만 달러를 날린 부호(富豪)의 입에 번지는 미소도 비슷하다. 우리의 경우 육체노동이 불가능한 양반의 두루마기, 혼자 불붙일 수 없는 긴 담뱃대 등이 비슷한 사례에 속한다. 턱없이 비싼 서울 강남 아파트도 과시재(財) 성격이 있다. 시가 20억 원의 40평 아파트에 주거하는 기회비용을 연 5% 금리로 계산하면 월 830만 원이다.

▷동물들도 현시적 소비를 한다. 공작의 길고 화려한 깃털, 사슴의 큰 뿔, 백조의 새하얀 몸치장 등은 생존에 방해가 될 뿐이다. 하지만 진화생물학자들은 ‘장애가 크게 문제되지 않을 만큼 생존 역량에 여유가 있음’을 과시함으로써 암컷을 유혹하는 전략이 성공해 이런 유전자가 이어진다고 본다. 현시 행동에서는 사람이나 동물이나 비슷한 모양이다.

▷해외여행에서 흔한 쇼핑 품목이 양주에서 명품으로 바뀌었다고 한다. 명품 중에서도 핸드백 등 가방류가 압도적이다. 외지(外紙) 최근호는 “여성이 명품 핸드백을 들려는 것은 남자가 메르세데스벤츠 자동차를 타는 것과 같은 심리”라며 “특히 핸드백은 자동차에 비해 매우 싼 비용으로, 쉽게 성공을 과시할 수 있는 품목”이라는 기사를 실었다. 명품 가방에 집착하는 여성의 마음을 절반쯤은 이해할 수 있을 것 같다.

허승호 논설위원 tigera@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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