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금은 눈먼 돈?… 낭비 불감증

  • 입력 2007년 3월 6일 02시 59분


서울 강북권의 한 구청은 지난해 5월 구청장용 승용차와 별도로 3342cc급 에쿠스 승용차를 구입했다. 외빈(外賓)이 방문할 때 의전용으로 쓰겠다는 것이었다. 그러나 이 차는 대부분 시간을 차고에서 잠자고 있었다.

이를 이상하게 여긴 한 시민단체의 신고를 받은 기획예산처 예산낭비신고센터가 확인한 결과 해당 구청은 이 승용차를 산 뒤 지난해 말까지 세 차례만 사용한 것으로 나타났다.

예산처 예산낭비신고센터가 5일 발표한 지난해 4분기(10∼12월) 예산낭비사례 신고 접수 결과에 따르면 일부 정부 부처 및 지방자치단체는 모두 수십억 원의 세금을 낭비했다.

○ “일단 사들이고 보자?”

서울우편집중국은 2005년 9월 1억8700만 원을 들여 소포를 차량에 싣는 데 사용하는 컨베이어벨트를 설치했다. 그러나 지난해 말까지 3번 남짓 사용하는 데 그쳤다. 소포의 무게와 부피에 걸맞지 않은 작은 컨베이어벨트를 구입했기 때문이었다.

예산처 측은 “타당성 조사에 문제가 있었던 것은 물론 컨베이어벨트를 다룰 직원들의 교육도 제대로 이뤄지지 않았다”며 정보통신부 우정사업본부 측에 이를 시정하도록 권고했다.

수도권 A시의 B구청은 시내 한 사거리가 극심한 교통정체 현상을 빚을 것으로 보고 461억 원을 들여 지난해 초 지하차도 공사를 발주했다. 사거리 부근에 짓고 있는 터널이 완공되면 교통량이 급증할 것이라는 판단에 따른 것.

그러나 터널 개통 후 교통량은 구청 예측치의 23.9%에 그쳤고, 주변에 우회도로가 들어서 교통량은 더 줄었다.

구청 측은 결국 예산처 등의 시정권고를 받아들여 지하차도 공사를 중단했고 타당성 재조사 등을 거쳐 공사재개 여부를 결정하기로 했다.

○ 설계 변경도 맘대로

지방의 C시는 비영리단체인 새마을회가 2005년부터 새마을회관을 짓는 데 재정 지원을 하고 있다. 43억 원을 들여 654평에 지상 5층 규모로 들어서는 이 회관은 완공 직전(공정 90%)이다. 그러나 이 회관은 27억9000만 원의 사업비에 지상 3층으로 건축허가를 받았으나 2005년 9월 갑자기 현재 규모로 설계가 변경된 것으로 드러났다.

예산처 측은 “사업비가 30억 원을 초과할 때는 광역지자체의 재정 투·융자 심사 등을 거쳐야 하는데 이를 지키지 않고 예산을 더 타내려 했다”고 지적했다.

만성적인 예산낭비형 도로 개·보수 공사도 여전했다. 지난해 4분기 수도권 등 도로건설 현장에서 나온 콘크리트 및 아스콘 포장이 정부 기준보다 훨씬 많았다.

예산처는 “불필요하게 콘크리트를 뜯어내 공사비가 늘어났다”며 건설교통부를 통해 대한주택공사 등 4개 기관의 관련 예산 중 54억3400만 원을 삭감하도록 조치했다.

이승헌 기자 ddr@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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