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 몰래 긁는 ‘보이지 않는 손’…신용카드 도둑 결제 급증

  • 입력 2007년 3월 31일 03시 19분


광주에서 병원을 운영하는 의사 이모(46) 씨는 지난달 말 자신이 인터넷에서 신용카드로 30만 원 상당의 사이버머니를 구입했다는 내용의 문자메시지를 받았다.

카드회사에 조회해 보니 누군가 카드번호, 유효기간, 카드 뒷면의 숫자 마지막 세 자리를 이용해 인터넷 사이트에서 사이버머니를 구입한 것으로 확인됐다.

며칠 후에는 이 씨의 다른 신용카드로 사이버머니를 추가로 구입했다는 문자메시지가 떴다.

2월 말∼3월 초 이 씨 모르게 그의 신용카드 4장에서 결제된 금액은 모두 2739만 원이었다.

○ 인터넷 이용한 신종 기법 활개

이 씨의 신용카드를 결제한 ‘범인’은 10여 명의 인적사항을 도용해 구입한 사이버머니를 두 종류의 게임 머니로 바꾸는 방식으로 ‘사이버 돈세탁’을 했다.

경찰은 “신용카드 번호 등을 입력하려면 시간이 걸리는데 20∼30초 간격으로 3만∼5만 원씩 결제된 것으로 미뤄 전용 프로그램을 사용한 것으로 보인다”며 “범죄에 사용된 컴퓨터의 인터넷 주소(IP)가 중국으로 나와 수사에 난항을 겪고 있다”고 밝혔다.

경찰은 범인이 신용카드의 전자결제시스템이나 사이버머니 거래 회사의 보안 허점을 이용했을 가능성과 함께 피해자나 피해자 가족이 신종사기 수법인 ‘피싱’이나 ‘파밍’에 당했을 가능성도 염두에 두고 있다.

피싱은 금융기관을 사칭한 e메일에 가짜 인터넷 주소를 링크해 개인 정보를 빼내는 방식이다. 또 파밍은 진짜 사이트 주소를 입력하더라도 가짜 사이트로 접속을 유도해 개인정보를 훔치는 수법이다.

○ 위-변조 피해 건수 1년 새 57% 껑충

금융감독원이 국회 재정경제위원회 소속 송영길 열린우리당 의원에게 제출한 자료에 따르면 21개 신용카드사의 카드 위·변조 피해는 2005년 2100건, 38억2000만 원에서 지난해 3300건, 51억5000만 원으로 건수로는 57.1%, 액수는 34.8% 급증했다고 한다.

작년 3월에는 중국 범죄 단체와 연계해 신용카드 600여 장을 위조한 뒤 700여 차례에 걸쳐 2억 원어치의 전자제품을 샀다가 팔아 돈을 챙긴 일당이 경찰에 적발되기도 했다.

국가 간 울타리가 낮아지면서 외국에서 들여 온 장비로 신용카드를 대량 위조하는 사례도 늘고 있다고 한다.

황명희 여신금융협회 홍보부장은 “전용 장비를 이용한 신용카드 대량 복제와 인터넷을 이용한 신종 사기수법이 발달하면서 피해가 확산되고 있어 각별한 주의가 필요하다”고 했다.

해외여행이 늘어나면서 외국에서 사용하는 신용카드 위조도 잦아졌다.

회사원 김모(46) 씨는 지난해 12월 동남아 여행을 다녀온 후 다음 달 카드사용대금 청구서를 받아보고 깜짝 놀랐다.

자신이 귀국한 후에 태국 방콕의 한 백화점에서 200여만 원을 사용한 것으로 나온 것. 김 씨는 나중에 카드회사로부터 피해액 전액을 돌려받았지만 ‘황당한 사건’에 가슴을 쓸어내려야 했다.

○ 대책 마련에 나선 카드회사들

카드 위·변조 피해액 중 회원 부담액은 2005년 1억3000만 원에서 지난해 1000만 원으로 크게 줄어든 반면 카드회사 부담액은 33억6000만 원에서 47억1000만 원으로 증가했다.

최근 신용카드 부정사용 피해에 대해 감독당국이 카드회사의 책임을 인정하는 경우가 늘고 있기 때문이다.

이 때문에 여신협회는 최근 보안프로그램 설치 등 ‘정보보호수칙 10계명’을 발표하는 등 신용카드 위·변조 피해를 막기 위해 진땀을 빼고 있다.

장원재 기자 peacechaos@donga.com

동정민 기자 ditto@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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