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날부터 31일 새벽까지 계속된 ‘마라톤협상’ 과정에서 긍정적인, 또는 부정적인 신호가 수시로 흘러나올 때마다 협상장 주변에서는 탄성과 한숨이 교차했다.
○…통상장관급 회담을 이끈 김현종 외교통상부통상교섭본부장과 카란 바티아 미 무역대표부(USTR) 부대표는 30일 오후 10시경 막판 회담을 재개했다.
협상 마감 시한을 9시간 앞두고 이들은 한미 FTA의 최대 쟁점인 쇠고기 검역 문제 등을 논의하며 마지막까지 ‘벼랑 끝 전술’로 버텼다.
○…오후 8시 45분경 알렉산더 버시바우 주한 미국대사가 그랜드하얏트호텔에 ‘급파’돼 협상 막바지의 긴박감이 더욱 고조됐다.
미국 정부의 협상 지침을 자국 협상단에 전한 것으로 알려진 그는 몰려든 취재진에 “협상이 계속 진행 중”이라는 말만 남긴 채 협상장으로 들어섰다.
이에 앞서 최석영 주미(駐美) 한국대사관 경제공사도 한국 측 협상단에 합류해 미국 정부 내부의 분위기 등을 한국 협상단에 전달했다.
○…이날 협상은 양국의 통상장관급 및 수석대표급 두 명씩만 마주하는 ‘2+2 형태’로 진행되는 바람에 그 외의 협상 실무진조차 진전 상황을 알지 못해 마음을 졸였다.
이런 상황에서 이날 오후 청와대가 ‘선타결, 후논의 가능성’ 원칙을 밝히자 협상 관계자들 사이에서는 “타결 가능성이 높아진 것 아니냐”며 안도의 한숨이 흘러나왔다.
그러나 31일 새벽까지도 막판 협상에 별다른 진전이 없자 협상 관계자들의 표정은 다시 얼어붙었다.
○…한미 FTA 통상장관급 회담을 주도해 온 김 본부장은 30일 오전 8시 20분경 긴장된 표정으로 그랜드하얏트호텔을 떠났다. 중동 순방을 마치고 오전 9시 10분 경기 성남시 서울공항에 도착하는 노무현 대통령을 만나기 위해 일찌감치 청와대로 향한 것.
전용 헬기를 타고 청와대에 도착한 노 대통령이 주재한 회의에서 김 본부장은 4일간의 통상장관급 회담 결과를 보고했다.
이어 협상장에 돌아온 김 본부장은 청와대의 지침을 협상단에 전달했고 오후 4시에 열리는 대외경제장관회의에 참석하기 위해 오후 3시 반경 다시 협상장을 떠났다. 이 회의는 정부과천청사에서 열리는 것이 원칙이지만 상황이 긴박했던 이날은 청와대에서 개최됐다.
협상장 입구에서 호텔 출구까지 30m 넘는 구간에 걸친 ‘철통 경비’ 때문에 취재진은 먼 거리에서 김 본부장의 굳은 표정만 확인할 수 있었다.
○…오전 10시 반경 이혜민 한미 FTA 기획단장이 ‘긴급 브리핑’을 한다는 소식이 전해지자 국내외 취재진 50여 명은 “협상 타결을 발표하는 것 아니냐”며 몰려들었다.
그러나 10분 뒤 나타난 이 단장은 “협상 상황은 계속 유동적”이라며 “양국이 적극적인 자세로 협상에 임하고 있다”는 간단한 말만 남긴 채 곧장 협상장으로 돌아갔다.
이에 대해 협상단 관계자는 “여기저기서 낙관적 보도를 하자 아직 타결 여부가 정해지지 않았다는 점을 설명하기 위한 것”이라고 설명했다.
이전까지 협상 과정에서 바쁜 시간을 쪼개 경과를 충실히 설명해 주던 이 단장이 극도로 말을 아끼는 것을 본 정부 관계자들은 “마지막까지 협상이 외줄타기처럼 진행된다는 것을 반영하는 것 아니겠느냐”고 해석했다.
○…미국 측 협상단은 이날 저녁 협상이 막판에 이르렀는데도 시종일관 느긋한 태도를 보이며 양보하지 않아 협상단의 애를 태웠다.
한국 측 협상단 관계자는 “양국 정상과 통상장관급 회담에서의 결단을 기다리고 마지막까지 협상 속도를 내지 않았다”며 “거물급 빅딜의 결과에 따라 핵심 쟁점이 아닌 분야의 협상은 몰아치기로 이뤄졌다”고 말했다.
○…정부과천청사 내 재정경제부 산업자원부 농림부 등 경제부처 공무원들은 노 대통령과 조지 W 부시 미국 대통령이 29일 밤 전화로 한미 FTA 협상 타결 의지를 재확인하자 타결 쪽에 무게를 두고 보완책 마련에 주력했다.
이들 부처의 간부와 직원들은 현안별로 다양한 타결 시나리오에 따라 한미 FTA의 영향을 분석하고 보완책 등을 담은 보고서를 여러 벌 만드느라 진땀을 흘렸다. 이들은 타결 이후 상황에 대처하기 위해 비상 근무체제에 들어가 주말에도 대부분 출근할 예정이다.
○…재경부는 이날 국회 재정경제위원회에 제출한 현안 보고 자료에서 한미 FTA가 타결될 경우 실직하거나 근로시간이 단축되는 근로자에 대해 고용보험기금을 통해 전직(轉職), 재고용, 신규 업종 진출 장려금 등을 지원하고 관련 정보도 제공하겠다고 밝혔다.
또 재경부는 한미 FTA로 피해가 예상되는 농업, 수산업 부문 등에 대해서는 소득을 보전해 주거나 폐업 지원금을 주는 등 종합대책을 마련해 다음 달 2일 발표하겠다고 보고했다.
○…이날 미국의 경제 통신사인 블룸버그통신은 “미국이 한국과 FTA 협상 타결에 성공하면 미국으로서는 1994년 북미자유무역협정(NAFTA) 이후 최대 규모의 협약이 될 것”이라고 소개했다.
이 통신은 또 국제무역위원회(ITC) 자료를 인용해 한미 FTA가 타결되면 미국의 대(對)한국 수출 규모가 연 290억 달러 정도 늘어날 것으로 기대된다고 전망했다.
김유영 기자 abc@donga.com
박중현 기자 sanjuck@donga.com
김상운 기자 sukim@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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