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FTA 타결]“외환위기 때보다 더 충격” 감귤-축산농가 표정

  • 입력 2007년 4월 3일 03시 01분


허탈 한미 자유무역협정(FTA)이 타결된 2일, 올해 안에 미국산 쇠고기가 수입될 것이라는 소식을 들은 전남 함평군 함평읍 축산농가의 박병렬 씨가 30년 넘게 자신의 전부였던 소를 바라보며 일손을 놓은 채 허탈해하고 있다. 함평=박영철 기자
허탈 한미 자유무역협정(FTA)이 타결된 2일, 올해 안에 미국산 쇠고기가 수입될 것이라는 소식을 들은 전남 함평군 함평읍 축산농가의 박병렬 씨가 30년 넘게 자신의 전부였던 소를 바라보며 일손을 놓은 채 허탈해하고 있다. 함평=박영철 기자
“kg당 1000원가량인 오렌지와 한라봉이 경쟁하는 것은 사실상 불가능합니다. 1990년대 초 농산물 수입 자유화로 바나나 재배 농가가 한꺼번에 무너지던 상황이 재연되는 느낌입니다.”

제주 서귀포시 남원읍 위미리에서 ‘한라봉’을 재배하는 윤신근(57) 씨는 2일 한미 FTA 협상이 타결됐다는 소식을 듣고 깊은 한숨을 토했다.

계절관세(수확기에 높은 관세를 매겨 생산자를 보호하는 제도)의 적용을 받지 않는 시기에 생산되는 한라봉은 값싼 미국산 오렌지 수입으로 직접적인 타격을 받기 때문.

이번 협상으로 오렌지는 감귤 수확기간인 9월부터 다음 해 2월까지 현행 50% 관세를 유지하는 계절관세를 적용받지만 2월부터 5월까지 생산되는 한라봉과 하우스 감귤은 30%의 관세가 7년 뒤 사라지게 돼 제주 농가가 직격탄을 맞게 됐다.

서귀포시 중문동 김경식(63) 씨는 “오렌지 수입업자들이 9월에 대량으로 들여다 저장하면 11월까지 판매가 가능하므로 계절관세는 의미가 없고 값싼 오렌지를 먹다 보면 감귤 소비는 줄어들 수밖에 없다”고 말했다.

김태환 제주지사는 “이번 협상으로 제주 농산물 생산액의 53%를 차지하는 감귤 산업 연간 피해는 678억∼1998억 원에 이를 것”이라며 “비준권이 있는 국회를 통해 제주 감귤의 피해와 민감성을 호소하겠다”고 말했다.

한미 FTA 저지 제주도민운동본부 소속 회원 60여 명은 2일 오후 제주도청 앞에서 제주 경제의 죽음을 상징하는 의미로 감귤나무 등을 불태우며 항의 시위를 벌이기도 했다.

축산농가 역시 울상이다.

“10년 전 외환위기 때 6개월 된 송아지를 평소의 5분의 1 값인 50만 원대에 팔아 치우던 악몽이 되살아나는 것 같아 며칠째 잠을 제대로 못 잤어요.”

경기도의 대표적 한우사육지역인 안성시의 일죽 양성 보개면 지역 한우농가들은 일손을 놓은 채 1997년 말 외환위기 때 홍수출하로 송아지 값이 폭락했던 당시 기억을 떠올리며 ‘나락에 떨어지는 느낌’이라고 말했다.

원곡면에서 한우 160마리를 키우는 이규홍(52) 씨는 “국제 곡물가가 계속 올라 사료 값도 오를 텐데 쇠고기 뼈까지 수입한다면 영세농가와 육우농가(홀스타인)는 큰 타격을 볼 수밖에 없다”며 “정부가 한우 가격을 보장해 주는 정책을 제도화해 축산농 보호에 나서야 한다”고 호소했다.

공도읍 승두리에서 한우 100마리를 사육 중인 김창구(52) 씨는 “미국산 쇠고기가 쏟아져 들어오면 한우 가격은 20∼30% 떨어질 것으로 예상된다”며 “축산농가들도 이제 브랜드화, 고급육 전략에서 더 나아가 콜레스테롤을 줄이는 등 기능성 제품 개발에 주력해 수입육에 맞서야 한다”고 말했다.

지역 한우사육농가에 불안감이 고조되자 1457농가에서 6만6000여 마리의 소를 키우는 안성시는 3일 축산농 대표자들이 참석한 가운데 간담회를 열고 축산 경쟁력 강화 등 대응책 마련에 나서기로 했다.

제주=임재영 기자 jy788@donga.com

정읍=김광오 기자 kokim@donga.com

안성=남경현 기자 bibulus@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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