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횡설수설/김창혁]개국(開國)

  • 입력 2007년 4월 4일 03시 00분


1882년 대한제국이 미국과 맺은 조미(朝美)수호통상조약 한문본 제1조에는 ‘대한조선 군주와 대아미리가(大亞美理駕)합중국 대통령은 만약 타국이 불공경모(不公輕侮·업신여겨 모욕함)하는 일이 있게 되면 필수상조(必須相助·반드시 서로 도움)한다’는 구절이 들어 있다. 당시 고종을 비롯한 위정자들은 ‘필수상조’라는 말을 미국의 조선에 대한 방위공약쯤으로 알고 하늘처럼 떠받들었다.

▷그러나 조약의 영문본에는 ‘필수상조’에 해당하는 단어가 없었고, 조정은 그런 사실조차 모르고 있었다. 그럴 만도 했다. 당시 미국과의 수교협상을 담당했던 사람들은 조선인이 아니라 청나라 권력자 이홍장(李鴻章)이 보낸 중국인들이었기 때문이다. 조선에는 한문본과 영문본을 대조해 볼 수 있을 만큼 영어 실력을 갖춘 외교관도 없었다. 조선이 구미(歐美) 국가와 가진 최초의 ‘개국(開國) 협상’은 이처럼 위태로웠다.

▷이듬해 루셔스 푸트가 미국 전권공사로 부임할 때 18세의 조선 청년 윤치호(尹致昊)가 통역으로 따라오긴 한다. 하지만 당시 윤치호는 일본 주재 네덜란드 영사관 서기관에게 하루에 1시간씩 겨우 5개월 동안 영문법을 공부한 정도였다. 반면 조선보다 28년 먼저 미국과 조약을 맺은 일본은 네덜란드어로 교섭을 했고, 조문 검토와 번역을 ‘일본 최초의 미국 유학생’ 만지로(萬次郞)에게 맡겼다. 만지로는 비준서 교환을 위해 미국을 방문했을 때 서점에서 유창한 영어로 웹스터 사전을 찾아 미국인을 놀라게 했다고 한다.

▷한미 자유무역협정(FTA) 협상 타결을 놓고 ‘제2, 제3의 개국’이라는 말도 나온다. 표현의 적절성 여부를 떠나 그 말 속에는 125년 전의 뼈아픈 역사가 담겨 있다. 하지만 지금은 다르다. 김현종 통상교섭본부장과 김종훈 수석대표를 비롯한 협상 참가자들에게 영어는 거의 문제가 되지 않았다. 그뿐 아니라 우리 기업들은 세계를 주름잡고 있다. 그런데도 ‘대미 종속(從屬)’ 운운하는 주장이 나온다. 의식(意識)의 시계가 과거에서 멈춘 사람들이 여전히 많은 탓인가.

김창혁 논설위원 chang@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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