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U-中과 FTA땐 더 과감하게 개방해야”

  • 입력 2007년 4월 4일 03시 00분


한미 자유무역협정(FTA)이 발효되면 농업뿐 아니라 제약업계도 적지 않은 타격을 입을 것으로 전망된다. 3일 서울 종로구의 한 대형 약국 조제실에서 약사가 환자에게 전달할 전문 의약품을 살펴보고 있다. 연합뉴스
한미 자유무역협정(FTA)이 발효되면 농업뿐 아니라 제약업계도 적지 않은 타격을 입을 것으로 전망된다. 3일 서울 종로구의 한 대형 약국 조제실에서 약사가 환자에게 전달할 전문 의약품을 살펴보고 있다. 연합뉴스
통상 전문 학자들은 한미 자유무역협정(FTA) 협상 결과를 대체로 긍정적으로 평가하면서도 개방 폭에 대해서는 아쉬움을 나타냈다. 이에 따라 앞으로 유럽연합(EU), 중국 등과 추진할 FTA 협상에서는 개방의 폭과 수준을 과감하게 확대할 필요가 있다고 주문했다.

정인교 인하대 경제학부 교수는 “EU와는 서비스, 중국과는 농업이 걸림돌이 될 것”이라며 “정부는 FTA를 통해 단순히 공산품 수출시장을 확대하는 데 만족하지 말고 서비스산업과 농업 등 취약산업 체질 개선을 위한 전략으로 FTA를 적극 활용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자동차-섬유 선방, 무역구제-지식재산권 기대 못미쳐

분야별 성적표에서 통상 전문가들은 자동차-섬유-농산물 순으로 높은 점수를 줬다. 반면 한국이 불리하게 타결된 분야로는 무역구제-농산물-지식재산권 등을 들었다.

이 가운데 반(反)덤핑 관련조치 등 무역구제는 한국이 꼭 얻어내겠다고 한 분야였지만 “한국의 요구를 들어주기 위해서는 법까지 개정해야 한다”며 버틴 미국 측의 반발로 무역구제협력위원회를 설치하는 선에서 마무리됐다. 한국이 요구 수준을 크게 낮춘 셈이다.

농산물에 대해서는 평가가 엇갈렸다.

일단 미국이 사활을 건 쇠고기시장 개방은 한국이 협상 카드로 잘 활용하면서 막판에 대통령이 수입 일정을 구두(口頭)로 약속하는 선에서 매끄럽게 처리했다는 칭찬이 나왔다.

최창규 명지대 경제학과 교수는 “무작정 쇠고기 수입시장을 개방한 게 아니라 5월 국제수역사무국(OIE)의 미국산 쇠고기에 대한 광우병 위험등급 판정 결과에 따라서 판단할 수 있는 여지를 마련했다”고 평가했다.

일부에서는 “자동차나 섬유 등의 분야에서 미국 측의 양보를 더 얻어내기 위해 농산물 시장 개방을 협상카드로 더 잘 활용할 수도 있었을 것”이라며 아쉬움을 나타내기도 했다.

○FTA 발효되면 소비자가 가장 큰 이득

통상 전문가들은 한미 FTA 타결로 소비자들이 가장 큰 혜택을 볼 것으로 내다봤다. 상품과 서비스의 선택폭이 넓어지고 더 값싼 상품이 들어오면서 물가도 안정된다는 설명이다. 이와 관련해 재정경제부는 FTA가 정식으로 체결되면 소비자들이 누리는 경제적 효과가 1000억 원가량 늘어날 것으로 추산했다.

또 동의명령제 도입 등 국내 제도가 선진화되고 산업 구조조정을 촉진하는 발판을 마련할 수 있게 되는 점, 소원해진 한미 동맹이 다시 정상으로 돌아갈 것이라는 점도 효과로 꼽혔다.

미국 시장에 대한 접근이 쉬워져 수출이 늘어나는 것은 물론이다.

박태호 서울대 국제대학원장은 “미국과 FTA를 체결한 캐나다 멕시코 칠레 등의 대미(對美) 수출 증가율은 연평균 11∼41%에 이른다”며 “FTA가 체결되면 교역이 늘어나고 자원은 더욱 효율적으로 배분된다”고 설명했다.

○개방수준 낮은 교육 의료 등 아쉬워

서비스 분야의 개방 수준이 낮은 것은 아쉬운 점으로 꼽혔다.

박순찬 공주대 경제통상학부 교수는 “미국은 자국의 고용 감소를 우려해 한국에 교육, 의료시장 등을 적극적으로 개방하라고 요구하지 못했다”고 말했다.

국내 산업의 피해 확대를 우려하는 목소리도 컸다.

대표적인 것이 농업 분야. 농촌경제연구원에 따르면 쇠고기 돼지고기 사과 감귤 등 26개 주요 품목의 생산은 한 해 8700억 원 정도 감소할 것으로 전망됐다. 이는 연간 국내 총농업생산액 33조3760억 원의 2.6%에 해당하는 규모다.

그러나 한 통상 전문가는 “이 같은 추산은 농산물 관세가 10년 동안 단계적으로 인하되는 것을 가정한 것”이라며 “이번 협상에서는 다행히 쇠고기와 사과 배 등의 관세 폐지 기간이 10∼20년으로 길게 잡혀 피해 규모는 이보다 줄어들 것으로 보인다”고 말했다.

단기적으로 산업 구조조정에 따른 실업자가 양산될 수 있는 점도 문제로 지적됐다.

2005년 11월 산업자원부 용역보고서에 따르면 최소 3만∼4만 명에서 최대 10만 명의 실업자가 나올 것으로 예상됐다.

이종은 세종대 경제학과 교수는 “성장동력이 확보된다면 한미 FTA로 발생되는 실업은 어느 정도 해결될 수 있다”고 말했다.

○외국인 투자 환경 개선 등 개혁도 병행해야

적지 않은 통상 전문가들은 대내 협상 부족을 아쉬운 점으로 꼽았다. 안덕근 서울대 국제대학원 교수는 “미국을 상대로 한 협상은 만족할 만한 수준이었지만 국내 산업계의 의견을 수렴하고 반대세력을 설득하는 등 대내 협상은 상대적으로 부실했다”고 말했다.

FTA 타결은 경제 선진화를 위한 필요조건일 뿐 이를 제대로 활용하려면 외국인 투자 환경 개선, 제도 투명화, 규제 완화 등을 병행해야 한다는 지적도 나왔다.

성태윤 KAIST 테크노경영대학원 교수는 “FTA 협상 타결에 따라 기회가 생겼지만 우리의 대응 자세가 미흡하면 오히려 위기가 될 수도 있다”며 “모처럼 찾아온 기회를 어떻게 활용하느냐에 따라 한국 경제의 성패가 달려 있다”고 말했다.

김유영 기자 abc@donga.com

배극인 기자 bae2150@donga.com

▼“농업 경쟁력 키울 근본적 구조조정 필요”▼

정부가 3일 한미 자유무역협정(FTA)에 따라 피해가 예상되는 농업분야 등에 대한 지원책을 내놓았지만 통상 전문 학자들은 대체로 “경쟁력 강화에 도움이 되지 않는 대책은 신중해야 한다”는 쪽이었다.

국민 세금으로 보조금을 쏟아 붓는 방식으로는 개방의 파고(波高)를 넘을 수 없다는 지적이다.

본보와 FTA 교수연구회 공동 설문조사 결과에 따르면 농업분야 피해보상 규모에 대해 ‘부분적으로 해야 한다’는 응답이 56.7%로 가장 많았다. 또 ‘자구(自救) 노력을 유도하기 위해 보상을 자제해야 한다’는 응답이 20%였고, ‘예산 허용범위에서 최소화해야 한다’는 응답도 3.3%였다.

반면 ‘100% 보상해야 한다’는 응답은 6.7%에 그쳤다.

전문가들이 이처럼 농업 피해보상에 인색한 것은 농업분야에서 가격 경쟁력이 있는 중국과의 FTA 협상을 앞두고 근본적인 구조조정 대책을 마련하는 게 급하다는 인식 때문이다.

이종은 세종대 경제학과 교수는 “정부 보조금으로 문제를 해결하려는 것은 세금을 낭비하고 농업 구조조정을 방해할 수 있다”며 “인력자원의 산업간 이동 촉진책 등 경제논리에 따른 보완책이 필요하다”고 지적했다.

장기적으로 국제 경쟁력이 떨어지는 부문은 과감히 접는 ‘결단’이 필요하다는 지적도 나왔다.

최원목 이화여대 법학과 교수는 “해마다 농업에 쏟아 붓는 지원금이 14조 원에 이른다”며 “농업은 국제 경쟁력이 있는 품목을 선별해 지원하고 남는 자원은 다른 분야에 투입해 국가경제 전체의 효율성을 높여야 한다”고 강조했다.

그러나 이병천 강원대 경제학과 교수는 “농업은 환경산업, 식량주권의 관점에서 보호해야 한다”며 농업에 시장원리만을 적용하기는 어렵다는 견해를 내놓기도 했다.

배극인 기자 bae2150@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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