누가 많이 얻었나 “한국, 쌀 지키고 車 선점… 이익 클 것”

  • 입력 2007년 4월 4일 03시 00분


민노당 “국민투표로 결정하자” 민주노동당 의원과 당원 200여 명이 3일 서울 여의도 국회 의사당 앞에서 한미 자유무역협정(FTA) 타결 규탄대회를 열고 FTA에 반대하는 구호를 외치고 있다. 이종승 기자
민노당 “국민투표로 결정하자”
민주노동당 의원과 당원 200여 명이 3일 서울 여의도 국회 의사당 앞에서 한미 자유무역협정(FTA) 타결 규탄대회를 열고 FTA에 반대하는 구호를 외치고 있다. 이종승 기자
《한미 자유무역협정(FTA) 협상 결과의 대차대조표를 미국에선 어떻게 보고 있을까, 한국 경제는 미국의 자본력에 압도되고 실직 사태가 빚어지는 것은 아닐까, 의회가 양국 행정부의 합의내용을 수정할 수 있는 걸까…. 한미 FTA는 미국으로서도 북미자유무역협정(NAFTA) 이후 근 15년 만에 맺은 초대형 양자무역협정이다. 1992년 12월 NAFTA 협상이 타결된 후 미국 사회에서 벌어졌던 찬반 격론을 기억하는 워싱턴의 무역·국제경제 전문가들은 3일 한미 FTA 타결 내용을 분석하며 향후 한미관계, 미국 경제에 미칠 영향을 짚어보느라 여념이 없었다. 본보는 3일 미국 내에서 손꼽히는 FTA 전문가인 미국기업연구소(AEI)의 클로드 바필드 연구원, 조지워싱턴대 박윤식 경영학과 교수, 한미관계 싱크탱크인 한국경제연구소(KEI)의 트로이 스탠가론 의회·무역 담당 국장, 그리고 익명을 요구한 전직 통상업무 관계자 2명 등 5명의 전문가들을 인터뷰해 한미 FTA 결과에 대한 분석을 들어봤다.》

▽어느 쪽이 더 많이 얻었나=전문가들은 한결같이 “저울에 달아도 될 만큼 골고루 주고받은 것으로 보인다”고 평가했다.

AEI의 바필드 연구원은 “FTA는 제로섬 게임이 아니라 윈윈이 가능한 협상임을 보여줬다”며 “양국이 거의 모든 영역에 걸쳐서 주고받기를 했다”고 말했다. 그는 “미국으로선 서비스, 농업 분야에서 더 문을 열지 못한 게 아쉬움으로 남을 수 있다”며 “하지만 세계무역기구(WTO) 체제에서 이뤄진 성과보다 더 많은 걸 이뤄낸 세련된 협상이었다”고 평가했다.

조지워싱턴대 박 교수는 “한국이 비교우위가 있는 자동차 분야를 선점했다”며 “감정적으로는 쇠고기 시장 개방이 걸리겠지만 경제적 이익으론 한국이 얻는 게 클 것”이라고 분석했다. 박 교수는 한국이 미국에 자동차를 수출하는 나라로는 유일하게 FTA를 맺었음을 강조했다.

스탠가론 국장은 “한국 측에서 가장 큰 이득은 쌀 시장을 지켜낸 것과 미국의 자동차 수입 관세 인하”라며 “미국으로서도 농업분야에서 진전이 이뤄졌고 세금 구조면에서 자동차에서도 성과를 거뒀다”고 말했다.

통상전문가 A 씨는 “굳이 따지자면 예상보다 한국이 조금 더 얻어낸 것으로 보인다”고 말했다. 무역구제 분야에서 반덤핑 결정을 내리기 전에 사전협의를 하게 하는 ‘조사개시 전 사전통지 및 협의’ 합의, 자동차의 미국 내 관세폐지, 섬유의 원사기준 예외 인정 등은 미국이 쉽게 양보하기 힘든 사항이었다는 것. 농산물 협상도 한미 양국이 모두 불만을 가질 수 있지만 적절한 수준이라고 평가했다.

▽실업과 한국경제의 종속을 부채질 하지 않을까=스탠가론 국장은 “어떤 종류의 FTA가 체결되든 경쟁력 없는 산업 분야에선 일자리 감소가 불가피하지만 사실 이는 FTA가 아니어도 결국 언젠가 전환이 이뤄질 수밖에 없는 부문임을 의미한다”며 “무역이 200억 달러 이상 증가하면 일자리 증가 효과가 감소 효과를 압도할 것이며 일자리 증가 혜택은 대부분 한국이 차지할 것”이라고 말했다.

바필드 연구원도 “FTA가 경제의 모든 문제를 해결하는 명약은 아니지만 최소한 더 많은 투자와 교역을 가져올 것이며 이는 더 많은 일자리가 생긴다는 것을 의미한다”고 내다봤다. 그는 “1980년대를 전후해 중국 경제를 보면 알 수 있듯 개방경제는 일자리를 더 많이 만들어 낸다”고 말했다.

전문가 B 씨는 “중국과의 FTA라면 한국이 일자리 감소를 걱정해야겠지만 미국과는 상황이 다르다”며 “예를 들어 섬유의 경우 제3세계로 공장을 옮기려던 기업들이 한국에 공장을 두려 할 것”이라고 말했다. 법률, 금융 분야도 확대재생산이 이뤄질 것이며 월급을 누구에게 받느냐는 차이가 있을지언정 일자리 자체는 더 늘어날 것이라는 주장이다.

박 교수도 “중국, 일본 회사도 미국시장에 진출하기 위한 방편으로 한국에 투자를 할 것이며 미국도 아시아시장 공략의 교두보로 한국을 활용함으로써 일자리가 늘어나게 될 것”이라고 내다봤다. 그는 또 “한국에서 의약품 값이 올라가지만 전반적으론 물가가 내려가는 효과가 있을 것”이라고 전망했다.

미국산 공산품이 밀려와 한국산업이 위험해질 것이라는 지적에 대해 미국의 전문가들은 현재 교역 구조를 보면 기우라고 지적했다. 예를 들어 현재 한국이 수입하는 미국상품 1위는 반도체인데 그중 절반은 삼성반도체 미국 공장에서 만든 것이라는 것. 나머지는 주문형 반도체로 대표적인 산업간 교역이다. 2위인 항공기나 기계류도 일본 것이 미국 것으로 대체되는 효과가 있을지언정 한국 내 산업에 큰 영향을 미칠 성격이 아니라는 설명이다.

경제주권 침해 우려에 대해 B 씨는 “FTA는 낮은 수준의 경제통합으로서 ‘경제적 이득’을 역내에 가둬 둘이서만 나눠 갖기 위해서 하는 것”이라며 “일부에선 외환위기 직후의 개방을 떠올리는데 FTA에 따른 개방은 그때와 전적으로 다르다“고 강조했다.

▽멕시코의 상황이 재연될까=박 교수는 “멕시코는 FTA만 하고 그에 따른 내부 제도개혁이 뒷받침되지 않았다”고 지적했다.

스탠가론 국장과 B 씨도 “1992년의 멕시코와 2007년의 한국을 비교하는 건 어불성설”이라며 “멕시코는 FTA에 이은 내부 개혁을 제대로 이루지 못했다”고 말했다.

전문가들은 이 대목에서 FTA 타결 자체만으로 한국 경제의 선진화가 가능할 것이란 환상은 버려야 한다고 지적했다. 박 교수는 “한국은 1990년대 중반 이후 개방을 하다 중간에 주저앉았다. 개방을 반쯤 하니까 약삭빠른 투기자본만 오고 직접 투자는 많이 이뤄지지 못했다”며 “한국 관료들은 그간 규제개혁 시늉만 내고 공무원 수를 늘려왔지만 FTA는 더는 그렇게 해서는 버틸 수 없는 상황을 강제할 것”이라고 말했다.

바필드 연구원은 “FTA의 동력을 실질적 결과물로 만들어내기 위해선 노무현 대통령이 지속적으로 비전을 제시해야 하며, 야당도 노 대통령에게 힘을 모아줘야 할 것”이라고 강조했다.

▼美의회서 합의안 바꿀 수 있나▼

수정권한 없어… 한국정부 동의땐 문서로 첨부는 가능

미국 의회의 비준 전망에 대해 전문가들은 쇠고기 문제가 풀리면 대체로 큰 어려움 없이 이뤄질 것이라고 낙관했다.

박윤식 교수는 “1992년과 1993년 NAFTA에 대한 미국 내 반대는 대단했는데 그때에 비하면 한미 FTA에 대한 반대 목소리는 들리지 않는 거나 마찬가지”라고 말했다.

클로드 바필드 연구원은 “미국 내 노조는 어떤 FTA든 반대해 왔으며 민주당은 노조의 압력을 받는다”며 “하지만 공화당은 전략적으로 지지할 것이고 결국 의회는 한미 FTA가 경제적 차원을 넘어 미래 한미동맹관계의 발전을 보증할 중요한 틀임을 이해할 것”이라고 전망했다.

한미 간 합의 내용이 미 의회에서 수정될 수 있다는 일부의 주장에 대해 전문가들은 “무역촉진권한(TPA)이 살아 있는 상태에서 이뤄진 FTA이므로 의회는 찬반투표만 할 수 있다”며 의회가 협정 내용에 손을 대는 것은 불가능하다고 설명했다.

물론 행정부가 초안 형태로 협정문을 의회에 보내면 의회는 모의투표 및 행정부와 수정협의를 할 수 있다. 하지만 이는 어디까지나 요청일 뿐 수정권한이 있는 것은 아니다. 단 상대방 정부와 의회가 동의하면 부속문서 형태로 일부 내용을 첨가할 수 있다. NAFTA의 경우 빌 클린턴 행정부는 전임 조지 부시 행정부가 1992년 12월 맺은 협정에는 손을 대지 않고 1993년 노동·환경 관련 부속협약을 추가했으며 의회는 이를 한꺼번에 비준했다.

현재 민주당은 행정부가 페루 등 남미 3국과 합의한 FTA에 대해 노동·환경조항 강화를 요청해 놓았다. 한미 FTA에도 비슷한 요구를 할 확률이 있지만 한국은 노동·환경권이 이미 잘 정비돼 있다. FTA는 양국 의회가 모두 비준하면 60일 이후 발효되는데 대부분 새해에 시행하므로 이론상으로는 내년 1월 발효가 가능하다.

워싱턴=이기홍 특파원 sechepa@donga.com

김승련 특파원 srkim@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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