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운 오리 새끼에서 백조(白鳥)로….
한국 경제 및 외교사에 한 획을 그을 한미 자유무역협정(FTA) 협상 타결로 이번 협상의 ‘사령탑’을 맡은 외교통상부 통상교섭본부가 각광받고 있다.
통상교섭본부 공무원들은 10여 개 정부 부처, 270여 명으로 구성된 협상단에 참여해 통상전략 수립과 부처 간 업무 조율 등을 무난하게 해냈다.
전문성 부족, 취약한 대외 교섭력 등으로 질타받았던 과거를 기억해 내기 힘들 정도로 화려한 변신이다.
○ 통상교섭본부 어떻게 만들어졌나
통상교섭본부의 모태는 1948년 대한민국 정부 출범과 함께한 상공부다.
상공부는 1993년 에너지 분야를 맡던 동력자원부를 흡수해 상공자원부로 확대 개편됐다. 이어 한국의 쌀 시장 개방을 불러온 우루과이라운드(UR) 협상(1993년 말 타결) 때 대외 협상능력 부족 문제가 지적됨에 따라 1994년 12월 통상 기능이 강화된 통상산업부로 개편됐다.
김대중 정부가 출범한 1998년 3월 대외통상 업무가 외교부로 흡수돼 외교통상부가 만들어지면서 하부조직으로 현재의 통상교섭본부가 생겨났다. 통상산업부는 통상 기능을 넘겨준 뒤 현재의 산업자원부로 이름이 바뀌었다.
출범 이후 통상교섭본부는 편한 날이 많지 않았다. 대외 통상협상 등을 치르고 난 뒤에는 여지없이 ‘굴욕 협상’ ‘실패한 협상’이라는 여론의 질타를 받았다.
대표적인 것이 2002년 7월 ‘마늘 파동’. 당시 통상교섭본부는 중국과의 마늘 협상에서 이면합의를 해줬다는 지적이 제기되면서 정부 안팎에서 강한 비판을 받았다.
외교부 안에서도 정무 분야에 밀려 ‘서자(庶子)’ 취급을 받았다. 통상교섭본부 공무원들의 두 축인 외무고시 출신 외교관과 행정고시 출신 경제관료 사이에 갈등도 없지 않았다.
○ 한미 FTA로 결정적 각광
그러나 2001년 11월 세계무역기구(WTO)의 다자간 무역협상 ‘도하개발어젠다(DDA)’가 시작되면서 통상 전문 관료들의 중요성이 서서히 부각됐다.
특히 한미 FTA 협상 개시가 공식 발표된 지난해 2월 이후부터는 여론의 관심이 크게 높아졌다.
그리고 이달 2일 협상 결과가 발표되고 ‘기대 이상의 협상’이라는 평가가 나오면서 통상교섭본부는 한층 각광받고 있다.
통상교섭본부 소속 공무원들을 ‘유능한 통상 엘리트’ ‘국익을 지키기 위해 투쟁하는 통상 전사(戰士)’로 보는 시각도 많아졌다. 앞으로 한-유럽연합(EU) FTA, 한중 FTA 등이 잇따라 추진될 예정이어서 통상교섭본부 인력의 중용도 예상된다.
하지만 외교관 출신으로 통상 업무를 맡은 담당자들의 전문성을 더 높여야 한다는 지적도 나온다.
○ 역대 통상교섭본부장들의 면면
통상 문제를 결정하는 최종 권한도 통상교섭본부장이 아닌 경제부총리가 갖고 있다. 따라서 대외 통상협상의 전권을 쥐고 있는 미국 무역대표부(USTR)와는 차이가 있다.
초대 통상교섭본부장은 한덕수 현 국무총리. 당시 한 본부장은 한-칠레 FTA와 한미 투자협정(BIT)을 추진해 통상정책의 패러다임을 다자간 협상에서 양자 협상으로 바꾸는 데 기여했다는 평가를 받는다.
그는 대통령경제수석비서관으로 있던 2002년 마늘 파동의 책임을 지고 옷을 벗었다. 이후 경제부총리를 거쳐 한미 FTA의 성공적 마무리를 위해 최근 총리로 기용됐다. 통상교섭본부가 총리를 배출한 셈이다.
2대는 상공부 출신으로 KOTRA 사장을 지냈던 황두연(현 법무법인 태평양 고문) 씨가 물려받았다. 황 본부장은 미국의 파상적인 반덤핑 공세 등에 맞서 비교적 무난하게 일을 처리했다는 평가를 받았다.
1995년 외교통상부 ‘WTO 분쟁해결 대책반’ 고문 변호사로 위촉돼 정부 통상 업무와 인연을 맺었던 그는 노무현 대통령 당선 후 통상 현안을 보고했던 인연으로 44세 때인 2003년 5월 통상교섭조정관(1급)에 파격적으로 발탁된 데 이어 다음 해 본부장으로 승진했다.
그는 노 대통령에게 한미 FTA 협상을 건의해 추진하도록 한 ‘산파역’으로 시작해 협상 과정을 지휘하고 최종 협상안에 서명까지 하는 영광을 누리게 됐다.
김 본부장은 5일 연합뉴스와의 인터뷰에서 현 상황을 출산 직후 산모(産母)에 비유하면서 “아이를 낳고 보니 기저귀도 치워야 하고 할 일이 많다”면서 “하지만 미국의 재협상 요구에는 결코 응하지 않겠다”고 말했다.
박중현 기자 sanjuck@donga.com
김유영 기자 abc@donga.com
댓글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