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경을 넘나드는 국내법=두 회사가 상대방을 제소한 기관은 미 샌디에이고 연방법원과 영국 독일 네덜란드 법원 등 다양하다.
여기에 미 반도체 회사인 텍사스인스트루먼트(TI), 브로드컴이 퀄컴을 상대로 유럽연합(EU) 집행위원회와 한국의 공정거래위원회에 제소했고 일본 NEC, 파나소닉도 퀄컴을 제소했다.
지난해 4월과 6월에는 국내 업체인 넥스트리밍과 씬멀티미디어가 각각 퀄컴을 제소했다. 이에 따라 한국의 공정위는 올해 1월 초 퀄컴의 불공정거래 혐의에 대해 본격적인 조사에 나섰다.
퀄컴을 둘러싼 첨예한 법률전쟁이 가히 전 지구상으로 벌어지고 있는 셈이다.
이 소송전쟁의 중심에는 각국의 내부 규제법인 ‘경쟁법’(한국의 경우 공정거래법)이 있다. 노키아 진영은 퀄컴을 견제하는 전략으로 각 국가의 국내법인 경쟁법 위반으로 제소하는 전략을 택했다. 일반적으로 국내법은 국경 바깥에서 효력을 갖지 않는다는 점을 고려하면 선뜻 이해가 가지 않는 일이다.
그러나 이는 각국의 경쟁법에 있는 ‘역외 적용 규정’을 활용한 소송 전략이다. 한국도 2004년 12월 공정거래법을 개정하면서 역외 적용 규정을 도입해 사실상 국제법과 같은 위력을 발휘할 수 있다. 미국을 필두로 해 유럽과 한국에서는 모두 경쟁법이 역외 적용 규정을 갖고 있다.
역외 적용이란 외국 사업자의 행위라도 자국 시장에 부정적 효과를 미친다면 국내법인 경쟁법을 적용하도록 한 것이다.
경쟁법 전문가인 법무법인 율촌 정영진 변호사는 “퀄컴을 둘러싼 소송전쟁은 각국의 국내법인 경쟁법이 다국적 기업의 소송 전략으로 사용된 경우”라며 “퀄컴의 특허권과 상대 국가들의 경쟁법 간 다툼으로도 볼 수 있다”고 말했다.
▽국경보다 민감한 법률시장=한국의 경쟁법 전문 변호사 A 씨는 지난해 9월 경쟁법 전문 인터넷 포털 사이트인 ‘글로벌 콤퍼티션 리뷰’에서 흥미로운 소식을 접했다.
당시 세계 2위의 구리 생산 회사였던 펠프스 도지가 팰컨 브리지라는 회사를 인수합병한다는 내용이었다.
A 변호사는 곧바로 뉴욕의 로펌 디비보이스에 전화해 펠프스 도지를 대리하는 변호사를 찾았다. 그는 “한국의 공정거래위원회에 기업결합 신고를 해야 한다. 한국에서의 신고를 대리해 줄 수 있다”고 제안했다.
두 회사 모두 한국 시장에서는 이름조차 잘 알려져 있지 않은 생소한 기업. 그러나 펠프스 도지는 A 변호사의 권유를 마다할 수 없는 처지였다.
한국의 공정위는 2003년 7월부터 순수한 외국 기업 간의 결합이라도 국내에서의 매출이 일정 규모 이상이면 신고를 하도록 하고 있다. 한국 시장에서 연간 매출이 30억 원 이상인 기업들에 이 규정이 적용된다.
이 규정의 적용 근거는 한 가지. 시장이 받는 영향이다. 한국에서 활동하고 있는 기업인 이상 한국 바깥에서의 인수합병이라도 한국 시장에 비용 인상 같은 악영향을 미칠 수 있다는 이유에서다.
만일 펠프스 도지가 공정위에 신고를 하지 않았다면 1억 원까지 과태료를 물 수도 있다.
한국의 공정위 같은 각국의 경쟁당국 또는 경쟁법은 이제 글로벌 기업들에 새로운 인식을 갖도록 만들었다. 마치 ‘나비 효과’처럼 머나먼 나라의 조그만 법 규정 하나가 엄청난 소송전쟁에 휘말리게 할 수 있는 상황이 벌어지면서 법률산업에 ‘국경’이라는 개념은 사라졌다.
전지성 기자 verso@donga.com
○ 도움 주신 분들
▽로펌
△스텝토 & 존슨(미국 워싱턴) 리처드 커닝엄 파트너 변호사 △화이트 & 케이스(미국 뉴욕) 에릭 윤 파트너 변호사 △K&L 게이츠(미국 로스앤젤레스) 제임스 리 파트너 변호사 △시어먼 & 스털링(홍콩) 이경원 카운슬 변호사 △시들리 오스틴(홍콩) 김도형 파트너 변호사, 알렌 김 파트너 변호사 △팬지어3(인도 뭄바이) 산자이 캄라니 공동대표변호사
▽대학
경북대 법대 이봉의 교수, 경희대 법대 이재협 교수, 한국외국어대 법대 문재완 교수
▽기업
프랑스 알스톰사 피에리크 르 고프 법무실장
▽KOTRA
인도 뭄바이 무역관 한상곤 관장, 김정현 과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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