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만큼 큰 위력을 갖고 있다는 뜻이다. 기업의 외형적 크기가 ‘체격’이라면 특허 같은 연구개발(R&D) 능력은 ‘체력’이란 말도 있다. 체력 약한 뚱보 기업이 세계 시장의 치열한 경주에서 견뎌낼 리 없다.
한국의 대표 기업인 삼성전자도 몇 년 전부터 특허경영에 사실상 ‘다걸기(올인)’를 하고 있다. 그 결과 미국 특허등록 기업 순위가 2002년 11위, 2003년 9위, 2004년 6위, 2005년 5위로 해마다 상승하더니 지난해에는 ‘만년 1위’ IBM의 턱밑까지 쫓아가 2위를 했다.
고정완(47·사진) 삼성전자 디지털미디어(DM)연구소 수석연구원은 그런 삼성전자에서 ‘특허왕’이다. 그는 1985년 입사한 뒤 영상음향(AV)시스템, 통합오디오 리모컨, 디지털 서라운드 프로세스, 디지털 비디오카세트리코더(VCR), DVD 기술 개발 등에 참여하면서 총 500여 건의 특허를 출원했다.
그 가운데 284건이 유효하게 등록됐는데 87건은 국제 규격 특허로 인정받았다.
고 수석연구원은 “20년 넘게 연구소 생활을 하면서 한 달에 2건씩, 연간 25건 정도 특허를 낸 것 같다. 특허의 특성을 이해하면 그렇게 어려운 일은 아니다”라고 말했다.
그는 자신의 대표적 특허를 길게 설명해 줬지만 전문 기술에 관한 내용이어서 쉽게 이해하기 어려웠다. 그러자 그는 고교 3학년 아들(18)과 중학교 2학년 딸(14)에게 일러 줬던 비유를 소개했다.
“사과를 깎던 칼로 배를 깎는 건 특허가 안 됩니다. 기능적으로 같고, 누구나 할 수 있으니까요. 그런데 그 칼로 딱딱한 밤을 깎기 위해 칼날을 짧게 하거나 톱니 장치를 달면 특허가 됩니다. 문제의 대상이 달라지면 해법도 바뀌어야죠. 그 해법을 얻기 위해서는 항상 문제의 본질을 파악하고 있어야 하고요.”
그래서 그는 자녀들에게 “공부할 때 무턱대고 하지 말고 ‘왜’라고 계속 물으며 원리를 따져라”라고 충고한다.
고 수석연구원은 1980년대 사내의 개선점을 건의하는 ‘사내 제안 시스템’이 있을 때도 1986년 ‘제안왕’에 오른 적이 있었다. 그는 “제안은 ‘문제를 이렇게 풀어 보자’는 것이라면 특허는 ‘남들보다 먼저, 더 잘 풀 수 있는 방법’까지 제시해야 하는 것”이라며 “‘구슬이 서 말이라도 꿰어야 보배’란 우리 속담은 특허 경영에 딱 들어맞는 표현”이라고 말했다.
삼성전자는 특허를 출원하기만 해도 100만 원의 포상금을 주고, 그 특허로 로열티를 받게 되면 그중 일정액도 출원자에게 나눠 주는 제도를 운영하고 있다.
고 수석연구원에게 “지금까지 받은 ‘특허 가욋돈’이 얼마나 되느냐”고 묻자 그는 “정확한 액수는 모르겠지만 해마다 어지간한 신입사원 연봉만큼은 됐던 것 같다”고 말했다.
일상 업무 속에서 발견한 아이디어를 특허로 꿰자 연간 수천만 원의 보배가 저절로 굴러 들어온 셈이다.
부형권 기자 bookum90@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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