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China Rush]“중국 소비자를 잡자”

  • 입력 2007년 4월 9일 03시 04분


《“이제 중국은 ‘세계의 공장’이 아니라 ‘세계의 시장’이다.” 한국 기업의 대(對)중국 투자 기조에 변화의 바람이 불고 있다. 과거에는 낮은 노동비 등 생산비 절감을 위해 중국으로 생산설비와 공장을 옮기는 기업들이 많았지만 최근에는 중국의 내수시장 규모가 커지면서 중국 시장을 공략하기 위한 기업들의 투자가 늘고 있는 것이다. 이에 따라 10여 년 전만 해도 거의 전무했던 서비스 부문의 투자가 늘고 대기업들의 투자도 급증하고 있다. 이와 함께 한국 기업들의 중국 내 투자 대상 지역도 변화하고 있다. 과거에는 싼 노동력을 쉽게 이용할 수 있는 지역에 한국 기업의 투자가 집중됐지만 요즘엔 내수시장 공략에 유리한 지역으로 몰리고 있다.》

○ 국내 기업들 투자 급증… 서비스 부문까지 진출

중국 경제의 초고속 성장이 지속되면서 중국 소비자의 소득이 늘고 중국의 세계무역기구(WTO) 가입 이후 시장 개방이 확대되면서 중국 내수시장을 겨냥한 한국 기업의 진출이 가속화하고 있다.

기존에는 중국 공장에서 싼 비용으로 제품을 생산한 뒤 한국 및 제3국으로 수출하기 위해 중국에 투자하는 기업들이 많았다. 하지만 요즘에는 중국 내수시장을 겨냥한 투자가 늘고 있다.

KOTRA가 최근 중국 진출 553개 한국 기업을 대상으로 설문조사를 실시한 결과에서도 이 같은 변화는 감지된다. 응답업체들의 2006년 매출에서 중국 내 매출이 차지하는 비중이 47.6%로, 한국 내 매출(30.4%)과 제3국 매출(22%)을 크게 앞질렀다. 2005년 매출에서 중국 시장이 차지하는 비중은 41.7%였지만 1년 새 5.9%포인트나 증가한 것이다. 중점적으로 확충하고자 하는 시장이 어디인지를 묻는 질문에도 중국이라고 응답한 기업이 62%로 압도적으로 많았다. 다른 시장을 중점 공략할 것이라는 응답은 미주 8.8%, 한국 6.1%, 유럽 7.8% 등 상대적으로 크게 낮았다. 서비스산업의 투자도 늘고 있다. 1995년 한국 기업들의 중국 진출 초기 0.4%에 불과했던 서비스산업 투자는 2006년 말 현재 5.1%로 높아졌다.

○ 투자 지역에도 지각변동

한국 기업들이 중국 내 투자 지역을 선택함에 있어서도 큰 변화 조짐이 나타나고 있다.

‘비용절감형’ 투자가 주를 이뤘던 중국 진출 초기에는 인건비가 낮고 언어소통이 가능한 중국동포 노동력을 쉽게 확보할 수 있는 동북지역과 화북지역에 한국 기업의 투자가 집중됐다. 하지만 중국 내수시장 공략을 목적으로 하는 투자가 늘면서 한국 기업의 대(對)중국 투자 지역 역시 화동지역으로 옮아가고 있다.

화북지역과 동북지역에 대한 한국 기업의 투자는 1995년 각각 전체 투자의 55.3%, 16.6%에 달했다. 하지만 이는 2006년에는 각각 44.3%와 6.9%로 비중이 감소했다.

반면 1995년 24.7%에 머물렀던 화동지역에 대한 투자 비중은 지난해 44.3%로 급증했다.

대기업들의 중국 투자도 크게 증가하는 추세다. 미국, 유럽 등 선진시장의 성장이 정체 상태를 보이고 있고 중국 내수시장이 급격하게 커지면서 중국 시장을 선점하기 위한 글로벌 기업들의 발걸음이 빨라지고 있다.

이 같은 움직임에 맞춰 국내 대기업들도 중국 시장에 대한 투자를 늘리고 있는 것. 1995년 4억6000만 달러에 불과했던 대기업의 대(對)중국 투자는 지난해 16억5000만 달러로 늘었다.

○ 앞으로 중국 시장 겨냥한 투자 급증할 듯

중국은 최근 30년간 연평균 10%에 가까운 놀라운 경제성장을 보이면서 국민소득도 크게 늘고 있다. 상하이(上海) 등 동부 연해지역은 1인당 국내총생산(GDP)이 이미 5000달러를 돌파했다. 2008년 베이징 올림픽 등 굵직굵직한 국제적 이벤트를 치르고 나면 2010년경 중국 내 많은 지역의 1인당 GDP가 5000달러에 근접할 것으로 예상되고 있다. 이에 따라 중국 시장을 확보하기 위한 한국 기업들의 ‘시장개척형’ 투자는 더욱 늘어날 것으로 전망되고 있다.

한국 기업들의 중국 내 투자 지역도 중부내륙지역으로 확대될 가능성이 높다. 중국 정부가 의욕적으로 개발을 추진하고 있는 중부지역은 향후 대규모 시장으로 발전할 공산이 크기 때문에 내수에 집중하려는 제조업체들이 벌써부터 투자를 늘리고 있다.

KOTRA 중국팀 정영수 과장은 “6개 성(省)이 몰려 있는 중부지역은 중국 인구의 28%인 3억6100만 명이 거주하는 엄청난 잠재력을 가진 시장”이라며 “중국 내 생산비용 상승에 따라 한계상황에 직면한 업체들이 중부지역으로 옮아갈 가능성이 높다”고 설명했다.



신치영 기자 higgledy@donga.com

▼ 中 사업여건 악화… 리스크관리 강화해야▼

중국에 진출해 있는 국내 기업들의 리스크 관리 강화가 필요하다는 지적이 제기되고 있다.

LG경제연구원은 3일 ‘중국 사업, 리스크 관리 강화 필요’라는 보고서에서 “중국 사업 환경이 점차 나빠지고 있다는 위기의식이 확산되고 있다”며 “우리나라 기업의 지난해 중국 투자는 홍콩, 아일랜드, 일본에 이어 세계 4위를 차지하고 있을 정도로 높기 때문에 중국 사업의 리스크 관리는 매우 중요하다”고 지적했다.

보고서는 중국에 진출한 한국 기업의 관리 강화가 시급한 5대 리스크로 △중국 업체와의 경쟁 심화 △현지 인력 관리 △원가 상승에 따른 수익성 악화 △외자 기업에 대한 규제 강화 △지식재산권 침해 등을 들었다.

보고서는 “중국 업체와의 경쟁이 날로 치열해져 중국 내수시장과 해외수출시장에서 중국 업체의 시장 잠식 위험은 바로 눈앞에 닥쳐 있는 현실”이라고 말했다.

실제로 중국에 진출한 우리 기업 4곳 중 1곳은 밑지는 장사를 하고 있는 것으로 나타났다.

한국무역협회 국제무역연구원이 지난해 말 중국에 진출한 국내 180개 업체를 대상으로 설문조사를 실시한 결과 26.4%가 적자 경영을 하는 것으로 조사됐다. 흑자를 내고 있다고 응답한 기업은 전체의 39.9%에 불과했다.

응답 기업들은 중국 내 사업 위험 요인으로 △정부의 긴축 조치 △고용 환경의 변화 △세금 우대 축소와 세무조사 강화 △위안화 평가 절상 △환경 규제 강화 △가공무역제도 축소 및 폐지 움직임 △기술 이전 및 연구개발(R&D) 투자 요구 강화 △중국과 선진국의 통상 마찰 등을 꼽았다.

특히 응답 기업의 23.8%는 중국 사업이 어려워진 가장 큰 요인으로 고용 환경의 변화를 꼽았다.

중국 정부가 각 기업 내 노동조합의 권한을 확대해 주는 동시에 퇴직금 지급 및 사회보장 비용 징수 관리를 강화하면서 실질 노동비용이 빠르게 상승하고 있기 때문이다.

중국에 진출한 국내 기업의 58.9%는 최근 2년간 연평균 10% 이상 임금을 올려준 것으로 조사됐다.

LG경제연구원 최병현 연구위원은 “중국 사업에 있어 우리 기업이 직면하게 될 리스크는 갈수록 커질 것”이라며 "관련 리스크는 정부의 정책변화에 따라 심각성 정도가 달라질 수 있으므로 중국 정부의 정책 변화 동향을 지속적으로 관찰해 리스크에 신속하게 대응하는 게 중요하다”고 말했다.

최 연구위원은 또 “한국 기업들은 원가 경쟁력을 앞세운 중국 업체들의 물량공세를 이길 수 있게 프리미엄 제품 중심으로 전환하거나 중국 내수시장을 대체할 다른 시장을 찾는 등 차별화 전략이 시급하다”고 말했다.

황진영 기자 buddy@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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