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FTA시대,글로벌 법률산업 ‘빅뱅’]<4>글로벌 로펌 생존경쟁

  • 입력 2007년 4월 9일 03시 04분


글로벌 메가로펌이 밀집해 있는 미국 뉴욕의 맨해튼 전경. 뉴욕과 영국 런던의 메가로펌들은 글로벌 기업들의 세계시장 제패에 있어 창과 방패의 역할을 하고 있다. 미국계와 영국계의 양대 산맥으로 재편돼 있는 초대형 로펌들은 연간 매출액이 조 단위에 이른다. 동아일보 자료 사진
글로벌 메가로펌이 밀집해 있는 미국 뉴욕의 맨해튼 전경. 뉴욕과 영국 런던의 메가로펌들은 글로벌 기업들의 세계시장 제패에 있어 창과 방패의 역할을 하고 있다. 미국계와 영국계의 양대 산맥으로 재편돼 있는 초대형 로펌들은 연간 매출액이 조 단위에 이른다. 동아일보 자료 사진
“인터뷰했어요?”

“아니요. 곧 (전화)오면 해야죠. 부담스럽지만 회사에서도 적극적으로 응하라니까….”

지난달 26일 홍콩의 한 다국적 로펌 사무실에서 미국 변호사 A 씨가 동료 변호사와 대화를 나누고 있었다.

‘언론과의 인터뷰가 예정돼 있는 거냐’고 묻자 A 씨는 책꽂이에서 두꺼운 책 한 권을 꺼내 보여 줬다.

영국의 ‘체임버스 앤드 파트너스’사가 매년 펴내는 세계적 권위의 로펌 및 변호사 가이드인 ‘체임버스 글로벌 더 월드 리딩 로여스 2007’. 기업 인수합병(M&A), 국제중재 등 로펌의 업무분야별로 세계 최고 수준의 변호사들이 망라돼 있다.

체임버스 앤드 파트너스사에서 A 씨에게 다른 동료 변호사의 활동상황 등을 인터뷰하려는 것이었다. A 씨는 “이 책은 평가의 신뢰를 위해 세계 500대 기업 법무실과 라이벌 변호사들 인터뷰까지 꼭 반영한다”고 소개했다.

▽무한경쟁 불가피한 글로벌 로펌=또 다른 안내서인 ‘후즈 후 리걸’도 기업 법무를 25개 분야로 나눠 책을 낸다. 이 회사 홈페이지에는 이렇게 쓰여 있다.

“우리 회사의 서비스는 변호사를 찾는 데 들이는 시간과 비용을 줄여드립니다. 변호사에게서 엉터리 조언을 받게 될 위험을 최소화하는 것은 더 중요한 일입니다.”

글로벌 로펌 변호사들에게는 일상적인 일이지만 한국 법률시장에서는 낯선 문화다. 이들의 경쟁은 이처럼 고객 앞에서 완전히 ‘벌거벗는’ 데에서 시작된다.

중요한 고객인 글로벌 기업의 압박도 이들을 무한경쟁에 나서게 하는 요인이다.

지난달 23일 미국의 저명 법률 포털사이트인 뉴욕로여닷컴(www.nylawyer.com)은 “제너럴일렉트릭(GE)이 자신들의 일을 대리하는 로펌 리스트를 물갈이했다”고 보도했다. 곧바로 미국 뉴욕과 홍콩이 술렁였다.

기사 내용은 2004년 브래킷 데니스턴 GE 법무실장이 ‘젠원(Gen One)’이라는 이름으로 작성해 GE의 모든 법률 업무를 맡긴 140개의 단골 로펌 리스트가 확 바뀐다는 것. GE가 2년간의 실적과 이에 대한 평가를 근거로 단골들 중 44곳을 솎아 내고 12개의 새로운 로펌을 받아 108개의 로펌으로 ‘젠투(Gen Two)’를 구성했다는 내용이었다.

홍콩의 기업변호사들은 “GE는 정말 변호사들을 쥐어짜는 기업이지만 고객 측면에선 로펌이 제공하는 법률 서비스에 엄격한 것이 정상”이라며 “우리도 긴장하게 된다”고 말했다.

▽뉴욕과 런던의 차별화된 대응전략=글로벌 로펌들은 다국적 기업 및 투자은행들의 투자대상을 물색하고 국제적인 투자분쟁을 해결해 가는 과정을 거쳐 스스로 글로벌 기업으로 진화해 왔다. 법률 서비스는 상품이 됐고 이제 법률가들은 비즈니스맨이나 다름없다.

이들이 극한 경쟁을 견뎌 내는 대응전략은 대서양을 사이에 둔 미국 뉴욕과 영국 런던 간에 크게 다르다.

미국 로펌들은 새로운 시장 진출이나 로펌끼리의 M&A를 꺼린다. 이들은 뉴욕에 본사를 둔 모건스탠리, 골드만삭스, 메릴린치 등 세계 3대 투자은행과 긴밀한 관계를 유지하고 있어 ‘큰 거래’를 따내는 데 유리하다. 안정된 내수 시장이 기반인 셈.

일례로 195명의 변호사를 고용하고 있는 M&A 전문 로펌 ‘왁텔 립턴’은 2004년 변호사 1인당 수익이 세계 최고인 181만5000달러(당시 환율 기준 약 19억여 원)였다. 메가로펌의 영향력을 중점적으로 평가하는 볼트닷컴에 따르면 지난 3년간 왁텔 립턴은 세계 최고 로펌의 자리를 지키고 있다.

반면 ‘매직 서클(슬로터메이, 프레시필즈, 앨런오브리, 링클레이터스, 클리퍼드챈스)’로 불리는 영국의 초대형 로펌들은 슬로터메이 한 곳을 제외하면 해외 사무소가 모두 25개 이상이다. 유럽 통합의 과정을 거치면서 다른 나라의 로펌을 M&A하며 성장해 왔기 때문에 미국 로펌보다 영국이 아닌 다른 나라 변호사의 비율이 높다.

DLA 파이퍼 런던사무소의 김경화 파트너 변호사는 “영국 로펌들의 현지화 전략이야말로 진정한 세계화”라고 평가한다.

이 때문에 글로벌 로펌들 사이에서는 한국이 법률시장을 전면 개방하게 되면 한국 시장을 장악할 로펌은 미국계 로펌보다는 뉴욕에 사무소를 둔 영국계 로펌들일 것이라는 견해가 많다.

전지성 기자 verso@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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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의 한 국내 로펌에서 근무하는 변호사 A 씨는 지난해 11월 거슨레먼 그룹(www.glgroup.com)이라는 다국적 컨설팅회사에서 법률 자문에 응해 주기를 바란다는 e메일을 받았다.

“우리 회사가 인터넷 모 포털사이트의 지분을 일부 가지고 있는데 한국의 뉴스포털서비스에 대한 여론이 악화되고 있는 것 같다. 관련법과 제도도 점점 엄격해지는 것 같은데 지분을 계속 유지해야 하는가, 아니면 투자를 철회해야 하는가?”

거슨레먼 그룹의 고객 중 미국의 한 사모투자펀드사가 한국의 모 포털사이트에 대한 투자를 계속 유지할지에 대한 의견을 물어왔는데 자문에 응해 줄 수 있겠느냐는 내용이었다.

A 변호사는 2시간가량 조사를 해 본 뒤 이 펀드 관계자에게 전화로 “해당 포털사이트도 뉴스서비스 개선에 주력하고 있고, 효과가 나타나고 있다. 투자를 계속해도 좋겠다”는 의견을 전했다.

거슨레먼 그룹은 법률 분야뿐 아니라 회계 및 금융, 에너지 산업, 부동산, 의료 등 세계 첨단산업 분야별로 7000∼6만 명의 전문가들을 자문위원으로 고용한 다국적 온라인 컨설팅회사.

세계 각지의 기업들 또는 투자자들이 회사 운영이나 투자와 관련한 전문적인 의견을 물을 때마다 실시간으로 해당 분야 전문가들을 직접 만나거나, 전화로 자문할 수 있도록 주선해 준다. 수요자와 공급자에 관한 다양한 데이터를 보유하고 있으면서 이를 거미줄처럼 연결하는 ‘결혼정보회사’ 비슷한 신종 법률서비스라고 할 수 있다.

A 변호사는 자문에 응한 뒤 1주일쯤 지나 자문 수수료를 계좌로 송금 받았다.

물론 글로벌 로펌들은 이 같은 중계서비스를 활용하지는 않는다. 그러나 A 변호사는 “고객으로서는 전문적인 정보와 경험을 갖춘 대형 로펌과 정식 계약을 체결하고 자문하는 것보다 훨씬 저렴하고 신속한 서비스가 가능한 장점이 있다”고 말했다.

전지성 기자 verso@donga.com

●도움 주신 분들

▽로펌

△ALMT Legal(인도 뭄바이) 아난잔 미터 파트너 변호사 △DLA 파이퍼(영국 런던) 김경화 파트너 변호사, 박재우 변호사 △심프슨 새처 & 바틀릿(홍콩) 박진혁 파트너 변호사, 손영진 파트너 변호사, 패트릭 J 너튼 파트너 변호사, 최충인 변호사 △클리어리 고틀리브 스틴 & 해밀턴(홍콩) 한진덕 파트너 변호사, 이용국 파트너 변호사 △화이트 & 케이스(미국 워싱턴) 마이클 퀴글리 파트너 변호사

▽대학

서울대 법대 장승화 교수, 연세대 법대 노정호 교수

▽로스쿨

인디애나로스쿨(미국 인디애나 블루밍턴) 알프레드 아이히만 전 학장

▽기업

삼성전자(인도 델리) 오석하 전무(인도법인장)

성원코오퍼레이션(아랍에미리트 두바이) 리처드 리 부사장

하나여행사(인도 뭄바이) 박정희 사장

▽KOTRA

인도 델리무역관 기세명 관장, 박민준 과장

홍콩무역관 신환섭 관장, 박은균 과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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