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개방 태풍 맞는 한국로펌 게임 뛰어들 준비 안됐다”

  • 입력 2007년 4월 13일 03시 05분


《“한국 변호사들은 근본적인 단계에서부터 새로운 현실에 대처해야 한다. 법률 서비스는 전통적으로 특정 국가, 특정 지역에서만 발생하는 완전한 ‘내수 서비스’로 인식됐지만 이제 ‘교역’이 가능한 ‘글로벌 서비스’로 바뀌었다.” 국내의 로펌 및 기업업무 전담 변호사들이 법률시장의 글로벌화에 서둘러 대응하지 않으면 머지않아 심각한 구조조정에 직면할 것이라는 진단이 나왔다.》

이는 본보가 미국의 4개 글로벌 로펌에서 한국을 포함한 아시아 지역의 비즈니스 등을 담당하는 파트너 변호사들과 한 국내 로펌의 국제 중재 전문가에게 한국 법률시장의 미래에 대해 의견을 물은 결과다.

본보는 11, 12일 이틀 동안 법무법인 태평양 김갑유 파트너 변호사, 시들리 오스틴(홍콩) 알렌 김 파트너 변호사, '화이트&케이스(미국뉴욕) 에릭 윤 파트너변호사, 심프슨 새처 & 바틀릿(홍콩) 박진혁 파트너 변호사, 클리어리 고틀리브 스틴 & 해밀턴(홍콩) 한진덕 파트너 변호사 등 5명을 전화 또는 e메일로 인터뷰했다.

이들은 “근본적인 변화와 적극적인 인수합병(M&A), 실력 있는 인재 영입 등을 통해 실력과 규모를 키우지 못하면 법률시장이 완전 개방됐을 때 과거 독일에서 토종 로펌들이 초토화된 것처럼 외국 로펌에 고급 인재를 빼앗기거나 구조조정을 당할 수밖에 없을 것”이라고 경고했다.

또한 “한국의 변호사들은 매우 우수한 자질을 갖췄고 1997년 이후 외환위기를 거치면서 상당한 경험을 쌓은 것은 분명하지만 자신들의 역할을 단순히 법률지식을 제공하는 것으로 여기는 경향이 있다”고 꼬집었다.

의뢰인인 기업의 비즈니스 목표를 달성할 수 있는 해결책까지 제시하기 위해선 재무제표 및 회계 문제, 해당 산업 분야에 관한 지식 등에 이르기까지 충분히 이해하고 있어야 한다는 것.

이들은 공통적으로 “글로벌 비즈니스 경험을 축적하고 세계 시장의 준거법인 영미법에 익숙해져야 한다”고 주문했다. 두꺼운 보호막에 계속 안주하면 게임에 낄 수조차 없게 될 거라는 얘기다.

일례로 한미 자유무역협정(FTA) 협상 초기 한국 협상단은 국내 5위 안에 드는 한 ‘토종 로펌’에 협상 전반에 관해 조언을 구했다. 국제통상 및 관련 법규의 해석 등에 관한 것이었다.

그러나 이 로펌이 작성해 제출한 보고서의 내용과 수준이 문제가 돼 자문계약이 취소됐다. 미국 측과의 협상 실무는 물론 이론의 측면에서도 기대 이하였기 때문.

이후 한국 협상단은 미국 로펌인 ‘스텝토 & 존슨’과 ‘샌들러 트래비스 & 로젠버그’에 협상 전반을 자문했다.

협상단 안에서는 ‘알게 모르게 미국의 이익을 앞세우는 일이 생기지 않을까’ 하는 걱정도 있었지만 두 로펌은 경험과 지식이 수준급이었고 국적을 떠나 ‘고객의 이익’을 최우선의 가치로 여기는 태도 역시 매우 인상적이었다고 한다.

협상단이 접촉했던 국내 로펌들은 유수의 대형 로펌이지만 국제 통상업무에 관한 경험과 이해의 수준이 미국 일류 로펌에 비해 크게 떨어졌다는 후문이다.

전지성 기자 verso@donga.com

권혜진 기자 hjkwon@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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