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열대성 아파트

  • 입력 2007년 4월 14일 02시 50분


《조선 초기의 문신 강희안(1417∼1464)은 ‘양화소록’에서 “서울 벼슬아치 집에 이 꽃이 여럿 보이더니 근래 대부분 얼어 죽었다”고 전했다. ‘이 꽃’은 배롱나무의 백일홍. 배롱나무는 주로 남쪽에서 자라는 수종(樹種)이어서 서울로 옮겨 심으면 오래 못 살기 마련이었다. 하지만 수백 년이 지난 지금, 서울의 아파트 단지에는 잘 생긴 배롱나무들이 곳곳에 뿌리를 내리고 있다. 국립기상연구원에 따르면 한국의 겨울은 80년 전보다 한 달가량 짧아졌다. 뚜렷한 온난화 징후다. 기후가 아열대성으로 변하고 있다는 경고도 나온다. 기후에 따라 집도 바뀌기 마련. 아파트는 우리도 모르는 새 이미 추위를 막기 위한 폐쇄형 설계에서 방열(放熱)과 통풍을 중시하는 아열대성 기후 설계로 변하고 있다.》

○ 직사광선 막고 바람 술술∼

‘햇빛이 잘 드는 집’은 이제 주택 설계에서는 절반만 들어맞는 명제가 됐다. 채광을 고려해 30평형대에도 방 2개와 거실을 일(一)자로 배치하는 ‘3베이 구조’가 일반화됐지만, 한편으론 햇빛을 막기 위한 노력도 병행되고 있다.

대림산업이 지난해 경기 용인시 연수원에 연구용으로 지은 ‘초(超)에너지절약 시범주택’은 햇빛을 차단하기 위해 발코니 창 외부에 자동 블라인드를 설치했다. 발코니 확장이 늘면서 직사광선이 거실을 찜통으로 만든다는 점에 착안해 블라인드가 창문 표면 온도를 감지해 자동으로 펼쳐지도록 한 것.

삼성물산 건설부문은 올해 초 완공한 경기 화성시 동탄신도시 ‘삼성래미안’의 천장을 기존 아파트보다 30cm 높은 2.6m로 설계했다. 바람이 잘 통하도록 배려한 것이다. 온돌 마루도 이젠 옛말이 되다시피 했다. 대우건설은 최근 분양한 경기 이천시 ‘푸르지오’의 거실을 대리석으로 깔았다. 대리석은 난방에는 다소 취약하지만 시원한 느낌을 준다는 게 대우건설 측 설명. 고급스러움은 덤이다.

○ 아파트 단지를 차지한 동백나무

아열대성 설계는 조경에서도 잘 드러난다.

쌍용건설은 최근 리모델링한 서울 서초구 방배동 ‘예가’에 상록 활엽수인 동백나무를 심었다. 동백나무는 겨울에도 붉은 꽃을 피워 단지 분위기를 바꾸는 데 그만이라는 게 쌍용 측 설명.

현대건설은 서울 양천구 목동 하이페리온 2차에 제주도 자생식물인 팽나무를 이식했다. 대림산업도 부산 서면 e편한세상에 아열대 기후에서나 살 수 있는 야자수와 종려나무를 심었고 서울 방배동에는 대나무로 외부 조경을 꾸몄다.

○ 야외로 나온 단지 내 수영장

여름이 길어지면서 야외 수영장을 설치한 아파트도 나왔다. 쌍용건설은 경남 양산신도시에 지은 ‘예가’에 야외 수영장 두 곳을 마련했다.

현대건설도 일부 현장에 실외 수영장을 들인다는 계획이다. 현대건설 측은 “여름이 길어지면 평균 유지비가 떨어지기 때문에 야외에도 수영장을 개설할 수 있게 됐다”고 설명했다.

고기정 기자 koh@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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