코스피 1,500 넘어 힘찬 행진… 되돌아 본 한국증시 발자취

  • 입력 2007년 4월 14일 02시 50분


《‘넘어지고, 깨지고, 웃고….’ 증권가는 9일 코스피지수(옛 종합주가지수)가 대망의 1,500을 넘어서자 ‘국내 증시에 새로운 지평이 열렸다’며 환호했다. 되돌아보면 1,500을 돌파하기까지 한국 증시는 우여곡절을 겪었다. 1956년 증권거래소가 설립돼 증권시장이 본격 개장된 이래 1970년대 두 차례의 석유 파동, 1997년 외환위기, 2000년 정보기술(IT) 버블 붕괴 등 수차례 위기를 극복하고 쌓아 올린 ‘공든 탑’이다. 코스피지수 1,500 돌파에 맞춰 파란만장한 한국 증시의 51년 역사를 되돌아봤다.》

○ 태동과 발전…1950∼70년대

1956년 대한증권거래소가 설립되고 3월 3일 개소식과 함께 매매 거래가 시작되면서 국내에도 본격적으로 증권시장이 열렸다.

개장일에 상장된 종목은 조흥 저축 상업 흥업은행(한일은행 전신) 등 4개 은행과 경성방직 대한해운공사 대한조선공사 등 6개 일반 기업, 대한증권거래소와 한국연합증권금융 2개 법인 등 모두 12개였다.

초기 증권시장은 주식과 국채 거래 비율이 절반 정도였다. 주식 공급 부족과 국채 대량 발행 때문에 국채 매매 중심의 시장이 될 수밖에 없었다.

국채 거래 중심의 주식시장은 1961년 5·16군사정변 이후 전환기를 맞았다.

경제개발 계획을 추진하던 군사정부가 증권시장을 자금 조달의 중요한 수단으로 육성하기 위해 투자 분위기를 조성하고 주식 공급을 확대하는 등 증시 육성정책을 펼쳤기 때문이다.

증권거래법을 제정하고, 주주우선 배당정책을 장려하면서 투자 수요를 자극했다. 그 결과 주식 매매 중심의 증시로 모습을 갖추기 시작했다.

1970년대에는 1973년 1차 석유 파동으로 주춤하기도 했으나 수출 및 해외 건설 등 해외 부문 호조로 1977년부터 건설업종을 중심으로 활황을 보였다.

증권거래소 역사의 산증인으로 불리는 옥치장 유가증권시장본부장은 “1973년 입사할 당시는 종목이 100여 개에 불과했고 분필로 칠판에 시세를 적던 시절”이라며 “지수도 미국의 다우존스 산업지수를 본떠 30개 종목으로 구성된 다우식 주가지수를 사용했다”고 회고했다.

상장사가 늘어나고 주식 거래 규모가 급격히 팽창하게 되면서 증권거래소는 1979년 7월 2일 명동에서 여의도로 이전해 본격적인 ‘여의도 시대’를 맞는다.

○ 도약과 위기…1980, 90년대

1980년대부터 주식 대중화를 위한 국민주가 본격적으로 보급되기 시작했다.

정부는 포항제철(현 포스코) 한국전력공사 국민은행 전기통신공사(현 KT) 등 국가기간산업이나 공공성이 높은 국민적 기업 주식을 보급 대상으로 삼았는데, 첫 주자는 1988년 포철이었다.

국내 증시는 1980년대 중후반 저금리, 저유가, 저원화 가치 등 이른바 ‘3저(低) 경제 호황’에 힘입어 1989년 3월 31일 1,000 고지(1,003.31)를 처음 밟았다.

이어 한국 증시는 1992년 외국인 직접투자를 허용하면서 선진 증시로 한 단계 업그레이드했다. 일반법인은 10%, 공공법인은 8%까지 외국인 직접투자가 허용됐고 6년 뒤인 1998년에는 외국인 취득한도가 완전 폐지됐다.

또 국내 상장법인의 해외 상장도 동시에 추진됐는데, 1994년 10월 포철과 한전이 미국 증권시장 공모를 통해 뉴욕증권거래소(NYSE)에 상장됐다. 외국인에 대한 국내 증시 개방과 국내법인의 해외 상장은 자본 국제화를 위해 필수불가결한 조치였다.

하지만 국내 증시는 1997년 외환위기라는 최대 위기를 맞았다.

기업들의 문어발식 확장과 과도한 외채 도입, 금융회사의 방만한 대출이 복합적으로 작용하면서 한보 삼미 대농 진로 기아 쌍방울 해태 등 재벌그룹들이 잇달아 쓰러졌다.

종합주가지수도 280까지 추락했다.

○ 성장과 과제…2000년 이후

외환위기 이후 국내 기업들은 혹독한 구조조정을 통해 몸집을 줄이고 경영 내실을 꾀했다.

기업가치가 좋아지면서 주가도 치솟기 시작했다. 하지만 증시에 불어 닥친 벤처기업 투자 바람은 결국 IT 버블 붕괴라는 허탈한 결과를 낳아 개인투자자들에게 큰 상처를 안겨 줬다.

하지만 2003년부터 불기 시작한 적립식 펀드 투자는 국내 증시의 체질을 강화하는 계기가 됐다. 적립식 투자 열풍으로 꾸준히 증시에 자금이 유입되면서 외부 충격에도 버틸 수 있는 강한 체력이 길러진 것이다.

국내 증시는 외국인들의 강한 매수세로 2005년 말 1,380까지 치솟은 이후 지난해 잠시 주춤하다 올해 한미 자유무역협정(FTA) 협상 타결과 글로벌 증시 상승 등 호재에 힘입어 1,500을 돌파하는 데 성공했다.

1989년 처음 1,000을 돌파한 이후 1,500을 밟기까지 18년의 세월이 흘렀다.

증시 전문가들은 대망의 2,000을 넘기 위해서는 국내 증시 구도에 질적인 변화가 있어야 한다고 입을 모은다.

동부증권 신성호 리서치센터장은 “기업이 창의성을 발휘해 새로운 사업영역을 개척할 시기가 온 것 같다”며 “개인 투자자들도 ‘일확천금’의 허망한 욕심을 버리고 저축한다는 자세로 투자해야 국내 증시의 질적인 발전이 가능할 것”이라고 지적했다.

김상수 기자 ssoo@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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