돈 worry? Don’t worry!
서민-중소기업의 돈줄
본보 취재팀은 은행업종 입사 선호 1위로 선정된 국민은행 취재를 위해 이 은행 임직원 60명에게 설문지를 돌리면서 ‘국민은행은 □다’라는 문항의 네모 칸을 창의적으로 채워 달라고 부탁했다.
우선 임원들의 답변.
“국민은행은 대한민국이다. 왜? 한국을 대표하는 금융회사니까.”
“국민은행은 가족이다. 가족처럼 친근한 조직이다.”
그렇다면 20, 30대 신세대 행원들의 답변은?
“국민은행은 ‘잘나간다’, ‘서민적이다’, ‘민첩하지 못하고 무겁다’, ‘믿을 수 있는 오랜 친구다’….”
본보 취재팀은 자녀가 입행하면 부모가 자랑스러워한다는 국민은행 직원들의 답변이 평이한 것에 의아심이 생겼다. 5개 은행이 합쳐진 이 은행을 ‘오색 비빔밥’, ‘로또와 주택복권’처럼 발랄하게 표현할 수도 있었을 텐데….
튀는 게 미덕인 요즘 세상에 ‘친구 같은 서민은행’ 직원들의 속내가 궁금해졌다.
그들의 답변이 튀지 않은 이유는 국민은행의 역사에서 단서를 찾을 수 있다.
국민은행의 모태는 1920년대에 생겨난 서민 상호금융기관 ‘무진(無盡)’이었다. 융자에 필요한 담보가 없어 은행 문턱이 높기만 한 서민들의 ‘금융 오아시스’였다.
8·15광복 이후에도 국민 대다수는 서민이었다.
정부는 1962년 무진을 서민금융 전담기관으로 발전시키기 위해 국민은행법을 만들었고, 다음 해인 1963년 ‘한국무진’의 자산을 인수한 옛 국민은행이 탄생했다.
1897년 국내 최초의 민간 상업은행으로 설립된 조흥은행을 시작으로 상업(1899년), 제일(1929년), 한일(1932년), 서울(1959년) 등 5개 시중은행은 개발경제 시대를 거치면서 기업금융의 산파 역할을 했다.
1995년 국민은행법 폐지로 민영 시중은행이 된 국민은행은 1998년 국제결제은행(BIS) 기준 자기자본비율을 맞추지 못해 퇴출된 대동은행을 자산부채이전(P&A) 방식으로 인수하고, 당시 자금난을 겪던 장기신용은행과는 합병했다. 이어 국민은행은 동남은행을 인수한 주택은행과 2001년 합병했다. 5개 은행을 통합한 거대 시중은행으로 거듭 태어난 셈.
이달수 국민은행 부행장은 “서민의 푼돈을 맡는 금융기관 역할을 하면서 은행의 조직문화에도 서민적인 색채가 투영됐다”며 “일반 개인고객을 관리하는 비용이 많이 드는 것은 국민은행의 강점이자 약점”이라고 말했다.
김승만 전국은행연합회 홍보부장은 이렇게 말한다.
“2000년 이전에는 은행 관계자들이 모여 회의를 할 때면 으레 조흥은행 직원이 한가운데 자리에 앉았죠. 그런데 2000년대 들어 국민은행에서 이런 관례에 ‘진지하게’ 항의하더군요. 자산 규모로 보나 연합회에 내는 분담금으로 보나 국민은행이 리딩 뱅크 격인데 왜 끄트머리 자리냐는 거죠. 아차 싶어 회원사 의견을 모아 자리를 조정했습니다.”
국민은행의 총자산은 지난해 말 현재 211조 원으로 국내 은행권 1위다. 1999년부터 8년째 수위를 지키고 있다.
본보는 국민은행 임직원을 대상으로 이 은행의 조직문화에 대해 심층 인터뷰했다. 이들의 목소리에는 우월감과 열등감, 안정과 경쟁 사이를 줄타기하는 국민은행의 현실과 고민이 녹아 있다.
“1988년 당시 국책 금융기관이던 국민은행에 입행했다. 은행 문 닫으면 일찍 퇴근하는 편한 직장인 줄로 잘못 알고 들어왔다. 예전의 국민은행은 개인의 맨 파워는 세지 않아도 똘똘 뭉치는 ‘꿀벌 문화’가 있었다. 통합 이후 은행 이미지는 50대에서 30대로 젊어진 듯하지만 꿀벌 문화란 말은 사라졌다.”(김종란 국민은행 마케팅팀장·43세)
“1995년 민영화 이전에는 국민은행법에 따라 총자산 50억 원 이하, 종업원 150명 이하인 중소기업에만 대출할 수 있었다. 우리는 서민금융을 책임진다는 자부심으로 열심히 일했다. 드라마틱한 스토리가 없는 게 국민은행의 힘이다. 슬라이딩해서 공을 잡는 선수는 빛이 나지만 사실 하수(下手)다. 먼저 가 있다가 공을 받는 게 진정한 고수(高手) 아닌가.”(노영일 국민은행 미아동지점 팀장·45세)
“국민은행은 ‘철밥통’ 같은 공기업 분위기에서 외부 수혈을 통한 경쟁체제로 이행하는 과도기에 있다. 고용 불안을 느끼는 차장급 이상 직원이 적지 않다. 하지만 여전히 보수적인 측면이 많다. 조직이 안정적이고 복지 혜택이 좋아 한 달에 한 번 보건휴가와 육아휴직을 눈치 안 보고 쓰는 것은 좋은 점이다.”(30대 익명의 본점 전문계약직원)
통합 6년째인 국민은행은 외부 수혈을 통해 자기 정체성 찾기에 분주한 모습이다.
현재 국민은행은 임원 18명 가운데 강정원 행장을 포함해 11명이 외부에서 왔다. 대부분 외국계 은행, 대학 교수, 글로벌 회계법인 출신이다.
빅3 은행인 신한은행에는 외부 출신 임원이 단 한 명도 없고, 우리은행도 행장과 감사만 외부에서 왔다. 물론 이 자체만으로 어느 쪽이 더 낫다고는 할 수 없다.
국민은행 임직원은 스스로 ‘특징이 없는 게 국민은행의 특징’이라고 말한다. 하지만 통합 국민은행은 옛 국민은행과 주택은행의 상이한 조직문화를 하나로 끌어 담을 ‘섹시한’ 구심점을 아직 찾지 못하고 있다는 평가가 적지 않다.
국민은행의 가계대출과 기업대출 비중은 지난해 말 현재 64 대 36이고, 기업대출 중에는 중소기업 대출이 80%에 이른다.
통합 국민은행 초대 행장을 지낸 김정태 씨가 고소득 고객을 유치하기 위해 ‘서민은행 포기’를 선언했지만 현 강정원 행장은 “우리 기반은 서민”이라고 공언하고 있다.
올해 2월 국민은행은 글로벌 기업 등과 비교한 ‘국민은행 이미지 조사’를 갤럽에 의뢰했다. 조사 결과 국민은행은 대중성(56.6%) 친근함(35%) 분야에서 다른 기업을 월등히 앞선 반면 전문성(21.5%)과 혁신성(2.2%) 분야에서는 현저히 낮은 평가를 받았다.
서민은행으로 출발한 국민은행이 글로벌 뱅크로 도약하기 위해서는 무엇이 필요한지를 짐작하게 한다.
김선미 기자 kimsunmi@donga.com
장원재 기자 peacechaos@donga.com
■ Q&A / 국민은행에 대한 오해와 진실
‘범생이’만 뽑는다는데…
본보는 채용정보회사인 ‘커리어’와 ‘인크루트’ 두 곳에 의뢰해 구직자들로부터 ‘국민은행에 묻고 싶은 질문들’을 받았다. 이에 대한 국민은행 측의 답변을 소개한다.
Q: 출퇴근 시간은….
A: 대체로 오전 8시 반까지 출근한다. 퇴근 시간은 직무에 따라 다르다. 지점 직원 중 입출금 담당은 오후 7시, 상품판매 담당은 오후 8시, 대출 담당은 오후 9시쯤 일을 마친다. 본부 직원은 평균 오후 8시∼8시 반에 퇴근한다.
Q: 정규직도 창구 영업을 해야 하나.
A: 정규직은 의무적으로 입사 첫해 1년 동안 창구에서 일한다. 이후에는 희망에 따라 지점에서 일할 수도 있고 본부로 올 수도 있다. 경쟁을 거쳐 20∼30%가 본부로 온다.
Q: 본부 근무와 지점 근무 중 어디가 더 대우를 받나.
A: 전체 인원의 약 10%가 본부에서 일한다. 상대적으로 업무 강도가 낮은 본부 부서를 선호하는 경향이 있지만 지점 경력이 없으면 임원이 되기 힘들다. 보통 3년마다 한 번씩 직무나 지점을 바꾼다. 5년 동안 본부에서 근무하면 무조건 1년 동안 지점 근무를 해야 한다.
Q: 성과급은 얼마나 나오나.
A: 개인별로 성과급이 다른 것은 아니다. 전년도 지점·부서의 업무성과지표(KPI)에 따라 성과 연봉에 차등이 생긴다. 지점 직원은 월 기본 급여의 500∼900%, 지점장 400∼1000%, 본부부서 팀원 600∼800%, 팀장 500∼900%를 1년에 4번 나눠 받는다.
Q: 퇴직률은….
A: 지난해 정규직 퇴직률은 0.75%였다. 입사 후 1년 이내 퇴직률은 2005년 7월 입사자 4.58%, 2006년 1월 입사자 3.57%다.
Q: 채용 시 모범생을 선호한다는데 사실인가.
A: 돈을 다루기 때문에 올바른 가치관과 윤리의식이 가장 중요하다. 일에 대한 열정과 친화력도 본다. 규율을 잘 지킨다는 면에서 모범생이 높은 점수를 받을 수 있지만 적극성과 친화력이 없으면 뽑지 않는다. 너무 튀면 불리한 것은 사실이다.
Q: 상경계열을 우대하는가.
A: 아니다. 국민은행에는 250여 가지의 직무가 있기 때문에 다양한 전공이 필요하다. 전년도 입사자를 보면 상경계 40%, 인문사회계 30%, 이공계 및 기타 30% 정도다. 개인금융 부문은 친화력이 중요하고 기업금융 부문은 회계 능력, 재무제표 분석 능력 등을 본다.
Q: 취업 시 도움이 되는 자격증은….
A: 세무사, 공인회계사(CPA), 국제재무분석사(CFA), 변호사, 미국공인회계사(AICPA), 재무설계사(FP) 등이다. 서류심사에서 5% 안팎의 가산점을 받는다.
Q: 서비스업이라 외모가 중요하다던데 사실인가.
A: 고객에게 혐오감을 주지 않을 정도면 상관없다.
Q: 은행 빚이 있으면 취업에 불리한가.
A: 신용불량자만 아니면 된다.
장원재 기자 peacechaos@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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