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현금인출기는 겉은 다른 인출기와 다를 것이 없었다. 하지만 이곳에서 현금 인출을 한 고객들은 이후 자신도 모르게 계좌에서 돈이 빠져 나갔다. 이렇게 빠져 나간 돈이 1억2000여만 원에 이른다.
현금인출기를 운영하는 업자가 인출기 안에 불법적으로 카드정보 판독기를 설치했기 때문이다.
이 판독기는 손님이 현금인출기에 카드를 넣으면 카드 뒷면의 마그네틱 테이프에 저장된 개인정보를 읽어내 저장하는 기능이 있었다.
이런 방법으로 다른 사람들의 신용카드를 복제해 돈을 인출한 인출기 업자 2명이 19일 경찰에 붙잡혔다.
경찰에 따르면 김모(41) 씨 등 2명은 현금인출기 제조업체에서 사들인 인출기 내부에 카드 정보를 읽을 수 있는 카드정보 판독기를 설치했다.
손님의 비밀번호를 훔쳐볼 수 있도록 인출기 위에는 소형 몰래카메라까지 따로 부착했다.
이후 지난해 9월 말 분당의 한 편의점에 월 30만 원의 장소 임대료를 내고 복제 장치가 숨겨진 현금인출기를 비치했다.
김 씨 등은 지난해 11월부터 올해 1월까지 500여 장의 신용카드 정보를 빼돌려 복제카드를 만든 뒤 이 가운데 30장으로 서울 부산 광주 대구 등지에서 1억2000여 만 원을 인출했다.
이들은 현금인출기 제조업체에서 기기를 정기 점검하러 나올 때를 미리 파악해 기기 속에 숨겨 놓은 카드 복제 장치를 꺼내뒀다가 점검이 끝나면 다시 설치했다.
경찰 조사 결과 김 씨 등은 은행이 운영하는 현금인출기와 달리 편의점이나 지하철역 등에 설치된 현금인출기는 자동판매기처럼 세무서에 사업자등록만 하면 개인이 운영할 수 있다는 점을 노렸다.
이들은 전과 경력이 있어 사업자신규등록이 어려울 것으로 보고 “복제카드로 인출한 돈 가운데 5억 원을 주고 중국으로 도피시켜 주겠다”고 꾀어 도모(49) 씨 이름으로 현금인출기 운영업자로 등록한 사실도 밝혀냈다.
경찰은 김 씨 등 2명을 여신전문금융업법 위반 등의 혐의로 구속하고, 명의를 빌려준 도 씨를 불구속 입건했다.
경찰은 “제보를 받고 범행 초기에 이들을 붙잡지 않았더라면 신용카드를 복제당한 500여 명 모두가 큰 피해를 볼 뻔했다”고 말했다.
홍수영 기자 gaea@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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