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등을 버려야 1등을 지킨다
SK텔레콤은 ‘눈물 젖은 빵’을 먹어 본 적이 없는 기업이란 얘기를 듣는다.
전신인 한국이동통신서비스는 1984년 태어날 때 경쟁자 없는 1위였다. SK텔레콤의 휴대전화 서비스는 경쟁사들보다 10년이나 빠른 1988년에 시작됐다.
SK텔레콤을 상징해 온 ‘011’에는 그런 1위의 프리미엄이 압축돼 있다. 누르기 쉽고 외우기 편한 011은 “SK텔레콤은 땅 짚고 헤엄치듯 사업을 해 왔다”는 비판도 낳았다.
○눈물 젖은 빵을 먹어 본 적이 없는 SKT?
1999년 SK텔레콤은 어항이 갑자기 깨지면서 물고기가 공중에 날아다니는 ‘정말 이상한 TV 광고’(당시 조정남 사장·현 부회장의 표현)를 만든다. 무려 430억 원의 예산이 들어간 이 광고가 조 사장은 마음에 들지 않았다. 하지만 임원들은 “젊은 사람들이 하자는 대로 해보자”고 했다.
결과는 그야말로 대박이었다. SK텔레콤의 20대를 위한 브랜드 ‘TTL’은 이렇게 태어났다. 당시 젊은 세대들은 후속 광고가 방송 타는 날을 손꼽아 기다릴 정도로 열광했다.
SK텔레콤 내부에서도 젊은 직원들의 젊은 감각을 존중해 주는 ‘TTL식 경영’이란 신조어가 만들어졌다.
TTL은 국내 통신업계 최초의 연령대별 세분화 마케팅(Segmentation Marketing)이었다. 뒤이어 나온 10대를 위한 서비스 ‘Ting’과 25∼35세를 대상으로 하는 ‘UTO’, 기혼 여성을 위한 ‘CARA’까지 SK텔레콤의 세분화 마케팅 전략은 계속됐다.
SK텔레콤이 ‘그랜저 승용차’에만 앉아 1위에 안주했다면 이런 공격적 마케팅은 나오지 않았을 것이다. 이를 두고 ‘승리는 저절로 반복되지 않는다’는 의미의 전승불복(戰勝不復) 정신에 따른 것이라고 사내(社內) 교육 책자는 설명한다.
동국대 여준상(경영학) 교수도 “SK텔레콤은 뛰어난 마케팅 기법으로 1등이라는 지위에 안주하지 않고 차별화를 통해 시장의 흐름을 바꾸고 지속적으로 확대해 왔다”고 평가했다.
SK텔레콤의 지난해 매출액은 10조6500억 원, 영업이익은 2조5800억 원에 이른다. 직원 1인당 영업이익이 6억 원으로 국내 기업 중 최고 수준.
양종인 한국투자증권 연구위원은 “특혜와 시장지배력이 곧바로 성과를 보장하는 것은 아니다. 주어진 1등을 사수하는 것도 만만치 않은 일”이라고 말했다.
○변화하고 또 변화하라…승부는 세계시장이다
김신배 SK텔레콤 사장은 지난해 8월 주요 임원들과 함께 미국 팰로앨토에 있는 아이데오사(社)를 방문했다. 아이데오는 1987년 마이크로소프트와 함께 최초의 인체공학적 마우스를 만든 세계적인 디자인 회사. 김 사장은 여기서 인간 중심의 디자인 접근 방법에 대한 공부를 했다. 같은 해 12월 SK텔레콤에는 ‘휴먼 센터드 이노베이션(Human Centered Innovation·HCI·인간중심혁신팀)’이라는 낯선 조직이 만들어졌다.
정확한 규모조차 ‘대외비’인 HCI는 인류학적인 방법을 동원해 인간의 행동양식을 연구하고 그것을 토대로 소비자들이 필요로 하는 상품과 서비스를 개발하고 있다. SK텔레콤의 새로운 성장 동력을 찾고 있는 것이다.
김 사장의 최고성장책임자(CGO·Chief Growth Officer)라는 직함에도 ‘업종에 관계없이 변화하는 시대 흐름을 선도하는 SK텔레콤의 새로운 성장 동력을 찾겠다’는 의지가 담겨 있다. SK텔레콤에서는 이를 ‘변하는 세상에 맞춰 끊임없이 변화하라’는 의미인 응형무궁(應形無窮)의 전략이라고 부른다.
1999년부터 시작된 해외 사업도 글로벌 시대에 대처하기 위한 것이다.
베트남 합작 사업에서는 170만 명의 가입자를 모았다. 중국 제2의 이동통신업체 차이나유니컴의 전환사채 10억 달러(전환 시 지분의 6.7%)를 가지고 있다. 아시아 기업으로는 처음으로 미국 전역을 대상으로 하는 이동통신서비스 ‘힐리오’를 시작한 것도 SK텔레콤이다.
○국내 소비자 주머니만 노리는 내수기업?
SK텔레콤은 요즘 1위의 딜레마에 빠져 있는 모습이다. 화상통화가 가능한 3세대(3G) 이동통신시장에서 KTF의 거센 도전을 받고 있다.
SK텔레콤이 3G 고객을 유치하려면 011 번호를 010으로 바꿔야 한다. 그러나 가입자당 평균수익(ARPU)이 높은 011 고객들을 놓치기가 너무 아까운 면이 있다. 반면 기존의 1위 프리미엄을 과감히 버리지 않으면 새로운 도전과 기회에서 뒤처질 우려도 없지 않다. 경쟁사에서는 “SK텔레콤은 3G 시장에 대해 ‘신 포도(sour grape)’ 심보를 갖고 있는 것 같다”는 말도 한다. 당장 따먹을 수 없으니 맛(이익)이 없을 것이라고 폄훼하고 있다는 것이다.
정승교 우리투자증권 연구위원은 “SK텔레콤이 앞으로도 이동통신시장에서 유력한 사업자로 남을 것이라는 데에는 이견이 없다”면서도 “유선과 무선이 결합한 서비스가 대세를 이루는 시대 흐름에 어떻게 대비하느냐가 중요한 과제”라고 말했다.
‘국내 소비자의 주머닛돈만 노리는 전형적 내수기업’이란 곱지 않은 시각을 불식시킬 정도의 해외 실적을 올리는 것도 SK텔레콤의 미래를 좌우할 주요 변수로 꼽힌다.
김선우 기자 sublime@donga.com
부형권 기자 bookum90@donga.com
▼SKT, 아시아 최고 직장에 선정▼
SK텔레콤은 세계적인 인사컨설팅 회사인 휴잇 어소시에이츠와 월스트리트저널아시아가 공동 주관한 조사에서 ‘아시아 최고의 직장(Best Employers in Asia)’ 20개 기업 중 하나로 선정됐다고 20일 밝혔다.
휴잇은 SK텔레콤을 선정한 이유로 △다양한 경력 개발 기회 제공 △수평적 직위체계와 성과 기반 보상체계 △역량 개발에 중점을 둔 육성형 평가 △구성원의 삶의 질 향상에 실질적인 도움을 주는 복리후생제도 등을 꼽았다.
SK텔레콤은 국내 조사 대상 64개 기업 중 유일하게 최고의 직장으로 선정됐으며 한국 최고의 직장 부문 조사에서도 수상 기업 10개 중 대상(Best of the Best Employers in Korea)을 차지했다.
이번 조사는 아시아 7개국 750여 개 기업을 대상으로 실시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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