얼마 전까지만 해도 한국과의 FTA에 큰 관심을 보이지 않았던 EU가 적극적인 자세를 보인 이유는 한미 FTA 협상 타결 때문인 것으로 해석된다. EU는 한국시장에서 유럽 상품이 미국 상품에 밀려나는 소위 무역전환 효과를 최소화하기 위해 한국과 FTA를 체결하겠다는 것이다. 또 수출을 늘리고 한국으로의 직접투자를 통해 미국시장을 자유롭게 공략해 보자는 전략이 내포된 듯하다.
한국도 미국과의 FTA 협상이 타결된 만큼 추가적인 개방 부담 없이 세계 최대 단일시장으로의 접근을 확보하는 일이 국익에 도움이 된다고 판단한다. 아울러 EU의 경우 농산물 분야의 시장개방 압력이 미국보다는 적어 EU와의 FTA 협상이 상대적으로 수월할 수 있다고 본다.
이렇듯 양국의 이해관계가 서로 맞아떨어져 한국과 EU의 FTA 협상은 빠른 속도로 추진될 것으로 예상된다. 통상전문가들도 한미 FTA가 발효된다면 EU와의 FTA 체결이 빠를수록 한국 경제에 더 큰 이득이 된다는 의견을 내놓고 있다.
EU와의 FTA 추진 배경과 관련해 정부는 2003년 8월 작성한 FTA 로드맵을 근거로 제시하며 지난해 11월 공청회를 개최해 전문가 의견을 수렴하는 등 사전준비가 충분했음을 강조한다. 한미 FTA를 반대하는 측도 FTA 자체를 반대하지는 않는다는 주장이어서 EU와의 FTA 협상은 미국과의 협상 때보다 국내의 반대가 훨씬 덜할 것이라는 전망이 나온다.
EU와의 FTA 협상이 예상대로 순탄하지만은 않을 것이라고 보는 시각도 있다. 많은 국민은 한미 FTA 협정문에 최종 서명하지 않은 상황에서 EU와 FTA 협상을 추진하는 이유를 잘 이해하지 못한다. 특히 한미 FTA로 어려움을 겪을 의약품, 지식재산권, 중소 제조업 및 영세 서비스 분야는 EU와의 FTA가 어려움을 증폭시킬 것으로 우려한다. EU가 국제경쟁력을 보유한 자동차 금융 법률 회계 서비스 등 분야에서도 개방이 확대될 경우 한국 경제에 주는 충격은 훨씬 더 커질 수 있다는 생각이다.
통상전문가들도 EU와의 협상에서 주의할 점을 지적한다. EU는 경제공동체로서 협상대표가 단일화된 반면 27개국의 의견이 일치해야 진전을 보이는 구조적인 특징이 있는 만큼 우리의 요구를 관철하기가 미국과의 협상 때보다 훨씬 더 어려울 수 있다는 설명이다. 정부는 이런 우려의 목소리와 지적에 귀를 기울여야 한다.
국제무역이론 차원에서 보면 미국 한 나라하고만 양자 간 무역자유화를 하기보다 EU 등 다른 나라와의 FTA를 동시에 출범시키는 편이 더 효율적이라는 데는 큰 이견이 없다. 그러나 현실적으로 세계 거대 경제권과 동시다발적으로 FTA를 추진하는 정부의 전략에 대해 일반 국민은 쉽게 납득하기 어렵다.
정부는 EU와의 FTA를 현 시점에서 추진하는 이유를 국민에게 설득력 있게 이야기해야 한다. 한미 FTA와 같이 졸속으로 추진했다는 비판이 되풀이되지 않도록 하기 위해서도 필요한 일이다. 아울러 정부는 한미 FTA에 이어 EU와의 FTA를 동시에 추진할 경우 경제에 미치는 포괄적인 영향을 고려해 후속 대책을 내놓아야 국민의 신뢰를 얻을 수 있다. 내주 열리는 대외경제장관회의가 끝난 뒤 EU와의 FTA 추진에 대한 경제부총리의 대국민 설명을 기대해 본다.
박태호 서울대 국제대학원 원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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