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계화 시대엔 자본에 국적이 없다고 하지만 기업인에게는 국적이 엄존한다. 최근 국회가 방위산업체에 대한 외국자본의 적대적 M&A를 금지하고 있는 미국의 ‘엑슨-플로리오법’ 도입을 염두에 둔 공청회를 연 것도 이 때문이다. 외국계 펀드 소버린자산운용이 SK그룹을 공격했고, 칼 아이칸은 민영화된 KT&G를 넘봤다. 이들은 수천억 원의 차익을 챙겨 한국을 떠났다. 우리 기업을 적대적 M&A하려는 외자가 언제 어디서 또 튀어나올지 모른다.
외환위기 이후 자본시장이 열리면서 국민은행, 삼성전자, 현대자동차 등 국내 우량기업 대부분의 외국인 지분이 40∼60% 수준에 이르고 있다. 기업들의 경영권 보호에 대한 걱정이 엄살인 것만은 아니다. 국내 상장기업들은 경영권 방어를 위해 한 해에 7조3000억 원어치의 자사주를 매입하고 있다. 삼성전자는 7년간 자사주를 13조 원어치나 샀다. 이렇게라도 경영권을 방어하자니 미래를 위한 투자 여력은 그만큼 줄어들 수밖에 없다.
적대적 M&A는 기업의 실제 가치보다 주가가 지나치게 낮을 때 기업을 싸게 인수해 한몫 보자는 것이다. 이를 막으려면 기업 가치가 충분히 반영되도록 주가를 잘 관리할 필요가 있다. 하지만 그 과정에서 기업 부담이 만만찮은 게 현실이다. 소버린의 공격을 이겨 낸 SK(주)도 그랬다.
모토로라, AT&T 등 미국 상장기업의 60%는 기업이 매수당하더라도 기존 경영진의 이익을 과(過)보호함으로써 M&A의 실익(實益)을 없애 버리는 이른바 ‘독약 조항’을 정관에 담고 있다. 구글과 포드자동차 등은 특정 주주의 주식에 대해 더 많은 의결권을 주는 차등의결권주 제도를 갖고 있다. 국내에서도 핵심 기업들의 경영권 안정과 투자 활성화에 도움이 될 제도에 관해 활발히 논의하고 해답을 찾을 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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