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석동빈 기자의 카 라이프]첫 차 스쿠프, 꿈엔들 잊힐리야

  • 입력 2007년 4월 27일 03시 07분


“사실 난 널 가장 깊이 사랑하지는 않았다. 그러나 가장 많은 추억은 남아 있다.”

누구에게나 첫 차는 첫 사랑처럼 오래 기억에 남기 마련입니다. 서툰 운전으로 접촉사고 등 크고 작은 에피소드가 많고 새로운 친구를 사귀거나 연인과 사랑이 깊어지는 계기가 되기도 하기 때문이죠.

기자의 첫 차는 1993년 구입한 현대자동차 스쿠프였습니다. 자동차에 ‘다걸기(올인)’하게 된 결정적인 계기가 된 애물이었습니다.

출근길 만원 버스 안에서 여유롭게 지나가는 하얀색 스쿠프를 보는 순간 섬뜩할 정도의 강렬한 소유욕이 발동했습니다. 마치 스쿠프를 소유하기 위해 지금까지 살아온 듯한 느낌.

잠재의식 속에 묻혀 있던 자동차에 대한 열망이 만원 버스의 짜증과 백마(白馬)처럼 보였던 스쿠프의 고고함이 교차하면서 의식 밖으로 튀어나온 모양입니다.

당장 매장으로 달려가 받아 본 가격표는 750만 원. 당시 월급이 100만 원이었고 빚도 조금 있었던 터라 내지르기에는 무리였지만 어느새 손은 계약서에 사인을 하고 있었습니다.

선택한 모델은 스쿠프 LS. 흰색에 수동변속기였습니다. 4기통 12밸브 1500cc 알파엔진이 들어가 있었고 최대 출력은 102마력입니다.

스쿠프의 개발명은 SLC(Sports Looking Car)로 스포츠카처럼 생긴 자동차라는 뜻입니다. 승용차에 비해 낮은 차체와 2도어, 유선형 디자인, 트렁크 위에 달린 스포일러 등으로 스포츠카의 기분을 냈기 때문에 1990년대 초반 젊은이들에게는 꿈이었습니다.

시속 100km까지 가속하는 데 걸리는 시간은 11초대, 최고 속도는 시속 180km 정도로 성능은 지극히 평범했습니다.

스쿠프 홍보물에는 저편평비 광폭타이어가 들어가 있다고 돼 있었는데 실제 타이어의 사이즈는 185/60/14였습니다. 지금 기준으로는 왜소한 크기지만 그때는 멋져 보이기만 했습니다.

주문을 한 뒤 차가 나오기까지 2주일은 왜 그렇게 길던지. 출고 전날 밤에는 잠도 제대로 오지 않았습니다.

속이 타들어 가는 기다림 끝에 드디어 차가 매장에 도착했다는 전화를 받고 한걸음에 달려가 ‘마이카’를 맞이한 순간 매달 33만 원씩 18개월간 할부금을 내야 한다는 부담감은 저 멀리 날아갔습니다.

‘부르릉∼∼.’ 스쿠프의 첫 시동과 함께 석 기자의 본격적인 카라이프는 시작됐습니다.

석동빈 기자 mobidic@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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