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3년 초. 벤처캐피털 자프코코리아의 정의철 사장은 며칠째 망설이고 있었다. 최근 만난 펜타마이크로의 정세진 사장 때문이었다.
평소에도 수많은 벤처기업인을 만나는 정의철 사장은 이젠 얼굴만 봐도 ‘진짜’와 ‘가짜’를 구분할 수 있다고 생각하곤 했다. 그런데 이날 만난 정세진 사장은 좀 달랐다.
‘광운대 전자통신학과 졸업, 현대전자(현 하이닉스반도체) 시스템IC 연구원.’ 정세진 사장의 경력이었다. 평소 만나는 벤처기업인들은 대부분 한국과학기술원(KAIST)이나 서울대 출신 엔지니어였다. 사회 경력도 대학 교수나 일류 대기업 연구원 출신이었다. 그런데 일류대 출신도 아니고, 망해가는 회사에서 나와 회사를 차린 경력이라니….
시간을 끌며 며칠을 보냈더니 정세진 사장이 직접 찾아왔다. 광고회사와 증권사에서 자신보다 나이가 많은 마케팅 임원과 재무담당 임원을 영입했다는 것이었다. 그는 “임원들에게 중요한 의사결정 권한을 나눠줬다”고 말했다. 자기가 못 미더우면 경력이 좋은 임원들을 믿어 달라고 한 것이다.
정의철 사장은 그제야 확신이 섰다. 적자만 보고 있는 작은 회사에 가능성만 보고 기꺼이 투자했다. 벤처기업이 성장하려면 기술과 경영진의 의지 못지않게 훌륭한 투자자의 역할이 중요하다. 하지만 대부분의 벤처기업인은 투자자를 ‘잔소리꾼’처럼 여기고 투자자와 상의하기를 꺼린다.
정세진 사장은 달랐다. 2002년 펜타마이크로에 투자한 김이섭 기은캐피탈 대덕밸리 지점장은 “벤처캐피털에 있으면서 매월 꾸준히 결산을 하고 이를 투자자에게 보고하는 벤처기업인은 정세진 사장이 유일했다”며 “때로는 그가 너무 자주 전화를 건다는 생각이 들 정도였다”고 말했다.
정세진 사장은 투자자에게서 자본과 경영 노하우, 정보를 얻었다. 그리고 지난해 12월 코스닥에 상장했다. 투자자들은 위험의 대가로 수익을 얻었다. 자프코와 기은캐피탈 등 펜타마이크로에 투자한 벤처캐피털은 대부분 원금의 5배가 넘는 높은 수익을 올렸다.
성남=김상훈 기자 sanhkim@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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