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FTA시대 한국농업, 위기가 기회다]<上>새 길을 뚫은 농민들

  • 입력 2007년 4월 27일 03시 07분


“수박으로 바꿔 위기 넘겼죠” 충북 음성군 맹동면에서 수박 재배를 하고 있는 최창환 씨는 과감한 작목 전환으로 시장 개방의 위기를 극복했다. 수박을 골고루 돌려 가며 익히고 농약 사용을 최소화하는 재배 기법도 이 마을 수박의 경쟁력이다. 음성=신원건 기자
“수박으로 바꿔 위기 넘겼죠” 충북 음성군 맹동면에서 수박 재배를 하고 있는 최창환 씨는 과감한 작목 전환으로 시장 개방의 위기를 극복했다. 수박을 골고루 돌려 가며 익히고 농약 사용을 최소화하는 재배 기법도 이 마을 수박의 경쟁력이다. 음성=신원건 기자
《한미 자유무역협정(FTA) 체결에 따른 농업 부문 생산 감소액이 연간 7000억∼8000억 원에 이를 것으로 전망되면서 농촌에 위기감이 감돌고 있다. 하지만 위기를 기회로 받아들여 적극적으로 대처한다면 피해를 줄이는 것은 물론 한미 FTA를 한국 농업 발전의 주춧돌로 삼을 수 있다는 지적도 나온다. 본보는 대지에서 희망을 이루어 가는 농민들의 모습과 한국 농업의 미래상(像)을 취재해 두 차례에 걸쳐 싣는다.》

“곧 있으면 칠레산 포도가 밀려온다고들 해서 걱정이 태산이었죠. 그때 수박으로 재빨리 바꾼 게 들어맞았습니다.”

충북 음성군 맹동면에서 수박을 재배하는 최창환(61) 씨는 4년 전만 해도 작은 포도 농가의 주인이었다.

2002년 한-칠레 FTA가 타결되면서 한 상자에 1만2000원씩 하던 포도값은 7000원까지 내려갔고 최 씨는 고민에 빠졌다.

‘이대로 주저앉아야 하나.’

그는 어떤 작물이 외국산과의 경쟁에서 살아남을 수 있는지를 연구한 끝에 수박을 생각해 냈다. 포도는 보관이 쉬워 긴 시간 동안 신선도를 유지하지만 수박은 오래 묵으면 국내 소비자들이 꺼린다는 사실에 착안한 것이었다.

비닐하우스 열다섯 동(棟)에서 한 해 1만여 통의 수박을 생산하는 최 씨는 연소득이 1억 원이나 된다. 최 씨의 사례는 위기를 기회로 여기면 ‘개방의 파고(波高)’를 충분히 이겨 낼 수 있다는 것을 증명하고 있다.

○명품 농산물로 선제 대응

최 씨가 사는 맹동면은 10여 년 전에는 고추와 쌀 농가가 대부분이었지만 이젠 전체 농민의 80%(230여 농가)가 고품질 수박을 재배하는 ‘명품 마을’로 탈바꿈했다.

이 마을 수박의 경쟁력은 ‘품질이 낮으면 시장에 팔지 않는다’는 자부심에서 나온다.

농가에서 재배한 수박들은 출하 직후 농협이 운영하는 ‘공동 선별장’에서 당도(糖度)를 측정한다. 여기서 맛이 일정 수준이 안 되면 이 지역의 수박 브랜드인 ‘다올찬 수박’이란 상표가 붙지 않는다.

홍보 전략도 뛰어나다. 농민들은 지난해 ‘빨리 먹기’ ‘씨 멀리 뱉기’ 등 다양한 프로그램을 마련해 ‘수박축제’를 열었다. 음성군은 인터넷으로 주문된 상품의 배송비를 일부 지원하고 있다.

좋은 제품만 선별하기 때문에 가격은 일반 수박보다 한 통에 2000∼3000원 비싸다. 당도를 조금 낮추더라도 가격을 싸게 하면 더 팔리지 않겠느냐는 질문에 농민들은 고개를 젓는다. “싸구려라는 이미지만 생기게 된다”는 이유다.

○‘FTA가 기다려지는’ 농민들

“한미 FTA만 체결되면 미국 시장에서 일본 배도 충분히 제칠 자신이 있어요. 나도 한-칠레 FTA 할 때는 데모도 하고 했지만 결국 다들 이겨냈잖아요.”

충남 아산시 음봉면에서 1만2000평 규모의 배 과수원을 운영하는 이민우(64) 씨의 목소리는 기대에 차 있었다.

미국 시장에 수출하고 있는 배가 일본 제품보다 가격 경쟁력이 높다는 판단 때문이다. 이 씨는 연간 10t의 배를 생산해 그중 2t가량을 미국에 수출하고 있다.

물론 어려움도 있다. 미국에서는 시고 부드러운 일본 배가 딱딱하고 단맛이 강한 한국산보다 인기가 좋다.

이 씨는 “미국에서 한국 배에 대한 홍보가 부족해 교포들만 주로 구입하는 것이 약점”이라며 “시식회 등 현지 홍보만 충분히 된다면 얼마든지 해볼 만하다”라고 말했다.

이처럼 농민들이라고 모두 한미 FTA를 ‘시련’으로 생각하는 것은 아니다. 이는 한미 FTA에서 가장 큰 피해를 볼 것으로 예상되는 축산업계도 마찬가지다.

전북 지역 축산농민 600여 명으로 구성된 전북한우협동조합은 총체보리(가축사료용 보리)를 먹인 한우를 수도권의 15개 전문 직판장에 내다팔고 있다.

중간 유통단계를 과감히 없애 가격은 일반 한우에 비해 30% 싼 데다 농촌진흥청과 함께 개발한 고급 사료를 사용해 품질도 업그레이드했다.

장성운 조합장은 “미국산 쇠고기가 들어와도 품질과 안전성으로 얼마든지 대응할 수 있다”며 자신있게 말했다. 이 조합은 5월 중으로 브랜드 홍보를 위한 ‘총체보리 한우 페스티벌’을 열 계획이다.

○‘농업 위기? 수출 기회!’

특유의 예쁜 색깔 때문에 ‘채소류의 보석’으로 불리는 파프리카. 국내에서 이름조차 낯선 이 채소는 한국산이 일본 시장을 70%나 장악하고 있다.

과거 네덜란드산이 지배하던 일본 시장을 한국 농민들은 신선도를 내세워 공략했다. 일본과의 가까운 거리를 활용한 것이었다.

이 같은 명품 농산물의 수출 성공 사례는 한미 FTA 타결로 더 늘어날 것으로 보인다.

최근 농수산물유통공사는 ‘대미(對美) 수출 확대 방안’ 보고서에서 파프리카를 비롯해 새송이버섯과 녹차, 단감, 고추장소스 등 한국산 농산물 20종을 미국 수출이 유망한 품목으로 꼽았다.

전남 보성군 미력면에서 15년째 10만 평 규모의 녹차 밭을 가꾸고 있는 임화춘(54) 씨는 최근 전라남도 주최로 열린 수출상담회에서 만난 미국 바이어들이 긍정적 반응을 보여 한창 고무돼 있다.

임 씨는 녹차를 직접 키울 뿐 아니라 1000평 규모로 ㈜보성녹차테크라는 가공공장을 세워 물에 타 먹을 수 있는 녹차 농축액도 만들고 있다.

2005년부터 미국 수출을 시작한 그는 지난해 1억 원 정도의 녹차 농축액 앰플을 수출했다. 한미 FTA 타결로 시장이 개방되면 다른 녹차 제품의 수출도 늘어날 것으로 보고 있다.

임 씨는 현재 5000만 원을 들여 미국 유기농협회를 통해 제품 인증을 받으려 하고 있다. 그는 “유기농을 선호하는 미국 시장에서 팔리기 위해서는 비록 돈이 들더라도 이런 노력이 꼭 필요하다”면서 “이런 방면으로 정부의 적극적인 지원이 필요하다”고 말했다.

유재동 기자 jarrett@donga.com

박중현 기자 sanjuck@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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