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개펄을 ‘산업의 쌀’ 생산지로
당진은 한보철강 부도와 함께 깊은 불황의 늪에 빠졌다. 수조 원이 투자된 한보철강 건설로 ‘삽자루만 들고 있어도 일당 10만 원을 벌었다’던 당진 경제는 1997년 초 한보의 부도와 함께 한순간에 무너져 내렸다.
공장에 다시 쇳물이 흐르기를 기다린 지 7년. 2004년 10월 현대제철이 한보철강을 인수하면서 당진 경제도 재기의 길에 들어섰다.
건설 크레인이 다시 세워졌고 굴착기는 묵은 흙을 실어 날랐다.
당진의 부활은 지난해 10월부터 본격화됐다. 현대제철이 총투자비 5조2400억 원을 들여 일관(一貫)제철소를 짓기 시작한 것.
그 후 6개월이 지난 현재 당진은 ‘외환위기의 무덤’에서 ‘펄펄 끓는 철의 도시’로 빠르게 변하고 있다.
현대제철은 기존 90만 평 규모의 전기로 공장 옆에 130여만 평의 땅을 추가로 조성해 일관제철소를 짓고 있다.
올해 말 끝낼 부지 조성공사는 현재 3분의 1가량 진행됐다.
해안선도 변하고 있다. 원료와 제품을 나를 바닷가 항만에서는 10만 t 및 20만 t급 선석이 내년 12월 완공을 앞두고 공사가 한창이었다.
신승주 현대제철 당진공장 홍보팀장은 “당진은 서해안에서 수심이 가장 깊고 물길이 자연적으로 나 있는 천혜의 제철소 입지”라며 “제철소가 완공되면 연 800만 t의 조강 생산이 가능해 2012년에는 매출액이 지난해보다 4조 원가량 늘어난 9조4000억 원에 이를 것”이라고 말했다.
현대제철이 일관제철소를 만든다고 했을 때 일각에서는 기술력과 자금 확보, 환경 문제를 들어 반대했다.
기술력에 대해 박승하 현대제철 사장은 “일관제철소 선두 기업인 독일 티센크루프와 올 하반기 전반적 기술 협력계약 체결을 추진 중”이라고 밝혔다.
이와 함께 현대제철은 올해 초 일관제철소 인근에 철강연구소를 건립했다. 현재 100여 명인 연구인력을 4배로 늘려 고급 강판 제조기술을 확보한다는 계획이다. 제철소 설계와 운영 부문에 장인(匠人)으로 손꼽히는 페터 하인리히 전 SMS-데마크 연구개발본부장을 기술고문으로 영입했다.
현대제철은 자금 확보 부문에도 자신감을 나타냈다. 총투자비 가운데 절반은 영업이익 등 내부자금으로 조달하고 나머진 외부에서 투자를 받는다는 계획이다. 박 사장은 “최근 수출 호조로 올 1분기(1∼3월)에 1554억 원의 영업이익을 낸 데다 저금리의 공적 수출신용금융을 통해 15억 달러가량을 충당할 수 있어 자금 조달에 큰 문제가 없다”고 설명했다.
넘어야 할 또 다른 산은 환경 문제다. 환경단체들의 거센 반발로 착공이 늦어지는 수난을 겪었기 때문이다.
현대제철이 돌파구로 삼은 방식은 세계 최초의 실내 원료 야적장이다.
박 사장은 “이 시설을 이용하면 철광석과 유연탄 등이 바람에 날려 주변 토양이나 강물을 오염시키는 것을 원천적으로 막을 수 있다”고 말했다.
○ 살아나는 지역 경제
일관제철소 건설의 첫 삽을 뜬 지 6개월. 인근 안섬 포구에도 봄이 왔다. 문을 닫았던 횟집들이 간판을 새로 걸고 공장 근로자들을 맞았다. 매상은 착공 전보다 두 배가량 뛰었다.
이곳에서 횟집을 운영하고 있는 최천순(39) 씨는 “식당과 옷가게 등이 하루가 다르게 늘고 있다. 10년 전 호황 때의 80%까지는 회복된 모습”이라고 말했다.
실제로 당진군 내 음식료업소는 외환위기로 경기가 바닥이었던 1998년 1167개에서 지난해 2378개로 2배가량 늘었다.
떠났던 사람들도 돌아오고 있다. 1999년부터 매년 수천 명씩 감소하던 인구가 2004년부터 늘기 시작해 지난해에는 5151명이 늘었다. 전체 인구도 12만7000여 명으로 10년 전 수준을 회복했다.
당진군 원당리에 사는 주부 유영분(38) 씨는 “작년 초까지만 해도 바이올린을 가르칠 선생님이 마땅치 않아 초등학생 아이를 천안이나 서울까지 보내야 했지만 최근 당진에 젊은 사람이 늘면서 선생님 구하기가 쉬워졌다”고 말했다.
인구와 입주 업체가 늘면서 지방세도 크게 늘었다. 1997∼1999년 400억 원대를 맴돌던 세수는 지난해 3배가량(1220억 원) 뛰었다.
당진군청 관계자는 “전국 중소도시 중 인구와 세수가 증가하는 곳은 당진을 비롯해 경기 파주시와 충남 아산시 등 소수의 기업도시밖에 없다”고 말했다.
당진=이종식 기자 bell@donga.com
▼일관(一貫)제철소
고로(高爐·용광로)에서 철광석과 유연탄을 녹이는 제선 작업을 통해 나온 쇳물을 기본 강철제로 만든 뒤 원하는 크기로 압축, 성형하는 압연 과정을 한꺼번에 할 수 있는 철강공장. 고급 철강 제품을 생산하기 용이한 제철소.
■독일기술 전도사 하인리히 고문 “입지 좋고 노동력 최고 중국의 추격 따돌릴 것
현대제철이 올해 2월 영입한 독일 출신의 페터 하인리히(65·사진) 기술 고문은 한국 철강의 미래가 밝다고 말했다.
공장이 해안에 위치해 물류비를 절감할 수 있고 근로자 생산성이 유럽에 비해 높아 원료인 철광석을 수입해야 하는 단점을 충분히 극복하고 있다고 평가했다.
세계적인 철강 설비업체 독일 SMS-데마크의 연구개발본부장을 지낸 그는 40년간 전기로와 고로 등 철강 전 분야의 설비를 제작, 운영해 온 철강 업계의 대표적인 장인이다. 일관제철소 경험이 없는 현대제철이 고로 건설과 운영을 연착륙시킬 수 있는 적임자로 꼽은 사람이다.
중국과 대만에서 신규 제철소 설비 제작 경험이 많은 하인리히 고문은 중국의 제철소 수준이 한국 턱밑까지 쫓아왔다고 경고했다.
하지만 그는 “한국인의 성실성과 기술력, 팀워크는 유럽과 일본에 뒤지지 않는다”며 “이를 바탕으로 최신식 대형 일관제철소를 건립하면 규모의 경제에서 중국의 추격을 따돌릴 수 있을 것”이라고 말했다.
특히 현대제철이 들어선 충남 당진군은 물류 환경뿐만 아니라 인근 경기 화성과 평택에 자동차 회사가 있어 안정적 수요처가 확보돼 입지 여건이 훌륭하다고 평가했다.
그는 고로 사업은 공정별로 화학 반응이 제각기 일어나 변수가 많은 까다로운 공정이라고 설명했다.
“고로 초기 단계에 예기치 못한 사태가 많이 벌어지기 때문에 운용 인력들에게 이러한 부분에 잘 대처하도록 체계적으로 교육할 계획입니다.”
현대제철은 하인리히 고문급의 전문가를 한 명 더 영입할 계획이며, 독일 티센크루프 등에 근로자들을 보내 선진 기술을 조기에 안착시킬 계획이다.
하인리히 고문은 아버지에 이어 2대째 아시아에 철강 기술을 전하고 있다.
대학에서 철야금학을 전공한 뒤 데마크(현 SMS-데마크)에서 근무한 그의 아버지는 1939년부터 1941년까지 일본에 파견돼 제강 관련 기술을 전수했다.
하인리히 고문은 “내 인생의 마지막 기회라는 생각으로 모든 노하우와 열정을 당진 일관제철소에 쏟아 붓겠다”고 포부를 밝혔다.
당진=이종식 기자 bell@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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