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방공기업 CEO 3명중 2명이 퇴직공무원

  • 입력 2007년 5월 5일 03시 01분


■ 본보 103곳 경력 분석

1999년 설립된 지방공사인 대전엑스포과학공원은 역대 사장 중 누구도 3년의 임기를 채우지 못했다. 2003년 대전시는 대기업 이사를 지낸 민간 전문경영인 출신의 이모 사장을 영입했다.

이 사장은 2005년 1월 미국 시애틀의 퍼시픽 사이언스센터 등 3개 도시의 과학체험시설을 벤치마킹하기 위해 해외출장 계획을 세웠지만 출국 하루 전 대전시가 출장에 제동을 걸었다. 공원의 사소한 현안 하나를 해결해 놓고 출장 가라는 것이었다.

결국 이 사장은 5개월 후 임기 만료 8개월을 앞두고 자진 사퇴했다. 시의 간섭 때문에 일을 할 수가 없다고 판단한 것. 후임 사장에는 대전시 고위 공무원 출신이 선임됐다.

지방자치단체 산하에 있는 지방공기업의 경쟁력을 강화하기 위해 공모를 통해 민간 전문가를 영입하겠다는 정부 방침에도 불구하고 지방공기업은 퇴직 공무원들이 장악하고 있는 것으로 나타났다.

4일 본보가 103개 지방공사 및 공단의 최고경영자(CEO)의 경력을 처음으로 분석한 결과 공무원 출신이 64.1%를 차지했다. 민선 지자체장의 참모나 지방의회 의원 등 지역 정치인 출신이 7.8%, 한국토지공사나 KOTRA 등 국가공기업 출신이 5.8%였고, 전문경영인 등 순수 민간 출신은 19.4%에 불과했다.

대구의 경우 4개 공기업의 사장 및 전무이사 8명 중 7명이 대구시 전직 간부 공무원 출신이다. 대구시도시개발공사 사장이 유일한 민간인 출신.

이 자리도 2005년 당시 대구시 간부 공무원 출신인 이모 사장이 임직원들의 아파트 특혜 분양에 대한 도의적인 책임을 지고 중도 사임한 뒤 공모를 통해 민간인 출신이 사장으로 뽑혔다.

지자체 출자 및 출연 기관에도 공무원 출신이 상당수를 차지하는 것으로 나타났다. 거창전문대와 남해전문대 학장 등 교육직도 경남도 고위 공무원 출신이 맡고 있다.

민선 단체장이 선거 후 논공행상으로 선거캠프 출신이나 참모들을 공기업 사장으로 내려 보내는 관행이 여전하다는 사실도 확인됐다. 지난해 5·31지방선거 이후 정치권 출신 공기업 CEO가 2.2%에서 13%로 늘어났다.

○ CEO 선정 방식부터 문제

행정자치부는 지난달 전남의 ‘정남진장흥유통공사’에 대해 사상 처음으로 청산 명령을 내리고 회계처리와 부실감사에 대한 책임을 물어 담당 공무원과 감사인(공인회계사)의 징계를 요구했다.

이 공사는 1992년 전국 생산량의 19%를 차지하는 표고버섯 재배의 전문화와 수출 촉진을 위해 설립됐다. 처음에는 군수(당시는 관선)가 사장을 겸직했고 그 후 대부분 퇴직공무원들이 사장으로 재직하면서 부실채권과 재고누적으로 자본금까지 잠식돼 민간 주주들의 거센 반발이 있었다. 경영 부실을 감추기 위해 회계 처리를 허위로 하는 등 도덕적 해이까지 겹치자 뒤늦게 2003년 공모로 전문경영인 출신 사장을 영입했지만 결국 ‘사망 선고’를 받았다.

이 같은 지방공기업 부실경영은 CEO의 선임 문제에서 비롯됐다는 지적이 많다.

제도적으로 지방공기업 사장은 추천위원회를 구성해 공모하도록 하고 있다. 하지만 추천위 구성이 전직 고위 공무원에게 유리하게 돼 있어 공무원이나 단체장의 입김대로 사장이 선임되는 사례가 많다.

공기업 임원은 정년퇴임이 임박한 고위 공무원이 퇴직 후 가는 자리로 여겨지기도 한다. 공기업 사장 중 고위 공직자의 생활을 충분히 누린 뒤 정년퇴직 1∼3년을 남기고 명예퇴직을 신청해 명퇴 위로금을 받고 연봉과 공무원연금까지 함께 받는 경우가 적지 않다.

○ 늘어나는 공기업, 기초단체까지도 공기업 늘리기

지방공기업은 1980년 이후 매년 늘고 있고 최근에는 기초자치단체들도 공기업을 만드는 데 뛰어들고 있다. 경북 경산시는 다음 달 27일 지역 내 택지개발사업 등을 담당할 ‘경산도시개발공사’를 설립하기로 하고 연말 발족을 목표로 적극 추진 중이다.

김찬진 경산시 행정지원국장은 “대구지하철 경산 연장 사업이 본격적으로 시행되면 지역의 땅 70% 정도가 계속 개발될 것이어서 도시개발공사를 설립해도 흑자 운영에는 별문제가 없을 것으로 본다”고 말했다.

하지만 경북개발공사 관계자는 “업무 중복을 피하기 어렵고 기초자치단체가 별도의 도시개발공사를 설립하는 것은 비효율적”이라고 반대하고 있다.

경기도에서도 김포시는 올해 택지개발과 도시철도 등의 사업을 추진할 자체 도시개발공사를 설립했다. 경기 군포시와 광명시도 시설관리공단 설립을 추진하면서 시의회와 시민단체의 반대로 진통을 겪고 있다. 이미 만성 적자인 공공시설 관리를 위해 또 회사를 만드는 것은 세금 낭비라는 것이다.

○ 연봉은 평균 7174만 원

지방 공기업 사장들의 연봉은 본보 조사에서 확인된 70명의 평균이 7174만 원으로 예상보다 많지 않았다. 연봉은 5000만 원 이상∼8000만 원 미만이 38.8%로 가장 많았다. 8000만 원 이상은 21.4%였고 5000만 원 미만을 받는 사장도 5.8%나 됐다. 심지어 3000만 원 미만도 있었다. 이 연봉은 성과급이 제외된 수치다.

본보의 이번 조사에서 상당수 공기업은 회사와 당사자만의 비밀이라는 이유로 CEO의 연봉 공개를 거부했다.

○ 지방공기업 설립보다는 민간에 넘겨야

지자체가 새 사업을 시작할 때마다 공기업을 만들 것이 아니라 민간이 할 수 있는 부분은 과감하게 민간에 맡겨야 한다는 것이 전문가들의 대체적인 견해다.

서울여대 노승용(행정학과) 교수는 미국 지방공기업에 대한 논문에서 “공기업은 사기업에 비해 소극적인 운영 전략을 펼치며 정치적인 동기를 가질 우려가 있고 특별한 경쟁이 없어 책임감이 약하다는 단점이 있어 그 해결책 중 하나가 민영화”라고 지적했다.

지방공기업경영평가위원인 육동일(충남대 교수) 대전발전연구원장은 “공기업에서 생산된 재화와 용역에 대한 불만족은 여전하고 자칫 잘못하면 공공성과 수익성을 모두 놓칠 수 있기 때문에 민영화가 필수적”이라고 지적했다.

김기현 기자 kimkihy@donga.com

대전=이기진 기자 doyocedonga.com

권혜진 기자 hjkwon@donga.com

■ 민간출신이 이룬 성공사례

강원개발공사는 2003년 감사원 감사까지 받고 청산 직전까지 갔다. 경영평가 등급도 늘 최하인 마급이었고 만성적인 노사분규까지 겹쳐 문을 닫기 직전이었다. 결국 미국 퍼듀대 경제학 박사 출신으로 강원발전연구원 정책지원연구본부장을 맡고 있던 박세훈 씨가 사장으로 영입됐다.

박 사장은 본부별 책임경영제를 도입하고 노사평화 선언을 이끌어내 조직을 안정시키고 평창 동계올림픽 유치와 연계해서 리조트단지인 대관령 알펜시아 프로젝트를 성공적으로 진행해 2003년 50억 원의 영업수익을 3년 만에 270억 원으로 끌어올렸다. 지난해 경영평가에서 나급을 받았다. 올해 행자부가 주관하는 9회 지방공기업경영혁신 대상을 받았다.

부산도시공사 역시 한국토지공사 출신의 주택 전문가인 이상원 사장이 2005년 취임한 후 탁월한 경영능력으로 지난해 1702억 원의 매출을 올려 전년 대비 23% 성장을 기록해 주목을 받았다.

이 사장은 영세민 주거안정을 위해 도시공사가 지은 영구임대주택 가구에 대해 입주자 한마음공동체 운동을 벌이고 고객의 소리 시스템 구축과 주부 모니터링제 실시 등 민간 기업처럼 고객만족경영을 내세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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