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0대 초반인 기자는 스포츠유틸리티차량(SUV)이 좋다.
탄탄한 몸매에 우렁찬 엔진음, 어디서나 거침없는 주행 성능. 모두 젊고 경쾌하다.
핸들링과 가속페달의 반응속도가 굼뜨고 급회전 시 뒤뚱거려도 참을 만하다. 차체가 높아 시야가 넓고 위풍당당한 덩치로 불만이 충분히 상쇄된다.
7년째 국산 SUV를 몰고 있는 애찬론자가 드디어 SUV 최강자를 만났다. 미국의 지프와 더불어 정통 SUV의 양대산맥인 영국의 랜드로버다.
랜드로버 혈통의 막내인 ‘프리랜더2’는 9년 만에 겉과 속을 싹 바꿨다.
우선 인테리어의 변화가 놀랍다. 일본차가 연상될 정도로 각종 버튼이 깔끔하게 정돈돼 있다. 터치스크린 방식의 내비게이션이나 천장의 대부분을 유리로 채운 파노라마 선루프는 랜드로버의 진화를 새삼 느끼게 했다.
확 바뀐 겉모습도 프리랜더의 새로운 지향점을 엿볼 수 있다. 둔해 보이는 앞모습을 지우기 위해 큼지막한 헤드램프와 라디에이터 그릴을 잘 조화시켰다. 시원시원한 얼굴에 비해 엉덩이(트렁크) 라인이 각지고 투박한 점은 아쉬운 대목.
가장 큰 변화는 트렁크 뒷문에 달려 있던 스페어타이어를 트렁크 안으로 옮긴 부분이다. 오프로드 터프남의 이미지를 벗고 도시 세련남으로 거듭나려는 노력이다.
주행 성능에서도 변화를 실감할 수 있었다. 시동부터 버튼 방식으로 바꿔 시대 흐름을 좇았다. 그 대신 키를 돌리며 느끼는 남성적인 엔진음의 쾌감은 포기할 수밖에 없다.
아스팔트 위에서 프리랜더는 예전의 랜드로버가 아니었다. 거친 맛은 사라지고 영락없이 세단의 느낌이다. 가속과 핸들링 반응속도가 매우 빨랐고 시속 180∼190km까지 주춤거림 없이 질주했다. 6기통 3200cc의 엔진, 233마력의 넉넉한 힘 덕분이다. 코너링에서도 출렁거림은 적었다.
주무대인 오프로드에서는 어떨까.
기자의 집은 구불구불한 산길을 타고 오르는 산 중턱에 위치해 있어 SUV의 성능을 만끽할 수 있는 코스. 랜드로버의 거친 맛을 즐기려 다소 과격하게 차를 산길 위로 몰았다. 하지만 노면 상황을 알고 있다는 듯이 부드럽게 타고 올랐다. 싱겁단 느낌마저 들었다.
이유는 전자동 지형 반응 시스템에 있었다. 눈밭이나 진흙탕, 자갈길 등 도로 상황에 맞춰 엔진회전과 변속기의 기어물림, 서스펜션의 상태 등을 최적화하는 기능이다.
다만 연료비 부담은 적지 않다. 연료소비효율이 L당 7km 안팎에 불과했다.
가격도 5850만 원으로 엔트리카(처음 사는 차)치곤 만만치 않다. 원조 SUV를 향유하고픈 젊은 마니아들에겐 다소 부담스러울 듯싶다.
이종식 기자 bell@donga.com
댓글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