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한미 FTA 재협상 논란’ 미국 내 기류는
미 행정부와 의회는 신통상정책을 어떻게든 반영하지 않은 채 한미 FTA 비준 절차를 밟는 건 곤란하다는 방침이 확고하다. 신통상정책 서문은 “현재 걸려 있는(pending) FTA들은 미국 무역정책을 근본적으로 선회시키는 이 정책에 따라 수정될 것”이라고 명시했다.
연일 재협상 불가론을 강조해 온 한국 정부의 한 고위 당국자는 16일 “FTA를 깨뜨릴 수도 있는 심각한 사안”이라고 말했다.
방미 중인 열린우리당 동북아평화위 대표단도 이날 찰스 랭걸 미 하원 세출위원장, 미국무역대표부(USTR) 관계자 등에게 “미국이 노동 및 환경에 관한 새 조항을 한미 FTA에 포함시키라고 요구할 경우 한국은 이를 재협상 요구로 간주할 것이며 이를 수용하기는 어렵다”고 밝혔다.
신통상정책을 둘러싼 미국 내 기류와 쟁점들을 일문일답식으로 정리해 본다.
Q. 미국은 재협상을 요구하는가.
A. 아직 미 행정부가 한국에 공식 요구를 하진 않았다. 미 행정부는 의회와 한국 정부 사이에서 매우 곤혹스러워하는 형국이다. 그러나 신통상정책은 의회와 행정부가 모든 FTA에 반영할 것을 전제로 합의한 것인 만큼 행정부로선 어떤 식으로든 한국 측에 반영을 요구할 수밖에 없을 것이다.
Q. 이미 합의한 FTA를 재협상한 전례가 있나.
A. 미국은 이를 ‘재협상’으로 보지 않는다. 이미 합의한 내용을 바꾸는 게 아니라 추가로 넣자는 것이므로 ‘추가 협상’ ‘보완 협상’이라고 보는 것이 미국 측 시각이다. 미국이 지금까지 맺은 FTA엔 여러 차례 부속 협상이 있었다. 대표적인 사례가 북미자유무역협정(NAFTA)이다. 1992년 조지 부시 행정부가 타결한 NAFTA는 빌 클린턴 행정부가 추가 협상을 통해 만든 노동·환경에 관한 2개 부속 협정과 함께 1993년에야 통과됐다. 당시 캐나다도 추가 협상에 반발했지만 결국 동의했다.
Q. 신통상정책을 FTA에 반영하면 한국에 불리한가.
A. 11일 미 의회와 행정부가 합의한 신통상정책은 ‘정책 선언’ 형태다. 페루와 파나마와의 FTA에 대해선 구체적 변경 내용이 발표됐지만 한국에 대해선 없다. 핵심은 노동·환경 기준인데 이 분야에서 상대적으로 높은 기준을 갖고 있는 한국에 미칠 영향이 크지 않다는 게 일반적 관측이다. 그러나 실질적으로 무역관계에 영향을 미칠 수 있는 대목들이 있다. 예를 들어 현행 FTA 합의문은 노동·환경 분야에서 위반 사항이 발생할 경우 벌과금을 자국의 노동·환경 여건 개선에 사용할 수 있도록 ‘특별 분쟁해결절차’를 적용하도록 했다. 반면 신통상정책은 FTA의 다른 분야와 같은 ‘일반 분쟁해결절차’를 적용하도록 하고 있다. 이렇게 되면 벌과금을 상대국에 납부해야 하며, 이는 관세 특혜를 없애는 등의 보복 조치로 이어질 수도 있다. 예를 들어 어떤 물품이 아동노동 금지 조항을 어긴 채 만들어진 뒤 수출됐다면 그 품목의 관세 혜택을 없애고 벌과금을 물릴 수도 있는 것이다.
Q. 미국은 자신들도 비준하지 않은 국제노동기구(ILO) 협약을 왜 상대국에 강요하는가.
A. 오해다. 신통상정책은 5대 노동기준의 ILO 협약 비준을 요구하는 게 아니라 1998년 ILO 선언서 내용을 국내법에 채택하라는 것이다. ILO 협약은 한국이나 미국 모두 비준 안 한 조항이 많지만 실제론 대부분 시행되고 있다.
Q. 미 행정부가 ‘재협상’을 요구한 것도 아니고 내용이 한국에만 일방적으로 불리한 것도 아니라면 정부가 “재협상은 없다”고 강하게 나오는 이유는 뭔가.
A. 한국 정부는 이를 ‘협상의 신의·성실’의 문제로 보는 것 같다. 또 국내 여론을 감안해야 하며 강자에 맞서는 기(氣)싸움 성격이라는 분석도 가능하다. 만약 나중에 불가피하게 반영한다 해도 반대급부를 얻어내려면 초기에 강하게 나가야 한다고 판단했을 수도 있다.
Q. 3월 협상 때는 이를 예상하기 어려웠나.
A. 협상 종료 1주일여를 앞두고 신통상정책 논의 소식이 들려왔다. 그렇지만 구체적 내용은 USTR 대표단도 잘 모를 정도의 초기 상태였다. 막바지에 미 대표단이 “나중에 상의하겠다”고 말했으나 한국 측은 일단 합의했으니 그걸로 끝이라고 여겼던 것 같다.
워싱턴=이기홍 특파원 sechepa@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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