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책은행인 한국산업은행 K(53) 지점장이 지인들에게서 모은 수십억 원의 투자 금액을 날린 뒤 잠적한 사실이 드러나면서 국책은행의 내부통제장치에 근본적인 쇄신이 필요하다는 지적이 나오고 있다.
본보 21일자 A12면 참조
▶産銀간부 거액 투자금 날린 뒤 잠적
산업은행은 본보 보도 후 내부통제 담당 직원을 현장에 배치하는 등 사건수습책 마련에 나섰다. 검찰은 K 지점장에 대한 출국 금지 사실을 공표하고 수사 계획을 일부 발표하는 등 신속하게 움직였다.
현재 산은, 한국수출입은행, 기업은행 등 3대 국책은행은 윤리강령 형식의 내부통제 관련 규정을 갖고 있다.
대체로 직무와 관련해 취득한 정보를 이용해 주식이나 부동산 투자를 하지 못하도록 한 것이다.
문제는 이런 규정을 실질적으로 점검하기 위한 장치가 거의 없다는 데 있다. 본인 명의로 거래할 경우 정기 감사 때 투자 내용을 알 수 있지만 다른 사람 이름으로 투자할 때는 감사를 해도 알 수 없다.
이런 차명거래가 아니라도 친인척이나 친구에게 구두로 내부 정보를 알려주고 투자하도록 한 경우도 적발할 수 없다.
임직원이 내부 정보를 이용한 사고가 발생했을 때 이를 처리하는 방식에도 문제가 있다.
산은은 2005년 말부터 자금 모집을 시작한 K 지점장이 지난달 잠적한 뒤 그가 근무했던 지방 지점과 지난해 신탁부장 재직 당시 업무 내용을 확인하는 감사 절차를 거쳤다.
이번 감사는 △사고 자체가 직무와 연관성이 있는지 △은행에 피해를 줬는지에 초점이 맞춰져 있었다. 산은 측은 “K 지점장이 주식 투자의 방향에 영향을 주는 결정을 한 적이 없고 은행 자금을 유용하지 않았다”며 ‘개인적인 사건’으로 결론지었다.
하지만 부동산금융 관련 사업을 주로 관리했던 K 지점장이 △부동산 정보를 이용해 투자 활동을 했는지 △직무가 아닌 은행 내부 정보를 이용했는지에 대해선 확인하지 못했다.
산은에선 2004년에도 이번 ‘K 지점장 잠적 사건’과 비슷한 사건이 발생했었다.
당시 산은 자본시장실에서 근무하던 직원이 수년 간 동료와 친지 110명에게서 58억 원을 받아 주식 선물 옵션 등에 투자하다가 대부분 날린 뒤 잠적해 파문이 일었다.
이후 산은은 주식 투자 사건에 연루된 간부 8명을 보직 해임하고 근무시간 중 주식 사이트의 접근을 차단하는 등 내부통제 체제를 정비했으나 유사 사건이 재발함에 따라 당혹감을 감추지 못하고 있다.
한편 산은은 21일 “물의를 일으킨 점에 대해 유감의 뜻을 표한다”며 “일벌백계 차원에서 K 지점장을 파면하는 한편 전국 각 영업점에 40명의 내부통제역을 배치하기로 했다”고 밝혔다.
산은은 내부통제 전담 직원들이 영업점에서 근무하는 직원들의 행동을 수시로 확인하게 됨에 따라 제도만으로는 막기 힘들었던 내부자 거래를 적발해 내는 효과가 있을 것으로 기대하고 있다.
또 서울 동부지검은 이날 “K 지점장 사건의 경우 피해액이 상당히 커 출국 금지 조치를 바로 했다”고 밝혔다.
검찰은 현재 K 지점장의 소재 파악에 어려움을 겪고 있어 일단 고소인 조사를 먼저 시작했다.
한명관 동부지검 차장 검사는 “K 지점장을 못 잡을 때는 체포영장을 청구할 계획”이라며 “혐의가 사기가 될지, 횡령이 될지는 아직 단정할 수 없다”고 말했다.
금융감독원은 “당장은 아니지만 산은 자체 감사나 검찰 수사 결과에 따라 필요하다면 특별검사를 검토할 수도 있다”고 밝혔다.
홍수용 기자 legman@donga.com
정혜진 기자 hyejin@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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