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고/고학수]‘투자자-국가간 분쟁해결’ 정면으로 돌파해야

  • 입력 2007년 6월 5일 03시 03분


한미 자유무역협정(FTA) 협정문 공개를 계기로 새로운 논쟁이 일고 있다. 특히 투자분쟁 해결 절차와 관련해 논란이 커지고 있다. ISD라 불리는 투자자-국가 간 분쟁해결 절차가 용인될 경우 미국의 투기자본이 한국 정부의 부동산정책이나 조세 부과 등에 반발해 한국 정부를 상대로 중재를 제기함으로써 정책 추진이 어려워질 것이라는 주장이다.

이는 한국이 세계 80여 개국과 ISD 내용을 포함하는 FTA 혹은 양자 간 투자협정을 체결한 상황에서 현실을 무시한 막연한 비판일 뿐이다. ISD 제도가 세계 여러 나라에서 일반화된 현실을 고려할 때 자세한 상황 분석에 기초해서 치밀한 법률논리를 구축하고 철저하게 대비하는 자세가 필요하다.

론스타를 예로 들어 보자. 일부에서는 미국펀드인 론스타가 스타타워나 외환은행의 매각차익에 대해 상당한 액수의 세금이 부과될 경우 ISD 절차에 따라 중재신청을 함으로써 국내 조세정책의 무효화를 시도할 수 있다고 말한다.

좀 더 구체적으로 보자. 우선 론스타가 미국 국적이라고 할 수 있는가. 답은 그리 간단하지 않다. 스타타워나 외환은행의 지분에 대한 서류상 소유자로서의 론스타는 각각 스타홀딩스 및 LSF-KEB홀딩스라고 불리는 벨기에 국적의 법인으로 알려져 있다.

그렇다면 한국과 벨기에 사이에 체결된 양자 간 투자협정의 적용 가능성을 분석할 필요가 있다. 이 협정은 ISD의 내용을 포함한다. 따라서 론스타가 국내의 조세 부과에 불복할 경우 한국 정부를 상대로 국제중재를 신청할 수 있다.

실제로 중재를 제기할 경우 중재관할권이 인정될 것인지에 대한 판단은 론스타를 벨기에 법인으로 볼지, 또 한국-벨기에 투자협정상 인정되는 투자의 범위에 론스타의 투자가 포함될지에 대한 분석 이후에나 가능하다.

조세 문제와 관련해서 론스타가 벨기에 법인이 아니라는 판단이 나와도 미국 법인이라고 단정지을 수는 없다. 론스타가 다른 나라에 법인을 설립하고 이를 벨기에 법인에 투자하기 위한 매개체로 이용했을 가능성이 있어서다.

이처럼 국적이나 재판관할권을 따지는 문제는 그리 단순하지 않고 실제로 많은 연구가 필요하다.

우리가 특히 생각해 봐야 하는 것은 외국인투자가가 ISD 제도를 이용해 한국 정부를 상대로 중재신청을 할 수 있는 가능성은 한미 FTA 외에도 다양한 경로를 통해 이미 열려 있다는 점이다.

외국인투자가는 투자를 할 때 세금 절감, 회계상의 편의, 행정의 편의 등 여러 이유로 제3국에 법인을 설립하고 그 법인을 통해 투자를 실행하는 경우가 많다. 이 경우 제3국은 한국이 이미 투자협정을 체결한 나라일 가능성이 높다.

또 한국이 체결한 투자협정에는 거의 모두 ISD의 내용이 포함돼 있어 한국은 제3국 법인의 명의로 투자중재 신청 대상이 될 수 있는 가능성을 열어둔 상황이다. 투자협정을 통해 반대로 한국의 투자자가 외국 정부를 상대로 제소할 수 있는 가능성 또한 열려 있다.

투자자-국가 간 분쟁해결 절차는 우리에게 주어진 현실이다. 현실을 무시하고 제도 자체를 부정하는 태도는 손바닥으로 하늘을 가리는 것과 같다. 이제는 실제 사건이 발생할 경우 어떻게 대응할지, 한국 형편에서 어떻게 활용할지, 그리고 국제사회에서 한국의 형편을 반영한 개선안을 어떤 방식으로 제시할지에 대해서 실질적이고 구체적인 답을 찾는 데 노력을 기울일 때다.

고학수 연세대 교수·법과대

  • 좋아요
    0
  • 슬퍼요
    0
  • 화나요
    0

댓글 0

지금 뜨는 뉴스

  • 좋아요
    0
  • 슬퍼요
    0
  • 화나요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