월 임차료가 20만 엔인 20평짜리 아파트에 살다가 자신이 근무하는 건설회사의 사원아파트로 옮긴 것. 사원아파트는 낡은 데다 15평 남짓에 불과하다. 그러나 첫아이를 출산한 후 아내가 직장을 그만둔 탓에 집을 줄일 수밖에 없었다.
그의 연봉은 450만 엔. 간호사인 아내의 월급도 비슷했다. 소득이 절반 가까이 줄면서 가미야 씨는 집뿐 아니라 취미 생활이나 외식 횟수도 크게 줄였다.
“빚을 내는 건 최후 수단이죠. 나한테 빚이 있다는 걸 다른 사람이 알면 부끄럽기도 하고요. 빚은 경제활동의 올가미예요.”
가미야 씨에게도 내 집 마련의 꿈이 있다. 최근 일본 경기가 회복세를 나타내면서 집값도 소폭 오르고 있어 내 집 마련을 빨리 할수록 좋을 것 같다. 그러나 그는 소득을 감안해 집을 살 작정이다.
가미야 씨는 “거품 경제 시절에는 너도나도 연봉의 6배까지 빚을 내 집을 사기도 했다”며 “그때 따끔한 경험을 했기 때문에 보통의 일본 사람들은 집을 살 때도 연봉의 3배 이내에서 대출을 받는다”고 말했다.
서울 강남구 대치동에 사는 김모(42) 씨. 그는 2년 전 은행에서 4억 원의 주택담보대출을 받아 아파트를 샀다. 은행 대출만으로도 모자라 친척에게서 5000만 원을 빌렸다. 매달 내는 대출 이자는 200만 원을 웃돈다. 월급은 500만 원 선. 빚이 연봉의 약 7배다.
집값이 2년 새 3억 원 남짓 올랐지만 생활은 늘 쪼들린다. 이자를 내고 나면 월급으로 초등학생인 두 자녀의 교육비도 충당하기 힘들다.
자동차, 부부와 두 자녀가 모두 갖고 있는 4개의 휴대전화, 가끔의 외식, 휴가 때 여행…. 어느 것 하나 줄이기가 만만치 않다. 집을 팔자니 양도소득세가 발목을 잡는다.
김 씨는 “집값이 올랐으니 손해는 아닌데 사는 게 너무 팍팍하다”고 말했다.
○ 소득에 맞춰 쓰는 일본, 빚 끌어다 소비에 맞추는 한국
가미야 씨와 김 씨의 사례는 한국과 일본의 빚 상태를 단적으로 보여 준다.
많은 한국인이 빚을 얻어서라도 소비하고 투자하는 반면 일본인들은 소득에 맞춰 소비한다.
금융연구원 박종규 선임연구위원은 “일본이 1980년대 말 거품 붕괴의 고통을 당하면서 부채에 대한 보수적 인식을 굳힌 반면, 한국은 2000년 이후 부채와 소비를 권하는 사회가 됐다”고 진단했다.
한국의 소득 하위 20% 계층이 외환위기 이후 매년 적자를 내고 있지만 같은 기간 일본의 최하위 저소득층은 흑자를 내고 있다.
일본뿐 아니다. 미국 독일 프랑스 등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주요국의 가계 대부분이 흑자이거나 한국 가계에 비해 적자 규모가 작다.
가처분소득은 소득에서 이자비용 지출, 저축 등을 빼고 실제 사용할 수 있는 돈이다. 2000∼2006년 한국 가계의 가처분소득 증가율은 5.0%였다. 같은 기간 한국 가계의 부채 증가율은 14.6%로 소득 증가율의 3배에 육박한다.
조금 벌어서 많이 쓰니 빚이 늘어날 수밖에 없다.
부채 증가율에서 가처분소득 증가율을 뺀 수치는 한국이 OECD 주요국 가운데 가장 높다.
소득에 비해 빚을 얻어 소비하는 성향이 OECD 회원국 가운데 한국이 가장 높은 셈이다.
○ 금융부채 대비 금융자산 한국은 2.1배, 일본은 3.9배
중소 가구업체를 운영하는 이모(40) 씨. 그는 살고 있는 아파트와 사무실 등 5억 원대의 부동산을 갖고 있다.
빚은 1억5000만 원으로 매달 들어가는 대출 이자는 100만 원 정도다. 사업 자금으로 빌린 돈 외에도 1억1000만 원의 주택담보대출이 부담스럽다. 재산은 있는데 금융자산이 없다 보니 대출 이자를 갚느라 소액이지만 가끔 사채를 쓰기도 한다. 이 때문에 빚이 조금씩 늘어난다.
한국은행과 금융연구원에 따르면 한국인의 금융부채 대비 금융자산은 적은 편이다.
금융부채 대비 금융자산은 한국이 2.1배, 미국 3.2배, 영국 2.8배, 일본 3.9배 등이다.
평균적으로 1000만 원의 금융부채를 지고 있다면 한국인은 2100만 원의 금융자산을 갖고 있는 것이다. 같은 경우 미국인은 3200만 원, 영국인은 2800만 원, 일본인은 3900만 원의 금융자산을 갖고 있다는 통계다.
이은우 기자 libra@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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