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달 말 민주노총이 계획하고 있는 한미 자유무역협정(FTA) 비준 저지를 위한 파업은 노동자의 이익을 보호한다는 실리 면에서나 한국 경제를 지킨다는 명분 면에서 모두 사회적 공감을 얻기 어렵다.
지도부만의 ‘정치파업’
우선, 한미 FTA 체결이 공산품 수출 주도의 한국 경제에 엄청난 피해를 줄 것이라는 민주노총의 주장은 다수의 시민이나 조합원의 인식과 상당한 거리가 있다.
FTA가 경제 전체에 미칠 영향에는 분명 긍정적인 면과 부정적인 면이 있다. 하지만 한미 FTA는 공산품의 대미 수출 증대 효과가 뚜렷이 예상되는 내용으로 만들어졌다. 민주노총의 주요 사업장은 대미 공산품 수출의 주역인 대기업들로 구성돼 있다. 이들은 한미 FTA의 주된 수혜자다. 이 부문의 근로자라면 당연히 혜택을 받을 것이다.
민주노총 지도부의 이번 파업 결정은 자기 밥그릇을 깨뜨리는 투쟁에 나서라는 것과 다름없다. 이런 상황에서는 일반 조합원의 지지를 확보하기 어렵다. 일반 조합원의 이익과 관련이 없는 이번 반(反)FTA 파업은 정치파업이라는 의심을 사기에 충분하다. 노조 활동에 대한 국민의 인식을 크게 악화시킬 것으로 우려된다.
특히 이번 반FTA 파업의 중심에는 자동차기업이 주력인 금속노조가 있다. 자동차산업은 한미 FTA의 핵심 수혜 산업이다. 이러한 사실은 미국의 유력한 차기 대선주자가 FTA로 인한 미국 자동차산업의 위기를 강조한 데서도 분명하게 드러난다. 사실 한국의 자동차산업은 그동안 실질적으로 내수 독점 체제에 안주해 왔다. 그간 해마다 현대차를 비롯한 자동차노조의 반복된 파업이 가능했던 것은 이러한 독점적 산업구조 덕분이다.
그러나 한국 자동차산업은 환율 하락, 해외 경쟁업체들의 약진 등으로 최근 큰 어려움을 맞고 있다. 중국 등 후발 주자가 펼치는 총력전은 국내 자동차 업계에 심각한 도전이 되고 있다. 한미 FTA는 한국 자동차산업의 새로운 활로를 여는 기회가 될 수 있다.
그럼에도 어려운 현실 상황을 도외시하고 자동차노조가 반FTA 파업의 선봉으로 나서서 정치적 성격의 파업을 주도하겠다고 하는 것은 누구를 위한 결정인지 도무지 이해하기 어렵다. 한국 자동차산업 노사는 FTA로 약속받은 이득을 확보하기 위해 머리를 맞대고 전략 구상에 몰두해야 한다. 일반 조합원의 바람을 외면하고 파업을 강행하다가는 자칫 국제적 망신거리가 될 수 있다.
조합원 위해서라도 철회해야
금속노조는 찬반투표를 거치지 않은 채 반FTA 파업 결정을 내렸다. 이에 대해 일반 조합원들이 거세게 반발하는 것은 당연한 귀결이라고 할 수 있다. 주요 자동차노조 현장 지도부가 악화된 여론을 의식해 이번 파업지침을 재검토하려는 움직임을 보이고 있다. 반가운 일이다. 올해 일부 자동차업체 노조 지도부는 ‘투쟁보다 조합원과 국민 경제를 함께 생각하는 노동운동을 펴겠다’는 요지의 이야기도 했던 바 있다. 일반 조합원과 국민으로부터 동떨어진 투쟁 위주의 노조 활동 기조를 수정하겠다는 근본적인 사고 전환이 없는 한 이러한 재검토 노력이나 약속은 진정성을 의심받을 수밖에 없다.
정치적 의도의 반FTA 파업은 즉각 철회하는 것이 옳다. FTA에 대한 노조의 기본 방침은 FTA로 피해가 예상되는 부문에 대한 합리적인 지원책 요구여야 한다. FTA 시대에 어울리는 새로운 노동운동 패러다임을 구축하는 데 노조의 역량을 집중해야 할 것이다.
김장호 숙명여대 경제학부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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