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시하라 신타로(石原愼太郞·사진) 일본 도쿄(東京) 도지사는 이달 초 기자회견에서 이렇게 말하며 곤혹스러운 표정을 지었다.
이시하라 지사는 일본에서 대가 세기로 둘째가라면 서러워할 인물. 이웃 나라 국민의 가슴에 못질을 하는 망언을 거침없이 할 뿐만 아니라 도정(都政)에 대한 어지간한 비판에는 눈도 깜짝하지 않는다.
이런 그가 진퇴양난의 궁지라고 자인하지 않을 수 없었던 재앙이 시작된 것은 2003년.
도쿄 도지사 재선에 도전한 그는 중소기업대출 전용은행 설립을 핵심 공약으로 내걸었다.
당시 기존 은행들은 천문학적인 부실채권에 짓눌려 산업의 젖줄 역할을 하기는커녕 제 한 몸 살아남기에 급급한 상황이었다.
더구나 일본 금융계의 오랜 병폐인 담보대출 관행도 여전해서 중소기업들은 은행 문턱 넘기가 쉽지 않았다. 이런 처지의 중소기업들에 무담보 중소기업대출 전용은행을 설립하겠다는 이시하라 지사의 약속은 ‘복음’이나 다름없었다.
금융계에선 수익모델이 의심스럽다는 지적이 많이 나왔지만 재선에 성공한 이시하라 지사는 중소상공인들의 여론을 등에 업고 2004년 4월 신은행도쿄 설립을 강행했다.
신은행도쿄는 1년간의 준비기간을 거친 뒤 2005년 4월 문을 열었다. 목표는 3년 내 흑자 전환.
하지만 비즈니스 현실이란 정치가들이 생각하는 것만큼 만만하지 않았다.
‘중소기업을 위한 무담보 금융기관’이란 명분 때문에 담보도 없는 부실한 중소기업에 마구 대출해 주다 보니 부실채권이 눈 덩이처럼 불어났다.
그 결과 신은행도쿄는 영업 1차 연도(2005년 4월∼2006년 3월)에 209억 엔(약 1670억 원), 2차 연도(2006년 4월∼2007년 3월)에는 547억 엔의 적자를 냈다. 자본금의 70%가량을 2년 만에 까먹은 것이다.
‘현실감각이 없는 경제정책은 비록 그 동기가 선의(善意)에서 나왔다고 해도 최악의 결과를 얻을 수 있다.’ 도쿄도민들이 1000억 엔을 내고 얻은 값비싼 교훈이다.
천광암 도쿄 특파원 iam@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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