보르도 TV에 딱 맞는 그 색을 찾아 블랙만 2000개 만들었다

  • 입력 2007년 6월 21일 03시 01분


14일 오후 경기 의왕시에 위치한 제일모직 케미컬 부문의 컬러전시관.

이 회사 서정미 컬러디자이너가 전시관 벽면을 밀자 2만5000개 색상의 플라스틱 샘플이 타일처럼 빼곡하게 정리된 전시물이 나타났다.

휴대전화, 텔레비전, MP3 플레이어 등의 플라스틱 외장재에 쓰이는 색상들이다. 흰색만 3000개, 검은색만 2000개가 있었다.

“이 검은색이 삼성전자 보르도 TV의 테두리에 쓰인 색입니다.”

서 디자이너는 “광택이 나는 고급스러운 느낌을 찾기 위해 한 달 넘게 연구해 찾아낸 색상”이라고 설명했다.

삼성전자 보르도 TV, 애니콜 컬러재킷폰 등 독특한 색감으로 소비자의 눈길을 사로잡은 제품에는 컬러디자이너의 땀과 노력이 배어 있다.

2006년 세계적으로 300만 대가 팔려 단일 TV모델 최대 판매량을 기록한 삼성전자의 보르도 TV는 고광택 검은색 테두리가 고급스러운 느낌을 연출해 선풍적인 인기를 끌었다.

정형주 제일모직 컬러디자인실 실장은 “예전에는 패션업계가 컬러 트렌드를 이끌었지만 지금은 전자제품의 컬러가 유행을 선도하기도 한다”고 말했다.

최근에는 제품에 색칠을 하지 않는 무(無)도장 제품이 늘어나면서 플라스틱 외장재의 색이 제품의 색을 좌우하고 있다.

LG화학 컬러디자인센터 문홍국 팀장은 “펄, 실버 등의 효과를 플라스틱 자체에 표현하기 위한 기술개발에도 힘쓰고 있다”고 말했다. LG전자 휴대전화 ‘초콜릿폰 화이트 시리즈’, 웅진쿠첸의 ‘크리스탈 밥솥’ 등이 이들의 손을 거쳤다.

컬러디자인실의 위상도 높아지고 있다.

2005년 11명의 직원으로 출발한 제일모직 컬러디자인실은 현재 15명으로 규모가 커졌다. LG화학 컬러디자인센터도 지난해 말 디자이너 1명을 충원해 인원이 25명으로 늘었다. 독자적인 예산을 확보한 팀으로 승격됐다.

역할도 달라졌다. 예전에는 전자업체에서 제품을 개발한 뒤 컬러 개발을 의뢰했지만 요즘에는 컬러디자인실이 독자적으로 색상을 개발해 먼저 제안하는 식이다.

서 디자이너는 한 플라스틱 샘플을 가리키며 “우리가 삼성전자에 제안해 다음 달 출시되는 휴대전화에 적용되는 색”이라며 “이제는 제품 개발 단계부터 컬러 디자이너들이 참여할 정도로 위상이 달라졌다”고 말했다.

의왕=이지연 기자 chance@donga.com

  • 좋아요
    0
  • 슬퍼요
    0
  • 화나요
    0

댓글 0

지금 뜨는 뉴스

  • 좋아요
    0
  • 슬퍼요
    0
  • 화나요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