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기업 발목 잡는 기업도시
기업도시로 연결되는 기반시설이 제때 조성되지 않으면 기업도시는 말 그대로 ‘무용지물’이 된다. 그렇다고 기업이 모든 비용을 부담하자니 사업성을 맞출 수 없다.
건설업계의 한 기업도시 관계자는 “서울 강남 대체 효과도 불분명한 수도권 신도시의 기반시설 조성에는 돈을 펑펑 쓰겠다는 정부가 국가균형발전이라는 명분으로 아무것도 없는 낙후지역에 기업도시를 선정해 놓고는 기업들에 부담을 떠넘기고 있다”고 비판했다.
건설업계의 불만이 높아지자 정부는 국무총리실 산하에 태스크포스(TF)를 구성해 정부와 지방자치단체, 업계의 기반시설 조성비 분담 비율을 정하겠다고 했다. 하지만 업계는 “정부가 땜질 처방을 하려 한다”며 의구심을 지우지 않고 있다.
일부 지방자치단체는 기업도시 조성에 협조하는 대가로 특구 지정 등 숙원사업을 해결해 달라는 등 터무니없는 요구도 하고 있다는 게 업계의 하소연이다.
○ 용지 확보 등 첩첩산중
용지 확보도 문제다. 한나라당 김재경 의원실에 따르면 기업도시 예정지인 6개 시군의 공시지가 총액은 기업도시 대상지를 선정한 2005년에 비해 지난해 현재 13∼41% 올랐다.
실제 땅값 상승률은 이를 훨씬 웃돈다. 2005년 7월 무주기업도시로 지정된 전북 무주군 안성면의 부동산중개업소 측은 “이곳 농지가 기업도시 지정 전에는 5만∼10만 원에 거래됐지만 지금은 매도 호가가 15만∼20만 원으로 갑절로 올랐다”고 말했다.
올해부터 시행된 양도소득세 실거래가 과세도 기업들의 발목을 잡고 있다. 양도세 부담 때문에 땅주인들이 땅을 내놓지 않고 있는 것이다.
도시 조성에 필수적인 학교와 병원 문제도 첩첩산중이다. 기업들은 낙후지역에 들어서는 기업도시에 수도권의 기업과 인구를 끌어들이기 위해서는 영리법인 등을 과감히 허용해 서울 수준의 환경을 마련해야 한다고 주장하지만 정부는 난색을 표시하고 있다.
○ 기업 없는 기업도시 우려도
서울에서 가까우면서도 수도권 규제를 받지 않는 강원 원주기업도시는 상대적으로 여건이 낫다지만 앞날이 밝지만은 않다.
첨단 의료단지를 조성하겠다는 게 원주기업도시의 목표이지만 정부가 인천 송도신도시와 충북 오송신도시, 행정중심복합도시에도 비슷한 단지를 지정했기 때문이다. 원주기업도시와 가까운 충북 충주기업도시도 첨단연구단지를 지을 예정이다.
원주기업도시 관계자는 “정부 차원의 ‘선택과 집중’이 필요한데, 이렇게 벌여 놓으면 도시 간 경합이 치열해지고 기업도 어디로 갈지 고민하게 된다”고 하소연했다.
전남 무안기업도시는 정부 부처 간 협의가 지연돼 올해 4월에야 개발계획 승인이 났지만 기업들은 아직 구체적인 사업 내용을 결정하지 못하고 있다.
한 관계자는 “돈은 들어가고 시간은 흐르고 있지만 첨단산업단지, 건강보양단지 등 정부가 제시한 사업의 내용이 구체적이지 않아 방향을 잡는 데 어려움을 겪고 있다”고 말했다.
전국경제인연합회 산업기반팀 정봉호 차장은 “입지가 안 좋은 데다 자본력도 달리고 아이디어도 빈곤해 6개 시범도시가 다 된다고 보지는 않는다”며 “차기 정부에서 전면적인 재검토가 이뤄져야 한다”고 말했다.
배극인 기자 bae2150@donga.com
고기정 기자 koh@donga.com
이태훈 기자 jefflee@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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