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들은 다시는 부를 수 없게 된 사가(社歌) ‘가네보 우리들’을 마지막으로 합창하며 ‘백년기업’ 가네보에 작별을 고했다. 군데군데서 노랫소리는 흐느낌으로 변했다.
1887년 도쿄면(綿)상사에서 출발한 가네보는 1940년대만 해도 일본 최대 매출을 자랑했던 명문 기업이었다.
가네보가 궁지에 빠진 것은 패전 직후. 산업구조가 변혁기에 접어들면서 섬유산업이 사양화하는 가운데 강성노조는 툭하면 투쟁의 깃발을 들었다.
다행히 극단적 노사대결은 1968년 출범한 새 경영진이 노조를 경영에 깊숙이 개입시키는 등 노사협조 노선을 걸으면서 자취를 감췄다.
섬유 화장품 식품 약품 주택 등 5개 사업으로의 다각화를 뜻하는 이른바 ‘펜타곤 경영’도 화장품의 비약적인 성장에 힘입어 성공하는 것처럼 보였다.
하지만 일본 경제의 거품이 꺼지면서 노사협조와 경영다각화는 거꾸로 가네보의 숨통을 조이기 시작했다. 섬유 등 4개 적자사업은 화장품 사업의 흑자에 편승해 자활 노력을 게을리 했고 경영에 강한 입김을 행사한 노조는 구조조정의 발목을 잡았다.
노조의 경영 간섭은 심지어 회사가 통째로 망하는 위기에서도 멈추지 않았다. 가네보 경영진은 2004년 1월 막대한 빚 부담을 덜기 위해 화장품 부문을 가오에 팔기로 결정했지만 노조 반대로 무산된 것.
자력갱생을 위한 마지막 수단마저 쓸 수 없게 되자 경영진은 2004년 2월 공적자금을 수혈받기 위해 산업재생기구에 지원을 신청했다. 사실상의 파산이었다.
본업인 섬유사업은 2005년 3월 철수를 선언했고 알짜인 화장품사업은 지난해 산업재생기구 주도로 ‘가네보’라는 브랜드 및 상호 사용권과 함께 결국 가오에 팔렸다.
일용품 식품 약품 등 ‘쭉정이’ 업종은 가네보 상호 사용권이 소멸된 1일부터 ‘크라시에’라는 이름으로 새 출발을 했다. 하지만 만년 적자 체질에서 벗어나 홀로서기를 하려면 갈 길이 멀다는 분석이다.
도쿄=천광암 특파원 iam@donga.com
댓글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