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동성 과잉 - 물가 빨간불 금리 올리자니 경기에 찬물
‘원화 환율 하락(원화 가치 상승)으로 기업 채산성은 나빠지고 시중에 풀린 돈이 많아 금리는 올려야겠는데 경기 회복 움직임에 찬물을 끼얹을까 걱정되고….’
올해 하반기에 들어서자마자 정책 당국이 딜레마에 빠졌다.
환율 하락-과잉 유동성-물가-금리 등 거시경제 변수들이 서로 얽히고설켜 있어 정부의 정책 선택을 어렵게 만들고 있는 것이다.
전문가들은 정부가 어떤 정책조합을 선택하는지에 경기 회복 여부가 달려 있다고 지적한다.
○ 7개월 만에 달러당 910원대로 하락
환율은 하락세가 너무 가파르다.
원-달러 환율은 3일 서울 외환시장에서 전날보다 3.7원 떨어진 달러당 918.00원으로 거래를 마쳤다. 지난해 12월 7일 913.80원 이후 최저치.
일부에서는 달러당 900원대 붕괴 가능성까지 거론하고 있다.
재정경제부는 이날 ‘최근 환율 하락 관련 외환 당국의 시각’이라는 자료를 내고 “현재 환율 움직임은 한국의 거시경제 여건과 괴리된 느낌이 있어 우려하고 있다”며 구두 개입에 나섰지만 효과를 기대하기 힘든 상황이다.
김태완 국민은행 외화자금부 과장은 “달러화가 세계적으로 약세이고 조선업 수주 실적이 예상보다 높게 나오면서 달러 약세가 이어지고 있다”며 “정부가 개입을 하더라도 ‘속도조절’ 정도에 머무를 것이며 앞으로 905∼910원으로 방어선이 내려갈 것”이라고 전망했다.
권오규 부총리 겸 재정경제부 장관은 2일 11개 국책연구기관장들과의 오찬간담회에서 “특히 원-엔 환율이 문제인데 국제회의에 나가 보면 미국 등 다른 나라들은 위안화에 대해서만 논의할 뿐 엔화에 대해서는 한마디 언급도 안 해 난처하다”며 답답한 심정을 털어놓기도 했다.
마땅한 대응 수단이 없는 환율 당국은 내심 무역수지 흑자가 좀 줄어들기를 바라기도 한다. 수출이 감소하면 달러 유입이 줄어 환율이 안정될 것이라는 생각 때문이다.
○ “금리 올려야”―“안 된다” 팽팽
권 부총리와 이성태 한국은행 총재가 최근 잇달아 우려를 표시한 것처럼 시중에 돈이 너무 많이 풀려 있는 과잉유동성은 하반기 경기를 위협하는 주요 요인이다.
한은에 따르면 2007년 4월 말 광의유동성 잔액은 1888조5000억 원. 2005년 말 1653조2000억 원이던 광의유동성은 2006년 말 1839조 원으로 11.2% 급증한 이후 올해 들어서도 큰 폭으로 늘고 있다.
아직은 한은의 목표 범위에 있다고 하지만 물가 움직임도 심상치 않다. 소비자들이 피부로 느끼는 생활물가는 6월 전년 동월 대비 3.2% 오르면서 2개월 연속 3%대의 오름세를 나타냈다.
이런 상황에서 한은이 선제적으로 금리를 올려야 한다는 주장이 제기되고 있지만 반대 의견도 만만치 않다.
섣불리 금리 인상에 나섰다가 가계와 중소기업의 금리 부담을 높이고 소비를 위축시켜 경기 회복에 걸림돌이 될 것이라는 주장이다.
전국경제인연합회는 지난달 28일 하반기 경제정책과제의 하나로 금리 동결을 정부에 건의하기도 했다.
게다가 재경부는 ‘그럴 가능성이 적다’고 하지만 경제학 교과서에 나오는 것처럼 금리를 인상하면 외화 유입이 늘어나 환율은 더욱 하락할 것이라는 반론도 많다.
최흥식 한국금융연구원장은 “유동성 흡수를 위해 지금은 분명히 금리를 올려야 하는 상황이 맞다”며 “하지만 환율정책을 운용하는 데는 부담이 될 수밖에 없다”고 말했다.
정재윤 기자 jaeyuna@donga.com
김유영 기자 abc@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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