코스피지수가 25일 종가 기준으로 2,000을 돌파함에 따라 한국 증시의 새 장(場)이 펼쳐졌다. 코스피지수는 올해 4월 9일 1,501.06으로 1,500선에 진입한 뒤 불과 3개월 보름만에 2,000을 넘어섰다.
하지만 증시가 조정다운 조정을 제대로 거치지 않은 채 단숨에 2,000선을 돌파하자 시장 참가자들 사이에선 주가 거품 논란이 조심스럽게 제기되고 있다. 특히 풍부한 유동성이 주가를 끌어올린 일등공신이라는 점에서 좀 더 신중한 자세로 투자에 나서야 한다는 목소리도 나오고 있다.
●과열인가, 내실 있는 성장인가
미래에셋증권에 따르면 올해 초부터 23일까지 기업들의 주당순이익(EPS)은 5% 가량 오른 반면 코스피지수 상승률은 33%가 넘었다. 주가 상승속도가 기업이익 증가속도보다 6배 이상 빠른 셈이다.
유가 상승과 원화가치 강세(원화환율은 하락), 중국의 긴축 정책 등 악재가 많아지고 있지만 증시는 이런 변수에 아랑곳하지 않고 홀로 질주하고 있다는 점도 부담스러운 대목이다.
반면 오랫동안 저평가됐던 한국 증시가 이제야 비로소 제대로 된 평가를 받는 것이라는 분석도 만만치 않다.
윤세욱 메리츠증권 리서치센터장은 "주가가 많이 올랐다고 하지만 한국의 주가수익비율(PER)은 이제 13 후반이어서 여전히 세계 시장평균(15)보다 낮은 수준"이라며 "그만큼 상승할 여력이 더 남아 있다"고 말했다.
현재의 거침없는 증시 추이가 1999년의 정보통신(IT) 버블을 연상시킨다는 우려도 적지 않다.
이에 대해 안태강 삼성증권 연구원은 "IT 버블 때는 기업 실적에 관계없이 단순히 기대감만으로 지수가 폭등한 반면 올해는 조선, 기계, 철강 등 기업들의 개선된 실적을 바탕으로 지수가 올라가고 있다"고 지적했다.
강현철 우리투자증권 연구위원은 "현재 상태를 거품이라고 한다면 앞으로 코스피 지수가 1500선 아래까지 내려가야 하는데 기업 실적과 유동성을 고려할 때 그 수준으로 폭락할 가능성은 높지 않다"며 "지금은 '급등에 따른 후유증' 정도로 보는 것이 적절하다"고 말했다.
●"선진증시로 나아갈 교두보 구축"
과열 논란에도 불구하고 코스피 2,000 시대 진입은 한국 증시가 제 가치를 인정받으며 본격적으로 선진 증시로 나아가고 있다는 것을 의미한다.
김학균 한국투자증권 연구원은 "그동안 한국 경제에서 금융업은 제조업을 보조하는 역할에 그쳐 주가 상승의 발목을 잡았던 게 사실"이라며 "전통적으로 강했던 제조업 뿐 아니라 부진했던 금융업이 본격적인 성장 국면에 진입하면서 한국 경제가 선진 경제구조로 재편되고 있다"고 말했다.
코스피지수가 2,000을 넘은 데는 기업의 실적 개선과 함께 증시로 유입되고 있는 풍부한 유동성이 원동력으로 작용했다. 특히 기업들의 안정적인 성장은 지수 상승의 밑바탕이 됐다.
양경식 하나대투증권 투자전략부장은 "외환위기 이후 기업들은 혹독한 구조조정을 통해 체질을 강화했으며 적극적인 인수합병(M&A)으로 성장을 꾀하는 한편 배당 등 주주관리에도 본격 나섰다"며 "증시 상승은 이 같은 노력이 결실을 맺고 있는 과정"이라고 설명했다.
2004년부터 간접투자가 본격적으로 시작되면서 부동산으로 치우쳤던 가계 자산의 무게 중심이 금융자산으로 옮겨오는 등 투자 패러다임이 변화한 것도 한 몫 했다.
●넘어야 할 산도 많아
코스피지수가 2,000선에 안착하기까지는 상당한 진통이 따를 것으로 예상된다.
실제로 코스피지수는 1988년 1,000선을 넘어선 후 모두 다섯 차례에 걸쳐 1,000선을 돌파했지만 10여년간 박스권에서 머물렀다.
이종우 한화증권 리서치센터장은 "장기적으로 주가가 오를 가능성이 높지만 돈의 힘으로 주가가 오른 측면이 크기 때문에 투자자들이 심리적으로 불안을 느낄 경우 최대 300포인트까지 조정을 받을 수 있다"이라고 말했다.
미국 부동산 시장의 불안과 유가 상승, 중국의 경기 후퇴 등 글로벌 악재의 영향도 배제할 수 없는 상황이다.
오현석 삼성증권 연구위원은 "한국증권선물거래소도 자금조달 능력 등에서 국제 경쟁력을 갖춰 글로벌 기업의 상장(上場)을 유치하는 등 시장을 키우기 위해 노력해야 한다"고 주문했다.
손효림기자 aryssong@donga.com
댓글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