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카 라이프]‘마르샤’와 사랑에 빠져 첫 차 ‘스쿠프’를 버리다

  • 입력 2007년 8월 31일 03시 03분


‘배신(背信).’

첫 차인 현대자동차 ‘스쿠프’를 떠나보낼 때의 마음은 그랬습니다. 1993년 스쿠프를 처음 구입했을 때 설레던 마음은 첫사랑의 느낌과도 흡사했습니다.

누가 흠집이라도 낼까 봐 자다 말고 슬며시 주차장에 내려가 차 주위를 맴돌기도 하고 차 안에 들어가 음악을 들으며 잠든 적도 있었죠. 기계와 사랑에 빠진 겁니다.

‘너를 영원히 사랑하리라.’

그러나 약속이 그리 오래가지는 못했습니다. 사랑을 느끼면 나온다는 신경전달물질인 도파민의 분비가 중단돼 버린 것이죠. 가슴 떨리는 사랑의 감정은 길어야 30개월을 넘기지 못하고 도파민 분비가 중단된다는 미국 코넬대 인간행동연구소의 연구결과가 자동차에도 그대로 적용될 줄이야!

사실 단순히 스쿠프에 싫증이 난 것은 아니었습니다. 많은 추억을 함께했던 애마(愛馬)를 버릴 처지가 아니었지만 당시 출중한 미인이었던 ‘마르샤’에 눈이 멀어 버린 것이죠.

프로젝션 타입의 노란색 안개등이 들어간 일체형 전조등, 범퍼 밑에 달린 커다란 방향지시등, 유선형으로 미끈하게 빠진 마르샤의 몸매는 당시로서는 획기적인 디자인이었습니다. 거기에 비하면 스쿠프의 몸매는 초라하기만 했죠.

그러나 가격은 엄청났습니다. 1996년 쏘나타2가 1300만 원이었는데 마르샤(2000cc)는 편의장치를 더하면 2000만 원에 가까웠으니까요. 뉴그랜저 기본형 모델과 비슷한 수준입니다.

얇은 월급봉투를 생각하면 도저히 불가능했지만 ‘할부’라는 악마의 유혹에 넘어가 계약서에 사인을 하고 말았습니다. 3년을 탄 스쿠프는 구입 가격 750만 원의 절반도 안 되는 350만 원에 중고차 딜러에게 넘겼습니다. 차를 중고차시장에 버려두고 돌아서는 심정은 쓰라렸지만 새로 맞이할 아름다운 ‘신부’를 생각하니 금세 잊혀지더군요.

선택한 모델은 VLS 등급에 수동변속기로 하얀색이었습니다. 한 달을 기다린 끝에 울산의 현대차 출고장까지 직접 찾아가 열쇠를 받아들었을 때의 기분은 첫 차를 받았을 때 이상이었습니다.

배신자의 마음은 이렇게 간사한 것일까요. 그래서 이날 ‘자동차는 좋아하되 사랑에는 빠지지 말자’고 다짐을 했습니다. 기자는 두 번째 차인 마르샤와 함께 좌충우돌의 카라이프를 펼쳐 나가게 됩니다.

석동빈 기자 mobidic@donga.com

※ 카라이프와 자동차 이야기는 격주로 연재되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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