HSBC-론스타 의기투합 금융당국-국내銀 허찔러

  • 입력 2007년 9월 4일 03시 01분


영국에 본사를 둔 HSBC가 3일 미국계 사모(私募)펀드인 론스타와 외환은행 인수에 전격 합의함에 따라 교착 상태에 빠졌던 외환은행 인수 공방이 새 국면으로 접어들었다.

금융감독 당국은 ‘매각 승인 불가’ 방침을 거듭 밝혔지만 막을 논리가 충분치 않은 데다 론스타가 챙긴 막대한 차익에 대한 부정적 여론도 적지 않을 것으로 보여 부담스러워하는 분위기다.

론스타가 ‘외환은행 거래’로 큰돈을 벌면 정부나 외국자본 외에는 현실적으로 국내 은행의 ‘주인’이 될 수 어렵게 만든 금융산업구조개선에 관한 법률(금산법)을 둘러싼 논란도 한층 거세질 것으로 보인다.

○ HSBC와 론스타의 의기투합

HSBC는 자기자본 기준으로 세계 1위, 자산 규모 2위, 시가총액 기준 3위인 글로벌 은행이지만 한국 시장과는 인연을 맺지 못했다. 1999년 서울은행, 2005년 제일은행 인수전에 나서 성사 직전까지 갔지만 막판 절충 과정에서 조건이 맞지 않아 한국 진출에 실패했다.

HSBC가 한국 금융당국의 승인을 얻기 쉽지 않다는 점을 알면서도 외환은행 인수에 적극 나선 것은 이번이 한국 소매금융 시장 진출을 위한 마지막 기회로 판단했기 때문으로 분석된다.

세계 금융시장에서 비교적 모범적으로 영업해 온 HSBC가 계약 체결을 밀어붙이면 한국 당국도 국제 금융계의 시선을 의식해 HSBC의 대주주 자격을 부인하기 어려울 것이라는 계산도 작용했다.

여기에 한시라도 빨리 이익을 실현하고 한국을 떠나려는 론스타의 의도가 맞물려 양 측의 협상은 예상보다 빨리 타결됐다.

○ 5조 원 넘게 벌고 한국 철수 시도

론스타는 2003년 10월 외환은행 지분 51%를 주당 4245원씩 총 1조3833억 원에 인수했고 지난해 5월엔 2, 3대 주주인 독일 코메르츠은행과 수출입은행에 7715억 원을 주고 지분 14.1%를 사들였다.

인수 비용으로 2조 원 넘는 돈을 들였지만 론스타는 △올해 4월 배당액 수익(세후 기준)으로 3542억 원 △6월 외환은행 지분 13.6% 매각을 통해 1조1927억 원 등 이미 1조5469억 원을 회수한 상태다.

HSBC와의 계약이 성사돼 5조9376억 원을 예정대로 받게 되면 지금까지 쓴 2조1548억 원을 빼도 5조3297억 원을 챙겨가는 셈이다.

론스타는 지난해 6월 외환은행 지분 70.87%를 주당 1만5200원씩 모두 6조9473억 원에 파는 조건으로 국민은행과 본 계약을 체결했다가 그해 11월 계약을 파기한 바 있다.

○ 당혹해하는 국내 은행들

현재로선 금융감독 당국의 태도가 완강해 HSBC가 계획대로 외환은행을 인수하기는 쉽지 않을 것이라는 분석이 많다.

하지만 금융당국이 현재 진행 중인 론스타의 대주주 적격성 심사가 끝나 론스타가 대주주 자격이 없는 ‘비(非)금융 주력자’에 해당하면 론스타는 외환은행을 자신들의 뜻대로 팔 수 있게 된다.

한편 외환은행 인수전에 뛰어들었던 국민은행, 하나금융지주, 농협 등 국내 은행들은 HSBC와 론스타와의 합의 소식에 당혹해하면서도 이번 계약이 금융당국의 승인을 필요로 하는 조건부 계약이라는 점에 한 가닥 기대를 걸고 있다.

국민은행 고위 관계자는 “다른 은행 계약에 대해 말하는 게 조심스럽다”며 “향후 금융당국의 움직임 등 진행 과정을 지켜보겠다”고 말했다.

하나금융지주 측은 “여러 조건이 충족돼 내년 1월 말까지 주식 인수가 완료되어야 한다는 조건부 계약인데 1년 안에 (외환은행 매각의 적법 여부에 대한) 사법부의 결론이 나오겠느냐”며 “시한을 왜 그리 조급하게 잡았는지 모르겠다”고 밝혔다.

김선미 기자 kimsunmi@donga.com

김상수 기자 ssoo@donga.com

  • 좋아요
    0
  • 슬퍼요
    0
  • 화나요
    0

댓글 0

지금 뜨는 뉴스

  • 좋아요
    0
  • 슬퍼요
    0
  • 화나요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