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기는 디자인 혁명 아지트…글로벌 트렌드 이동 감시중”

  • 입력 2007년 9월 11일 03시 01분


삼성전자 밀라노 디자인연구소 가 보니…

“우리 상품을 보면 ‘디자인 마인드’가 있는지 의구심을 갖게 된다. 아직도 제품을 기술적으로 완성한 뒤 거기에 첨가하는 미적(美的) 요소 정도로 디자인을 여기고 있다.”

이건희 삼성그룹 회장은 1997년 발간된 자신의 에세이집에 실린 ‘디자인이 결정한다’는 글에서 이처럼 한국의 디자인 경쟁력을 개탄했다.

그로부터 8년 뒤인 2005년 4월 이 회장은 세계 패션의 중심지인 이탈리아 밀라노에서 ‘디자인 전략회의’를 열어 다음과 같이 강조하며 디자인 혁명을 재차 주문했다.

“삼성 제품 대부분의 디자인 경쟁력은 1.5류이다.”

“상품 진열대에서 특정 제품이 소비자의 마음을 사로잡는 시간은 평균 0.6초다. 그 짧은 시간에 고객의 발길을 붙잡지 못하면 마케팅 싸움에서 결코 승리할 수 없다.”

이달 3일 방문한 삼성전자의 밀라노 디자인연구소는 당시 디자인 전략회의가 진행되는 기간에 설립됐다고 한다. 그만큼 삼성 디자인 혁명의 ‘역사적’ 사명을 띠고 태어난 것이다.

하지만 예상과 달리 연구소는 인원과 규모가 작았다. 삼성전자 이탈리아 법인 건물의 1개 층을 사용하고 정식 디자이너는 홍익대 산업디자인학과 출신인 김홍표(41) 소장을 포함해 10명에 불과했다. 나머지 9명은 이탈리아 터키 아일랜드인 등 외국인이다.

“삼성전자의 해외 소재 6개 디자인연구소 중 가장 규모가 작습니다. 밀라노에서는 전자제품 디자인을 직접하지 않고 전반적인 디자인의 트렌드를 짚어 내는 일을 합니다.”

실제로 디자인실에서는 제품 설계를 하는 모습을 찾아볼 수 없었다. 유럽에서 발간되는 다양한 패션 잡지 등을 책상 위에 잔뜩 흩어 놓고 토론을 벌이다가 유행의 흐름을 일종의 개념도로 정리하며 칠판에 그려 놓곤 했다.

김 소장은 “주부에게 전자제품 디자인의 선호를 물으면 답변에 한계가 있지만 가구 패션 인테리어 같은 일상 제품의 디자인에 대해서는 그렇지 않다. 소비자가 일상적으로 꿈꾸는 이상적인 디자인과 전자제품 간의 간극을 메우는 것이 우리의 업무”라고 강조했다.

그러기 위해서는 세계적인 디자인의 흐름을 ‘아는 것’으로는 부족하고 이해하고 느낄 수 있어야 하는데 그 최적의 장소가 밀라노라는 것이다.

그러나 최근 몇 년 사이 미국의 모토로라, 일본 전자업체인 NEC 등 글로벌 기업들이 밀라노 연구소를 폐쇄하거나 영국 런던 등으로 이전하고 있다.

“밀라노의 디자이너들에게 ‘히트 전자제품’ 같은 너무 빠른 성과를 요구했다가 그 기대에 못 미쳐 철수한 것 같습니다. 디자인은 하나의 히트 제품을 만드는 데 의미가 있는 것이 아니라 트렌드의 대세를 선점하고 더 나아가 창조하는 작업임을 이해했으면 좋겠습니다.”

김 소장은 그래야 “미국 애플의 ‘아이팟’ 같은, 일종의 문화적 아이콘이 되는 제품이 탄생할 수 있다”고 강조했다.

밀라노=부형권 기자 bookum90@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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